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샤 May 05. 2024

카지노 딜러, 라스베이거스 소녀

#8

그녀는 아틀란티스 소녀가 아니고 라스베이거스 소녀였다. 나의 취향에 꼭 맞는, 네가 봐도, 내가 봐도, 우리 모~두가 봐도 예쁜,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었지만 큰 키에 이국적인 몸매와 마스크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전직 카지노 딜러였던 그녀는 하고 다니는 모양새나 외모, 학벌, 성격 모두 나와 1도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연 사이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처럼 나의 여자 운빨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독서 모임에서 만났다. 그녀의 목적은 단순히 교류 및 소통이었지만, 나는 언제나 그랬듯 여자를 꼬시기 위해 그 모임에 참여했었다.


첫 만남부터 서로 인상이 딱히 좋진 않았다. 나는 페미닌 몰빵 공주 스타일 취향이지, 멋진 오피스 우먼 스타일의 착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키가 170이 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평균 남성 키 수준인 내가 그리 치명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은 꼴랑 10명도 안 되는 독서 모임에 그녀와 나를 포함해서 총 6명밖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여자는 단 2명, 남자가 2배 이상 많은 상황이었고 가슴, 골반, 엉덩이가 과하게 발달한 그녀는 모든 남자들의 눈길을 받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나 또한 그것이 취향은 아니라도 본능적으로 자꾸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모임은 나만 처음 참가한 상태였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구면이거나 친분이 있는 상태였다. 그런 자리에서 그녀는 카페 자리에 모두가 앉아마자 자신이 방금 의사랑 선을 보고 왔는데, 부담스럽게 들이대는 게 영 별로라며 밥맛 떨어지는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앉은 지 1분도 안 돼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나는, ‘아, 이 한량 따위가 위대한 우리 의느님 한 번 재껴 볼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르메르에서 만든 건가 싶은, 고급진 블라우스에 하이웨스트 스커트, 승무원처럼 단정하게 묶어서 깔끔하게 정리한 머리.


겉모습만 봐도 ‘얘, 진짜 개 피곤한 스타일일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에 브라운 컬러 네일을 한 손톱이 상당히 유니크하고 센스 있어 보였기에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꼬셔봐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일단 메뉴 주문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고르는 것을 관찰했는데 디카페인 커피를 시킨 그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커피를 주문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 덜렁 쿨라임 피지오를 시켰다.


그렇게 기다렸던 메뉴가 나왔고, 나만 청량한 음료를 시키니 모든 사람들이 내가 시킨 시원한 형태의 잔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물론, 그녀도 포함해서.


나는 지체 없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지금 이거, 그쪽 침 삼키는 소리였어요? 이걸 그렇게 좋아하시면.. 어떻게.. 먼저 한 입 드릴까요?’라고 추파를 던졌다.


그랬더니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쑥스러운 듯 웃더니, ‘아뇨, 괜찮아요’라며 다소곳하고 싹수없는 말투로 거절했다. 하지만 나는 작전상 그 말을 무시하며 아무 말 없이 잔에 들어 있는 스트롱을 그녀 쪽으로 돌리고, 잔까지 살짝 밀면서 '많이 드실 거면 미리 얘기하세요, 다시 사 오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선 그녀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가지고 온 책을 꺼내 뒤적거리는 척을 했지만, 그녀는 ‘정. 말. 괜. 찮. 아. 요’라고 딱 잘라 거절하며 잔을 내 쪽으로 다시 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부분에서 나는 ‘그냥 때려치울까?’ 한번 더 고민했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그 후로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독서 모임이 끝났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카페 안에서 그녀에게 줄곧 눈을 떼지 못하던 깡마른 남자 하나가 그녀한테 집이 어느 쪽이냐고 말을 걸었다. 그녀는 ‘OO’이라 답했고 그 남자는 그쪽 방향으로 지나가니까 자신이 바래다준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그때 나는 잠자코 있다가 확실하게 그녀의 곤란한 얼굴을 감지하고 ‘제가 OO 사는데 떨궈드려요?’라고 던졌다. 당연히 예상대로 그녀는 ‘아, 정말요? 그럼 저 XX 공원 쪽에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저런 골격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은 대부분 깡마르거나, 슬림 탄탄한 근육조차 기피한다는 데이터가 있었기에 그 남자의 호의를 회피하려고 할 거라 확신했었다. 나는 체형 자체가 대근육들이 모두 크고 앞뒤가 두꺼운 스타일이어서 특정 부류에겐 불호의 대상일 수 있지만, 이런 쪽이 취향인 여성들은 정말 ‘환장’을 하는 체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나의 차를 타고 XX 공원 앞까지 가게 되었는데, 이동하면서 나는 일부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녀가 내리고 나도 따라 내렸는데, 그녀는 내가 내리는 것을 보고선 안 그래도 큰 눈을 부담스럽게 더욱 휘둥그레 뜨며 ‘왜요?’라고 물었다.


나는 오히려 그것을 받아치면서 ‘왜요? 그쪽한테 볼일 없어요. 나는 저기 건너편에서 커피 한잔 더 하고 가려고 내린 건데? 잘 들어가요’라고 툭 던지며 나는 내 갈 길을 간다는 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바로 카페로 이동하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그녀가 옆에 와 섰다.


솔직히 오늘은 조졌다고 생각해서 다음 기회를 노리려고 했는데, 옆에 그녀가 따라오길래 환호의 함성을 지를 뻔했던 것 같다. 그래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슬쩍 그녀 쪽을 바라보며 ‘아, 그쪽도 커피 한 잔 더 하시려고요?’라며 능청을 떨었다.


그녀는 입은 앙다문 채, 역시나 싸가지없게 고개만 까딱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2차(?) 커피를 즐기러 카페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혼자 자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도 서울 중심부, 입지 좋은 지역의 자가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니 나의 머릿속에 계산기가 미친 속도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집에 설거지할 거 있어요? 나 설거지 엄청 깔끔하게 잘하는데 좀 해드릴까요?’


어떻게 치고 들어가나 고민하다가, 이런식으로 나름 친다고 쳤는데 그 여자에겐 씨알도 안 먹혔다.


‘나 집에서 밥 잘 안 해 먹어요. 그래서 설거지할 게 전혀 없는데, 왜요? 여자 혼자 산다니까 공짜로 섹스하고 싶어서 물어본 거예요?’


순간 나는 나의 데이터 속에 존재하지 않는,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직설적이고 똑 부러진 그녀의 반응에 설레는 마음 반, 쪽팔려서 뒤질 것 같은 마음 반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고 여유로운 척 ‘피식’ 웃으며 서울 모 호텔을 예약했다. 이 여자를 거기까지 데리고 갈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조차 없었던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1박에 조식 패키지까지, 당시 50만 원 이상을 태웠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때 그 순간에는 1도 아깝지 않았었다.


결과적으로 그날 나는 그녀를 호텔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그날의 일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후회와 반성, 복습을 통해 나는 더욱 강해졌다. 호텔까지 데리고 가는 과정에서 세상 둘도 없이 찌질하게 굴었던 것 같다.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했다.


그녀가 상당히 짜증 나게 굴었기에 아마 숙박비로 2~30만 원만 태웠었다면, 그냥 그녀를 그렇게 카페에 내버려 두고 혼자 집에 가버렸을 수도 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선 섹스, 후 관계 정립 형태로 우리의 연애는 시작됐다. 그러나 꽤 특이한 전개로 이어진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반년조차 그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유는 나의 단순 변심. 사실 어쩌면 이 여자와 만나기 전에 딱 한 번 잤던,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여자와 그녀가 알고 지내던 사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일지도 모른다.


오지게 운이 없게도 그녀들 사이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 여자친구가 한 번 잤었던 여자를 평소에 심각하리만큼 우습게 보는 관계였다는데, 그런 애가 재수없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역으로 치고 들어오니, 그녀의 눈깔이 도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그녀는 나와 딱 한 번 잤던 여자에게 무슨 소리를 듣고 왔는지 화가 단단히 났고(써놓고 다시 잘 생각해 보니까, 그녀와 내가 호텔에서 같이 놀고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카톡이 왔다. 핸드폰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험악해지는 것을 나는 순진무구한 ?_? 이런 표정으로 지켜봤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집어물길래 집에 무슨 일이 있나..? 생각했는데..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겨버렸다ㅋㅋㅋ)




그렇게 나는 정말 오래간만에 여자에게 뺨을 대차게 후려 맞고 온갖 비난들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이렇게 이런저런 상황들이 상당히 불편해서 ‘단추 제대로 잘못 꿰었네, 에라~ 모르겠다’하며 다른 여자로 갈아탔던 것일 수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속인, 마조히스트 무당 (심의 판정 불가 주의 요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