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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Mar 27. 2024

너도 모르는 너의 감정, 내가 아는데..

눈앞의 글도 뱉어낸 말도 오해하는 우리가 감정을 읽습디다?

감정을 읽는다는 말이 갑자기 낯섭니다. 눈앞의 글도 뱉어낸 말도 오해하는 우리가 얼굴 표정, 몸짓, 음성 톤, 말투 등 모든 곳에 담겨 있는 그 감정을 읽을 수 있다니 갸우뚱합니다. 자기 자신조차 본인의 감정을 분명하게 다 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문화나 개인 차이에 따라 표현을 다르게 할 수도 있는데도요


우리는 감정을 단순화하며 '네가 모르는 너의 감정을 내가 읽는 게 가능하다'라고 주입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콘텐츠에서는 우리에게 찰나의 클로즈업 표정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그때의 '보이는 감정'을 텍스트로 전달합니다. 저 표정, 슬픈가? 너무 신났나? 맞았다, 아니네?! 그리고 그 이름 붙은 표정은 짤이 되어 여기저기 공유됩니다. 그런 학습을 한 우리는 상대의 0.1초에 스쳐가는 표정을 과장해서 읽고 감정을 단정 짓습니다. 분명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일방적인 고백을 하기도 하고 너는 왜 맨날 기죽고 화가 나있냐며 혼을 내기도 합니다. 메시지가 차갑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하죠.


공감을 표현하려는 욕심(!)에 자주 남의 말을 끊기도 합니다. 아, 그렇다는 거구나? 그래 그거지?.. 공감하는 척이 상대의 말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걸 너무 아는데, 내가 네 감정을 안다,는 걸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상대가 아닌 그걸 듣고 그 정도는 이해하는(?) 내가 주인공이길 바라나 봅니다.


더 심할 때에는 상대의 감정에 개입합니다. 네 기분을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풀어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타인의 감정을 내 해석대로 대변하기도 하고, 같이 있는데 기분 나쁜 티 내지 말라며 타박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기분이 풀리지 않으면 ‘이렇게 까지 하는데 그만 좀 하라'며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하죠. 상대의 감정이 상대의 것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들만 등장하는 부조리극 같습니다. 세상이 내 해석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고 한마디를 더 얹고야 말죠. '거봐, 내가 그랬지?'


저는 꽤나 무표정의 사람인데, 많은 경우 제 표정이 ‘불만족’, ‘화’, ‘지루함’, ’다른 생각 중‘ 으로 읽힌다는 걸 압니다. 제 개인적인 무표정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이 사회 속에서 부정적 기호라는 걸 학습한 지금은 자주 의도적으로 밝은 표정을 만들어냅니다. 많은 경우 저의 무표정은 '나의' 무념무상일 뿐  ‘너와의’ 많은 감정을 숨기는 포커페이스가 아닙니다. 잘못한 게 없다면 내 무표정이 문제 될 것도 없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왜 이렇게 조마조마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 감정이 잘못 읽히면 해명을 해야 하고, 또 다른 오해를 만들고, 결국 사과를 하는 기괴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제가 가지지 않은 감정을.. 미안하지도 않은데 사과합니다.


오늘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 누구보다 발랄하고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면서 그 간극에 갸우뚱합니다. 일상 속에서 무표정을 숨기려는 노력에 상응하는 역할을 이 많은 이모티콘들이 해주고 있었습니다. 많은 아이돌들이 무대 올라가기 전에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고 카페인의 힘으로 무대 한다는 글도 봤습니다. 치얼업 베이비가 아니면 사랑받지 못하는 거겠죠. 사회 안에서 우리는 '어떤 서로'를 바라는 걸까요. 


단순한 감정 표현의 강조, 너무나 짧은 감정 표현 시간, 그 뒤에 숨겨진 긴 이야기들의 외면. 사회 속에서 서로의 감정을 읽으려는 노력은 필수입니다. 어쩌면 정말로 내가 잘 모르는 나의 감정이 다른 시그널로 표현되고 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내가 읽은 너의 감정이 '네가 가진 네 감정'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내가 읽은 너의 감정에 네가 책임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자 타인 인생의 등장인물로서 괜찮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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