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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KAY Jan 19. 2024

홍콩발 헬프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거리로 스며 나오는 이른 저녁시간이었다. 기름에 마늘 볶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 그 즈음 나 역시 장을 보기위해 종종 걸음을 치던 차였다. 거의 매일 드나드는 마트 앞에서 아주 난처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를 처음 보았다. 꽤 한기가 드는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한 눈에 봐도 많이 빨아서 나긋해진 얇은 티셔츠에 까칠하게 일어난 뒤꿈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슬리퍼 차림의 그녀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다지 오지랖이 넓은 성격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용주가 준 심부름 값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주인이 시킨 심부름을 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자신 역시 엄청난 곤궁에 빠진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건전지를 사야하며 잃어버린 금액은 3천원 정도였다. 그리 큰 금액도 아니고 꼭 갚겠다고 사정을 하는 통에 선뜻 돈을 내어줬다. 사실 돌려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그 자리에 서서 이미 꽤 오랜 시간을 흘러 보낸 것 같아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았을 뿐이었다. 그녀가 서둘러 건전지를 사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까칠하게 일어난 발뒤꿈치가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들은 그녀가 상습범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기반으로 하여 살을 보태며 잡담을 늘어놓았다. 두어 시간을 의미 없는 수다로 흘려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녀와 마주쳤다. 일주일 남짓 시간이 흐른 뒤였는데 그동안 그녀는 매일 지난 번 만났던 시간, 같은 장소에서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돈을 모두 돌려주는 것으로 상습범일지도 모른다는 오명을 단숨에 벗어버렸다.

 이야기를 나누며 찬찬히 살펴보니 그녀는 첫인상보다 앳된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 하자 마자 필리핀에 어린 동생들과 모친을 두고 홍콩까지 와서 가정부 일을 하는 그녀의 이름은 ‘메리미’라고 했다. 물론 철자는 내가 생각한 ‘marry me’가 아니겠지만, 순박해 보이는 인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름 정도를 교환하자, 그녀는 내게도 가정부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당시에 집에 들인지 얼마 되지 않은 가정부가 있었으므로 이미 가정부가 있다고 말했는데 어쩐지 그녀는 실망한 표정이었다.

 어쨌든 피붙이를 남겨두고 타향살이 하는 자들 중에 사연 없는 자가 몇이나 될까 싶어 그녀와 더 이상 인사말 이상의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누어 들 짐이 아니라면 애써 들춰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삭막한 마음이지만 이 나이를 먹으며 얻은 교훈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게 가끔씩 동네에서 마주치며 그녀에 대해 꽤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완고해 보이는 인상의 노인을 부축하며 지나는 것을 보고 그녀의 고용주가 현지인이라는 사실을, 장바구니 속 아기 기저귀로 그녀 고용주의 가족구성원을 짐작해 보았고, 일요일에도 동네 공원에서 편의점 봉지 빵을 뜯어 물고 시간을 때우는 그녀를 보고 어쩌면 그녀가 홍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에는 많은 수의 이주 노동자가 있다. 한달 월급 60만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에서 입주 가사도우미를 수입한다. 그들의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홍콩 자국민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법적으로 고용주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숙식 제한을 하지 않으면 혹시라도 야간에 추가로 일을 해서 홍콩인의 일자리를 뺏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휴일이 되면 가사도우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유시간을 즐기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까닭이다. 일터에서의 이탈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주는 일주일 중 단 하루.  

처음 홍콩에 왔을 때 그날이 무슨 요일인지는 헤아릴 생각도 못하고, 통제된 도로를 점거한 수 많은 여성들을 보고 무슨 대규모 시위현장이라도 목격한 줄 알았었다. 그들의 정체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지만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도로를 점거한 그녀들의 정체는 바로 헬퍼였다. 바닥에는 종이 박스를 깔고 필시 고용주의 눈치를 피해 만들었을 그네들의 음식을 펼쳐 놓고, 오락거리를 들고 나와 그녀들은 일요일이면 거리에서, 공원에서, 해변에서 논다. 그녀들에게 허락된 법적 휴식시간은 24시간이지만 실제로는 길면 12시간 정도를 필리핀 출신의 헬퍼들은 센트럴에서,인도네시아 출신의 헬퍼들은 코즈웨이 베이에서 암묵적으로 자신들의 구역을 지키며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고양이처럼 집주변을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간다.

 처음 그녀들의 휴일을 목격하고 일었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의문은 어느새 잦아들어 있었다. 이제 그녀들은 숨쉬는 공기처럼 내 삶에 존재한다. 옆집에도 앞집에도 다른 얼굴을 한 그녀들이 존재한다. 어디를 가도 마주칠 수 있고 언제라도 볼 수 있다. 남편 복 많은 년이 아줌마 복도 있다는 둥, 오복 중 으뜸은 아줌마 복이라는 말로 실제 그녀들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우스개가 아무렇지 않게 떠돌아 다닌다. 홍콩 생활의 매력 중 가장 큰 것이 저렴한 동남아시아 헬퍼의 공급이라고 꼽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힘들어 포기했던 가족 계획을 홍콩 이주로 재고하는 가정 역시 한둘이 아니다.

 물론, 괴담도 만만치 않다. 흔한 도둑질은 애교에 가깝다. 고용주의 피를 지니면 자신도 고용주처럼 복을 누릴 수 있다는 미신을 믿어 안주인이 사용하고 버린 생리대를 자신의 방구석에 간직해온 인도네시안 헬퍼가 사법적 처벌을 받고 매스컴에 실리기도 하고, 여권을 저당 잡혀 사설 금융에서 돈을 융통해온 헬퍼 때문에 고용주까지 협박을 받아오다 마지못해 채무를 대납해 준 이야기, 말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 해코지를 하는 못된 헬퍼, 밤이면 유흥업소에서 몸을 파는 헬퍼, 함께 떠난 휴가지에서 증발해 버린 헬퍼의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헤아릴 수조차 없다.

 언젠가부터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메리미 그녀는 어떻게 지내는 걸까.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도 매서운 겨울이 지났다. 높은 습도 때문에 젖은 이불을 덮고 지내는 것 같은 고통을 주는 홍콩의 겨울. 그녀에게도 필시 안락하지 않은 겨울이었을 텐데 새삼스럽게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사이렌 소리로 창 밖이 소란했다. 999 응급구조대가 도착했다. 광동어를 못 알아 들으니 무슨 난리인지 알 길이 없다. 며칠이 지나 다른 동네 사는 친구에게 우리동네에서 헬퍼가 투신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유리창을 닦다가 1년에 10명 미만으로 목숨을 잃지만 이번엔 분명 투신 자살이라고 했다. 어느 집 헬퍼인지는 모르노라 말했다.  사유는 ‘Home sick’. 유서가 있었는지 조짐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고 언제나 사유는 같다.

 우리집 헬퍼와 자살 사건을 이야기하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동네에서 불시의 어느 날 돈 30불(한화로 약 4천원)을 쥐어 주고 집에서 나가 있으라고 내쫓는 고용주를 둔 어느 헬퍼를 만난 적이 있다고. 홍콩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돈을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하던 앳된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아이가 안쓰러웠는데 혹시 그 아이가 몸을 던진 것은 아닌지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그 아이가 혹시 맨발로 슬리퍼만 신고 있지는 않았는지 물어 보려다가 관두었다. TV에서는 두 살짜리 남자 아이를 죽인 인도인 헬퍼가 얼굴에 눈만 뚫린 검은 천을 뒤집어 쓰고 경찰에 연행되는 뉴스가 며칠째 나오고 있다. 창밖을 바라 보았다. 이제 곧 지루하게 비가 쏟아지는 우기가 올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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