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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너비 아티스트 Sep 27. 2022

나의 가드닝 입문기

꼭 해야하는 난이도 높은 장기 프로젝트 태클하는 법


생각만 해도 막막한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할 일의 스케일은 크고, 나의 경험치는 0이고, 게다가 미루어 왔던 시간이 수년이라면 그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기가 얼마나 힘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한테는 가드닝이 그런 일이었다. 


정원이 제법 큰 이 집을 2015년에 샀다. 서울서 태어나 아파트 위주의 주거에 훨씬 익숙했지만, 네덜란드에서나 가능한 마당 있는 주택을 경험할 기회를 붙잡고 싶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살았던 홍은동 언덕 꼭대기의 집과 그 마당에서 고기 굽고 봉숭아 꽃 키우던 기억은 세월이 갈수록 미화되어 그림 같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각인되어 있던 터였다. 그런데 이사 온 지 5년이 되도록 나는 외면만 하고 있었다.  턱없이 큰 정원과 일하느라 바쁜 나, 여름 한 철 잔디 4-5 번 깎아 주는 게 다인 남편.  정원은 애물단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코로나 시작 무렵, 재택근무가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맨날 집에서 컴퓨터로 일할 건데,  한국도 휴가도 못 갈 건데, 시간은 전보다 많아 질 건데, 그럼 뭐 하지? 방치해 둔 정원을 좀 해결해 보나?  긁어 부스럼 만들기 좋아하는 나는 정원 가꾸기를 내 '코로나 프로젝트' 로 임명하기로 맘 먹었다. 


우선 뭘 먼저 해야 하는지, 얼만큼의 노동 및 자본이 필요한지 알아야 했다. 그래서 일단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성공을 위한 작전들을 짜기 시작했다. 즉,


1) 전문가의 의견 구하기

2) 관련 책 휩쓸기.  온라인 강의도 포함

3) 안 할 수 없게, 중간에 포기 못하게 할 셀프-인센티브 강구하기


먼저 가드닝 업체를 수소문했다. 옆집에 정원사가 일하러 온 날, 끝나고 우리 집에 좀 와서 봐달라 했다. 아는 게 없으니 꽃이 많은 정원을 원한다는 지침밖에 줄 게 없었다. 정원을 이리저리 보던 그는, 꽃을 많이 원한다면 햇볕이 잘 들어야 하니 일단 나무를 꽤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스케줄과 정확한 견적을 기다리는 동안, 또 다른 가드닝 컴퍼니를 컨택했다. 꽤 단가가 높아 보이는 이 업체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다. 우선 전체적으로 가지를 치고 몇몇 병들거나 너무 커진 나무를 베어 버리자고. 그리고 베어낸 나무를 기계로 잘게 잘라서 정원 뒤편에 쌓아두고 멀칭(mulching)으로 쓰자는 아이디어도 좋았다. 장기적으로 흙의 질이 개선될 것이고 거름 살 비용도 절약되니. 고급(?) 업체답게 클라이언트 담당자인 폴은 식물-조경 관련하여 석사까지 받은 인텔리였고 총알처럼 쏘아대는 나의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가드닝 일자무식이었던 나는 좀 비싸더라도 Q&A 가 가능하고 일을 어떤 순서로 해 나가야 하는지 논리 정연하게 설명해 주는 이 업체를 선택하기로 했다.


정말 많은 나무를 베거나 가지 치거나.

얼마 후에 온 견적은 예상대로 높았다. 나는 다시 꼼꼼히 업체에 맡길 일과 그 비용을 검토했다. 나 혼자 절대 할 수 없는 일들 - 아름드리나무 베기, 높고 굵은 가지치기, 기계를 이용해 나무칩 만들기 -만 업체에 맡기고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내 손으로 하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꽃 심을 공간이 생기고 꽃이 자랄 환경이 조성될 예정이었다. 나는 견적에 사인을 하고 그해 여름, 우리는 많은 나무를 베었다. 


나무들을 정리한 가든은 이제 여기저기 공간들이 눈에 띄었다. 물론 잡초가 무성한 곳 투성이었지만, 적어도 꽃을 심을 자리들이 마련되어가고 있었다!




베어난 나무를 기계로 잘게 잘라 마당 뒤편에 쌓아 두었다. 가을엔 멀칭으로 봄엔 거름으로 정말 잘 썼다. 

그해 여름, 휴가 계획은 코로나로 날아가 버린 그 시간에 난 책과 온라인을 통해 어떤 식물들이 정원에서 키우기 좋은지 공부했다. 초기에 정말 좋은 책으로 가드닝을 너무나 즐겁게 해 준 두 저자들과 그들의 책을 잠깐 소개한다.


Piet Oudolf

네덜란드인인 그는 초원을 연상하게 하는 내추럴 스타일의 모던한 정원을 지향하며 이 분야에선 rockstar급의 인기를 구가한다. 최근에 이분이 한국에서도 몇 개의 가든 작업을 했다고 들었으니, 한국에 계시다면 그가 작업한 공원을 직접 찾아가 보기를 추천한다. 그의 조경 작품들은 허벅지까지 오는 키 큰 풀들과 야생화 느낌의 꽃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이 분은 우리가 아는 초록의 넓은 잔디밭의 조경을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무질서한 듯한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데다 내가 애초에 원한 게 꽃과 다양한 식물이 꽉 찬 정원이었기에, 나는 그의 스타일에 강하게 꽂혔다. 


Dream Plants For the Natural Garden - Over 1,200 beautiful and reliable plants for a natural garden. Written by Piet Oudorf & Henk Gerritsen

아우돌프의 이 책은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책 중 하나이다. 그는 공공장소 조경을 많이 하는데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매주 관리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강한 식물을 선호한다. 일단 다년생이어야 하고, 해충과 가뭄에 끄떡없고 또한 지나치게 번식력이 강해서도 안된다. 이 책은 1,200 가지의 식물에 대해서 정원에서 키우기에 어떤 특징과 주의점이 있는지를 아주 상세히 적고 있다. 나는 밤마다 이 책을 붙들고 사보고 싶은 식물들을 정성껏 메모해 놓곤 했다. 



Erin Bezakein

미국의 워싱턴 주에서 꽃 농사를 하는 그녀는 farmer-florist (꽃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플로리스트로 일하는 사람)라는 복합적인 직업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매력적이라는 점을 세계적으로 어필한 선구자이자 꽃 사업계의 마사 스튜어트 같은 사람이다. 10년 전, 2,500평 남짓의 꽃 농장을 시작하면서, 작은 땅에서 많은 꽃을 수확하는 방법을 나름 터득해 이를 바탕으로 책도 쓰고, 웍샵 프로그램도 개발하여 사업을 쑥쑥 확장했다. 동시에 화훼를 local business 화 하는 운동을 이끈 사람인데, 우리가 접하는 꽃의 90% 가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비행기 타고 수입되는, 지구 온난화에 많은 기여를 하는 유해한 상품이라는 것을 나도 이때 알았다. 


Floret Farm's Cut Flower Garden - Grow, harvest & Arrange stunning seasonal blooms. Written by Erin Benzakein with Julie Chai

꽃을 키우는 법에 대한 책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책이 유난히 성공한 이유는 사진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는 플로리스트를 겸하고 있어, 책 사이사이에 아름다운 꽃꽂이 작품을 끼워 넣는다. 내가 키운 꽃으로 정원뿐만 아니라 집안까지 아름답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책이었다. 사실 책 제목에 garden이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꽃 농사를 다뤘다고 하는 게 맞다. 다시 말해 씨에서 시작해 모종을 키우고 이를 다시 땅에 옮겨 심어 꽃을 기르는 방법을 잘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읽고 또 읽게 되는 책이다. 


낮엔 정원에서 허리 뻐근하게 땀 줄줄 흘리다가 하루 일과를 마친 밤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정원과 식물에 관한 책을 보는 일과는 이 당시 매일 계속되었다. 물론 그 틈틈이 회사 일도 했다! 식물과 정원에 대해 배우고, 메모하면서 나의 정원을 어떻게 만들어갈까를 상상하던 즐거움은 당시 내겐 인생의 낙이었다. 이렇게 고된 일 사이사이에 즐겁고 재미난 일을 섞어 주는 것. 이게 나의 self motivation 의 핵심이랄까. 


땅이 생겼다고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다.  방치해 둔, 그래서 잡초가 우거진 땅을 쓸모 있게 만들려면 몇 단계가 필요하다. 1) 잡초를 제거하고 2) 흙을 부드럽게 고르고 3) 거름을 주고 4) 내가 기르고자 하는 식물을 심어야 한다. 문제는, 광활한 정원을 혼자 개간해보겠다고 할 땐, 잡초 제거하는 데에만 수개월이 걸려, 이거 하다 꽃구경 근처에도 못 간다는 사실. 따라서 이런 식이면 너무 재미없어서 도중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 그러므로 좋아하는 책 읽기, 화초 쇼핑 등의 fun 한 일거리를 중간중간 섞어 나에게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결론. 


이 때 내가 고안했던 기막힌 방법이 있다. 정원을 가령 100평이라고 하면 이를 한 평짜리 땅 100개로 나누는 것이다. 100평의 잡초밭 정원을 바라보면 한숨만 난다. 그러나 일단 한 평의 땅만 바라 보고 거기에 집중해 열심히 잡초를 뽑고 거름을 준 뒤, 최근에 신나게 구매한 (셀프 보상용) 라벤더나 아네모네를 심는 것이다. 그러면 그 한 평은 적어도 완성이 되는 것이고, 작지만 예쁜 꽃을 갖춘 원하던 정원이 바로 눈 앞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매일 한 평씩 정원을 바꾸어 나갔고 저녁마다 읽는 책들은 꽃이 만발할 정원을 상상하게 해 주어 힘들어도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한참 꽂혀있을 땐, 실제로 밭을 구해 꽃 농사를 지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자연과 때로는 씨름하며, 때로는 협동하는 흥미로운 밀당이 있는 일이었다. 몸은 바쁘지만 사람들에 치이지 않는 조용한 작업 시간 동안 머릿속은 차분해졌고 땅에서 뭔가를 자라게 하는 것이 좋았다 . 부지런 떠는 걸 좋아한다면, 작은 것이라도 내 손으로 해보고픈 사람이라면, 몸이 고된 만큼의 정직한 보상을 바란다면, 농사란 참 좋은 일이다. 


가을이 되었을 때, 나는 또 한 번의 큰 투자를 결심했다. 정원에 있던 헛간 하나를 싹 개조해서 정원 용품 보관, 겨울에 모종 키울 공간 및 꽃꽂이 스튜디오로 만들기로 했다. 너무 어두운 터라, 천장에 창문 두 개를 내고 내부  선반 공사도 했다. 그리고는 친한 후배의 진두지휘 하에 벽을 사포질하고 페인트를 세 겹 칠했다. 처음 해보는 건설 노가다(?)였는데, 이것 역시 네덜란드 식으로 지인 찬스를 썼다. 노임이 무척 높은 이곳은 집안 공사, 이사 등을 할 때 친구들이 서로 돕는 경우가 많은데, 착한 후배가 자청하고 도와준 것이다. 

헛간 개조 - 천장에 창을 내고 방수 공사를 했다. 내부엔 선반을 좌악. 페인트 칠은 후배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정원엔 얼마 안 되어 새로운 꽃들이 피기 시작했고 나는 꽃이 주는 기쁨에 완전히 취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다가도 꽃봉오리인 상태로 5-6일을 머뭇거릴 땐 정말 애타는 마음이 되었다. 날씨의 변화, 또 나의 노력에 따라 정원의 생태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매일 피부로, 눈으로, 손으로 느꼈다. 꽃을 기다리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깊고 강해져 갔다. 그중 내 첫사랑은 달리아였다. 


달리아를 제법 심었는데, 이 꽃은 피는 대로 잘라줘야 더 많이 핀단다. 그래서 자른 꽃들을 물컵에, 화병에 꽂기 시작했다. 정원에 나무와 풀도 많아, 이들까지 동원하니 제법 꽃꽂이 같은 느낌이 나는 듯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꽂아보자 했던 게 너무 재미있어 일주일을 기다릴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잘 키운 꽃들은 내게 새로운 일거리와 즐거움을 주기 시작했다. 


처음 심었던 달리아. 이름을 잊었다만 멋진 투톤임을 기억한다. 

                    

이것도 처음에 사서 심었던 Waltzing Matilda라는 이름의 붉은 달리아. 


가을에서 겨울로 넘아가면서 나는 점점 꽃꽂이에 빠져 들었다. 이틀짜리 꽃꽂이 수업을 듣고 책도 (또) 엄청 샀다. 이야기는 이제 자연스럽게 가드닝에서 꽃꽂이로 이어진다. 신기한 취미 no. 1에서 취미 no. 2로의 확장. 하나를 잘하면 다른 하나도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이런 오묘한 시추에이션. 다음번엔 꽃꽂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 보겠다. 


생각해 보면 난,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들' 중 어렵고 하기 싫은 부류들을 이런 식으로 태클한다. 일단 일을 저지르고 안 할 수 없는 상태로 자신을, 상황을 몰고 간다. 그리고는 위의 세 가지 방법 - 전문가 조언, 책 읽기, 스스로 부지런하게끔 작전 짜기 - 을 번갈아 쓰면서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다. 난 절대 우수한 가드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충대충 하는 부분들이 여전히 많고 일은 대체로 고되게 느껴진다. 하지만 분명 정원 가꾸는데 있어서 큰 산을 하나 넘은 건 사실이다. 이 정도까지 온 것에 만족하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이리 자랑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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