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해외에 나가다(캐나다 밴쿠버 써리)

by 한영옥

대학교 1학년 때 부터 틈틈히 과외를 하여 용돈 쓸거 쓰고 매달 꾸준히 저금하였다. 그렇게 3년을 모으니 오백만원이 만들어 졌다. 대학교 다니면서 저녁에 과외하고 시간이 모자라 오고가는 지하철에서 서점에서 학과 공부를 하였다. 남자친구와 연애도 해야 하니 하루 24시간을 꽉 채워 쓴 나날이었다. 3년동안 모은 오백만원으로 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겨울방학 2달 동안 캐나다 어학연수 였다. 과외 하고 있던 학생의 고모님이 캐나다 벤쿠버에 살고 계셔서 다행히 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방학 두달간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쓸 생각으로 떠났다. 캐나다 벤쿠버 써리 라는 지역으로. 혼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거라 긴장도 됐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차근 차근 차분하게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4시간이 걸려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 도착하였다.

고모님이 마중나와 계신다고 하시니 안심이 되었다. 입국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고모님을 찾았다. 고모님 또한 차분하게 나를 맞아주셨다. 그 때 해가 넘어가는 때라서 고모님 지인들과의 약속이 많아 따라다니면서 맛있는 것을 잘도 먹었다. 캐나다 도착하자 마자 이건 뭐 새로운 사람들을 매일 연신 만나니 정신이 없었다. 그것도 한국 사람들만. 영어는 언제 써보는지 이렇게 한국사람들만 만나서 영어가 늘지도 않을텐데 하는 마음이었다.


눈이 잘 오지 않는다는 벤쿠버에 다리까지 쌓일 정도의 많은 눈이 내린 날이 있었다. 내가 캐나다에 온 것을 환영이라도 하는 듯 많은 눈이 내려 예뻤고 강아지 처럼 날 뛰며 좋아했다. 며칠 휴식을 취하고 본격적으로 어학원을 다니는 날이 왔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이 있었다. 어학원에 가보니 한국과 일본 학생들이 대다수 였다. 선생님만 외국분이시고 한국 어학원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나라와서 영어 학원 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시작 했으니 열심히 공부하고 갈 생각이다. 학원에 다녀오면 집에서 저녁공부도 계획을 세우고 매일 매일 해 나갔다.


주말에는 한국 교회를 나갔다. 고모님이 다니고 계셔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했다. 영어를 쓰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는 환경이었다. 나 여기 왜 왔는지 의문도 들었다. 회의감도 있었지만 주말에 혼자 집에 있기 그러니 교회에 나갔다. 난 종교가 없는 사람인데 가서 기도하는 척하고 재미있는 척하고 사회생활 하듯 제대로 쉬지 못하는 주말이었다. 정말 점점 교회나가기가 싫었다. 나중에는 말씀드려 주말에 혼자 집에 있었다.


주말이 지나면 일주일동안 또 학원생활이 시작된다. 학원에서 시험을 보았는데 문법에서는 꽤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듣기와 말하기는 영 꽝이었다. 심지어 대화하는 수업이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한 달 하고 나서 고모님께 말씀드려 나머지 한달은 영어 개인 과외를 받기로 하였다. 고모님이 아는 분이 계셔서 소개 받았다. 그 선생님과 함께 쇼핑도 다니고 햄버거도 사먹고 하면서 대화도 많이 하고 즐거웠다. 앉아서 하는 대화는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워낙 착하고 성실한 선생님이셔서 나를 잘 케어해 주셨다.


중간 중간 학원에 나가기 싫은 날이면 고모님께 말씀드려 벤쿠버 여행을 하였다. 고모님은 흔쾌히 가이드가 되어 주셨다. 다운타운에 가서 연기가 나오는 시계탑도 보고 커피도 마시며 다운타운의 활기를 느꼈다. 어느 날은 하얀 큰 돌이 있었서 화이트 락이라 불리는 해변에 가서 시원하고 차디찬 바다를 즐겼고 나무가 우거지고 숲이 멋드러진 공원에 가서 캐나다의 자연 환경을 만끽하였다. 캐나다의 많은 곳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벤쿠버 써리라는 지방의 소소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들을 경험 하였다.

<<벤쿠버 다운타운에 갔을 때, 연기 나왔던 시계탑 앞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


홈스테이한 집에 고모님 아들 규민이와 늘 함께 했다. 그때 규민이는 초등학교 6학년으로 순수하지만 외동이어서 약간은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남자 아이였다. 같이 한 방을 쓰다가 규민이가 불편함을 호소했는지 어느 순간 엄마와 함께 방을 썼다. 나도 불편해서 규민이가 자기 방을 쓰고 있는 동안은 눈치껏 거실에 나와서 내 할일을 해야 하는 내돈 내고 내가 눈치보게 되는 불편함이 생겼다.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규민이가 있어서 즐거움도 있었지만 서로가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도 컸다. 규민이가 나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집에서 홈스테이 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도 지인의 고모님 집이었으니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날 뻔했다. 그래도 고모님이 도시락도 맛있게 싸주시고 음식도 잘하셔서 다양하게 맛있는 음식을 잘 챙겨주셨다. 맛깔스럽게 해주신 닭요리는 잊을 수가 없다. 흉내낼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다.

홈스테이, 학원, 비행기 , 용돈 으로 쓰여진 나의 오백만원은 없어지고 통장에 0원이 되었다. 한국에 일주일 정도 예정보다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한국가서 다음 학기 준비도 해야 하고 새롭게 과외도 알아봐야 했다. 썼으니 벌어야 했다. 나름 짧은 영어 공부였지만 한국와서 영어도 같이 가르쳐 볼 생각이었다. 한달 3주간의 캐나다 벤쿠버 써리의 추억을 안고 한국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돌아올 때는 너무나 편안한 마음에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바깥도 즐기며 한층 여유있는 시간이었다. 누구도 마중나오지 않아 캐리어를 가지고 집까지 혼자 잘도 도착하였다. 행복했던 시간의 캐나다 여운은 꽤 길게 가져갔다.

내가 처음으로 한 외국여행, 그 장소는 캐나다 벤쿠버 써리였다. 그 곳에서 만나 사람들, 시간과 추억은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새로웠다. 나에게는 사진으로 그 추억이 간직 되고 있다. 다시 가 보고 싶은 캐나다 !! 자연 환경이 멋진 캐나다 !! 다시 만나게 될 그날을 기다려 본다. 다시 만날 때에는 캐나다의 멋진 자연환경을 더 누릴 수 있는 장소로 많이 여행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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