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인가, 약초인가? 숨겨진 가치의 재발견
이른 봄의 아침 공기가 살짝 쌀쌀하다. 둔덕 가장자리, 발자국이 덜 닿는 그늘에 잿빛 초록이 낮게 펼쳐진다. 잎 끝마다 잔털이 서늘하게 빛나고, 손끝으로 살짝 스치면 향이 먼저 반짝인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이 식물의 삶이 달라진다.
누군가에겐 ‘잡초’,
누군가에겐 ‘약초’,
또 누군가에겐 봄의 첫맛.
쑥은 애써 돋보이려 하지 않는다. 옆으로 퍼지며, 땅의 냄새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잎맥의 패턴은 오래된 문장처럼 정갈하고, 향은 잠깐의 기억을 소환한다. 같은 몸인데 표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아이러니. ‘여기선 뽑아야 하고, 저기선 귀하게 써야 한다’는 말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 쑥은 조용히 증명한다.
우리는 대개 이름으로 규정하고, 규정으로 대한다. 그런데 쑥의 방식은 다르다. 먼저 살아보고, 그다음에 불린다. 스스로의 효능을 광고하지 않고, 다만 몸으로 계절을 통과한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이 식물이 건네는 첫 번째 가르침이다. “판단보다 관찰이 먼저.” 가까이서 보면, 편견의 껍질이 먼저 벗겨진다.
상실도 비슷하다. ‘끝’이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모든 게 닫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효능이 천천히 올라온다. 어제의 상처가 오늘의 민감함을 만들고, 그 민감함이 내 삶의 감각을 가늘고 정확하게 만든다. 쑥의 향이 토닥이듯 퍼지는 동안, 나는 내 안의 ‘쓸모없음’이라는 라벨을 잠시 떼어낸다. 이름 없이 숨 쉬어 보는 연습. 그러면 가치가 조용히 올라온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는 오늘 몇 가지 이름을 덜 쓰기로 한다. 대신 더 오래 본다. 잎의 톱니, 잔털의 빛, 바람에 흔들릴 때 나는 아주 작은 소리. 그 디테일들이 내 판단을 ‘유예’시킨다. 유예는 미루기가 아니라, 정확해지기 위한 준비다. 쑥이 그러하듯, 나도 오늘의 효능을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규정보다 경험을 먼저. 단정보다 감각을 먼저.
깜별이의 메모
골목 끝 공사장에서 철판이 부딪히는 소리가 두 번 튀고, 바람이 차게 돌아 나온다. 깜별이는 담장 밑으로 몸을 낮추고, 쑥 잎 사이의 그림자를 오래 들여다본다. 고양이의 시선은 ‘무엇이라고 불리는가’보다 ‘어떻게 있는가’에 머문다. 한 번 냄새를 맡고, 두 걸음 떨어져 다시 눈으로 확인한다. 이름이 아니라 존재의 리듬을 기억하는 방식. 그 리듬이 내 호흡을 맞춘다.
- 네가 ‘잡초’라 불러 넘겼던 것 중, 다시 보면 달라질 한 가지는 무엇일까?
위 이미지는 AI생성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