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에게 배운 것들
급급하게 혼인신고를 해서 결혼식과 결혼반지 하나 없이 연애 시절 내가 사준 커플링으로 시작해 시댁에 살았다. 아무것도 필요 없고 너만 있으면 된다는 말 진심이었어. 결혼 1년도 안된 시간 넌 모든 약속을 지켰다.
평소처럼 드라이브 가는 척 금은방 거리에 들려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라고 했다. 결혼반지 마음이 이상했다. 좋고 행복하지만 슬프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고 얼마 안 지나 시댁에 나가 집을 얻었고 우리 둘이서만 함께 사는 집이라니 난 너무나도 황홀해서 집을 이리저리 꾸며댔다. 출산 후 남편은 또 금은방에 날 데려갔고 내가 너무 초라해서 반짝거리고 예쁜 목걸이가 나한테는 안 어울린다며 필요 없으니까 가자며 울었지만 기어코 소중한 손길로 내 목에 반짝이는 마음을 걸어주었다. 그땐 목걸이하나로 그렇게 말하며 슬퍼하는 내가 너무 짠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갑작스러운 출산으로 미뤄진 결혼식을 위해 돈을 모으고 눈이 안 좋아 떨어지는 집중력으로 잘 다치는 날 위해 아까워하지 않고 라식을 예약해 줬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평범한 다른 사람들 보다는 잘 살게 해 준다고 약속하던 너 약속한 건 어기는 법이 없는 말의 무게를 너무나 잘 아는 다해주고 싶은 남편에게 내 말은 너무나도 가벼웠다. 1년도 안된 신혼 생활 내 남편은 할 수 있는 모든 것 보다 더한 노력을 한 거다. 오직 너와 날 위해서
당신이 지향하는 삶은 서로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묵묵히 각자 자신의 일을 하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아 사무치는 날이 오더라도 서로가 서로의 노력을 말없이 알아봐 주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조용히 안아주며 따듯한 마음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삶 나는 아직 어리고 성숙하지 못해서 내가 더 하는 게 화가 났다. 집안일은 말 안 하면 도와줄 생각도 없어 보였고 왜 꼭 내가 시키고 말해야만 하는 건지 답답했다.
나도 밖에 나가 대단하진 못 해도 전처럼 일을 하고 싶었다. 집 안에서 말 안 통하는 아이와 둘이 온 시간을 보내며 너덜거리는 손목 발목에 서러워 우울해하다가 과거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면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쌓인 감정들을 털어냈다. 못난 나의 결혼 생활은 내가 만들어 간 것이다. 행복하려고 온 시간을 쏟아부어도 모자란 마당에 한 번 이야기가 나오면 온 과거를 끌고 와 힘들게 했다. 나도 너도 지쳐가고 마음은 굳어갔다. 감정은 씨가 말라가는데 싸우고 싶지 않아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끝까지 화를 냈다. 우리는 대화 방식이 너무 달라 싸울 때 마저 뭐 때문에 싸우는지 몰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 말이 안 통해 답답했고 이렇게 서로를 화나게 하는 사람은 처음이라 감탄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쉴 수 있는 공간을 주고 싶었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퇴근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여느 갈라 치기 글들에나 나오는 짓을 내가 하고 있었다. 남들의 일상을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건 쉽게 내 주변을 비교할 수 있게 된다는 건데 그런 걸 어쩌다 본 날엔 마음이 더 모나 지기도 했다. 같은 방 침대에서 아이를 재우며 출근하는 남편 영상을 보면 도가 지나치게 독박 육아를 하는 것 같고 뭔가를 하고 뒷 처리를 하지 않은 것들이 쌓이면 난 뒷 꽁무니 따라다니면서 뭐 하는 걸까 화가 났다. 나는 집안일이 체질이라던 남편 말은 얼마나 화가 나던지 나도 그 정도만 하면 평생 체질이라고 난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해와서 일하는 게 체질이라고 말했다.
사실 밖에서 일하는 게 몸도 마음도 머리도 신경 쓸 게 얼마나 많고 압박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힘든지 출근길 나설 때 어떤 마음으로 집에서 나서는 건지 너무 잘 안다. 나의 자격지심으로 집에서 일하는 나는 편해 보일까 애 보는 게 쉬워 보일까 출산 후 생전 살면서 처음 느끼는 뼈에 찬물을 부어 전기로 지지는 고통에 온몸이 아픈데 난 보이는 게 없고 통장에 찍히는 것도 없고 해 봤자 되돌아오는 반복에 보람도 성과도 없는 것 같아서 일하고 들어와 매일 같이 힘들다 아프다는 말에 차가운 답을 했다. 나보다 네가 더 힘들지 하고 매일 퇴근 후 돌아온 남편에게 전신 마사지를 해주면 애 낳고 보느라 집안일하느라 출산 100일도 안되어 망가진 손목 신경도 안 쓰는 거 같은 남편이 괜히 미웠다.
누구보다 날 아껴주고 신경 써주는 사람 나만 보는 내 편인데 왜 그렇게 혼자 서운해했을까. 집안일을 도왔다가 내 맘에 안 들면 혼날까 봐 안건들인 거라는 말, 무슨 말을 해도 오해하니 말하기가 무서워 말이 없어진다는 말을 듣고 내가 널 많이 망쳤구나 생각했다. 누가 더하고 덜하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인데 잘 살아보자 행복하려고 결혼해놓고 왜 서로를 위해 일하고 모든 걸 버티면서 이런 걸로 다투면서 시간 낭비를 할까 후회했다. 내가 잘하는 걸 하면 네가 잘하는 걸 해주면서 서로 부족한 점을 채우고 강점 장점들을 옮겨 심어주는 게 부부 아니었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만들고 일터보다 집이 더 마음이 무겁게 해서 출근을 해도 내가 화나진 않았을까 괜찮겠지 걱정에 집중을 못하게 만들고 집에 오면 화나진 않겠지 신경 쓰이게 했다.
항상 모든 것을 여유 있게 천천히 해보라며 안 해도 되니까 하나씩 하면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긴 시간 기다려주고 인내하고 참고 버텨온 사람에게 못된 내가 그랬다. 다른 건 괜찮으니 버티게만 해주면 살 수 있다는 말 한마디하는 눈을 이제 미안함에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었다.
결혼 전 인생은 전생 같다는 말 그냥 없던 삶과 마찬가지라 해도 될 만큼 많은 것이 바뀌고 성장한 건 모두 지혜롭고 현명하고 바다 같이 넓고 따듯한 마음을 가진 남편 덕분이고 내가 살고 버티는 거 또한 같다. 그래서 네가 지향하는 삶은 내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삶이다. 과거의 이야기는 덮어 둘 줄 알고 참고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리 슬프고 아픈 상처와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도 우리가 행복한 순간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 행복이니까. 아픔들이 행복을 깰 필요는 없다.
마음에 언제든 낼 수 있게 품고 있는 사직서 같이 이혼 서류를 안고 산다는 부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이 때문이라도 서로의 미래 대신 과거의 시간들을 안고 고통을 품고 산다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불쌍하고 슬픈 노후이지 않을까 그렇게 되는 건 끔찍하게 싫다. 함께 만든 과거가 미래까지 닿았으면 좋겠다. 이런 걸 보면 결혼은 유지하는 거라는 말이 적당한 것 같다. 그건 내가 추구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내가 성장한다면 싸움뿐이라 길고도 두서없이 난잡했던 글의 제목 대신 평범하고 누구에게나 익숙한 글로 되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들어왔다 되돌아 나가고 또 어쩌면 많은 공감을 얻었을 독자분들께 묻습니다. 진정 아프지 않은 사랑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