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는 게 뭔지 먼저 알아야..
"어른들을 만나면 자꾸 앞으로 뭐 할 거냐고 물어요. 잘 모르겠다고 하면 좋아하는 과목이 뭐녜요"
곧 고2가 되는 한 학생의 고민입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상황이에요. 저 나이의 학생들을 보는 어른들이 할 법한 질문이죠. 저도 물었습니다.
"좋아한다는 게 뭘까요?"
그 학생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특별히 더 좋아하는 게 없는 건 확실하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과목들보다 더 좋아하는 시간이 있긴 하대요. 특징은, 과외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을 만나는 게 좋은 건지, 자기가 그 과목을 좋아하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대요. '누군가를 만나는 걸 좋아하나 보다'라고 얘기했더니 그건 아닌 거 같다며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좋대요. 마침 자기와 잘 맞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고 그 선생님들이 무언가를 가르쳐주니 좋은 것 같다고 해요. 역사 과목은 별로이고, 그 과목에서는 새로운 걸 알게 돼도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좋아한다는 게, 그렇게 대단하거나 특별한 감정은 아닌 거 같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게 심장이 뛰고 행복한 그런 감정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이었어요.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런 감정일 수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감정의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요. 제게 '좋아하는 감정'은 일상 속에서 일상의 생각을 벗어나게 하고 다른 생각을(지난 글에 따르면.. 다른 시공간을 느끼게 하는) 가능하게 하는 일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좀 더 편해졌다고 하더니 저를 만날 때마다 자신에 대해 알게 된 이 얘기 저 얘기를 해줍니다.
제가 진로를 정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사회에서 강요하는 강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젊음, 생기, 도전, 꿈, 사랑, 우정 등등.. 그런 것에 크게 반응하지 않던 저는 스스로가 불편했어요. 그래서 가난한 거 같고 그래서 혼자인 것 같았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전 꽤 잘 살아왔거든요, 그럼에도 그 저변에는 항상 그런 마음이 있었고 이어지는 자기 계발의 열풍에도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분명 저도 그때그때 어떤 마음에 반응했을 거예요. 일반적으로 '옳다, 멋지다'라고 여겨지는 것에 반응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이게 진짜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검열을 계속했고,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제가 과거로 돌아가서 진로 등을 결정한다면 아마도 다른 걸 선택하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대단한 새로운 동기를 가지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그게 별로였다고 의심할지도 모르죠.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가 학생 때 수학에서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홈스쿨링을 했는데 그때 수학을 가르치던 과외선생님 인터뷰를 보니 오히려 이해를 못 하고 산만한 학생들이 보이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수학에서 성과를 보일 줄 정말 몰랐던 거 같았습니다. 그는 전체를 보는 학생이라, 일부분을 설명하는 내용이 들어오면 여기저기 연결해야 했고, 그래서 산만해 보이는 질문을 던졌던 거 같아요. 그게 그가 이해하는 방식이었던 거죠. 그 선생님이 부모에게 '이 학생 수학은 영 젬벵입니다'라는 피드백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짱.
좋아한다는 마음과 좋아한다는 걸 대할 때의 반응은 정말 사람마다 다른 거 같아요. 같은 사람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고요. 심장이 한 번에 빨리 뛸 수도 있고 오히려 차분해지거나 혼란스럽기도 하죠. 말 그대로 패턴이 달라지는 순간에 집중해야 하는 거 같아요. 순간의 긍부정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싫어한다는 것 역시 살펴볼 상황이고요.
어른들에게 다시 질문해보고 싶어요. 다시 고2가 된다면, 하고 싶은 게 뭔지 이제 분명한지. 여전히 답을 못 찾았다면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 대신 스스로 다른 질문을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당신은 어떤 반응을 하냐고요. 회피로 선택하는 것과 좋아서 선택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진짜로 분명히 아냐고요. 자아를 형성하는 필수 단계일 것 같아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