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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샤 Dec 06. 2024

공백, 나의 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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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든 것이었던 이 사람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까. 우리는 영원할 것처럼 사랑했다. 영원할 것 같이 행복했던 시간들은 오히려 나에게 굳이 겪지 말아야 할 경험 따위를 선물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감정은 엉망진창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와 나는 소개팅 자리에서 만났다. 그녀는 나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고, 나 또한 그녀가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서로 첫눈에 반했다고 해도 될 만큼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졌다.


서로 연애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던 우리였다. 그녀는 여러 남자를 입맛대로 요리해 보려다가 호되게 당해서 어떤 남자든 애 아니면 개일뿐이라는 진리를 확실하게 깨달은 여자, 그리고 나는 여자를 필요 이상으로 잘 아는 남자였다.


우리는 함께 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싸우질 않았으며 그런 귀한 인연은 아마 다신 없으리라 생각한다. 언제나 내가 만나왔던 여자들은 나의 바람기에 대해 걱정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온 세상 여자 다 만나고 다녀봐, 어차피 돌고 돌아도 결국 넌 나야."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단 한 번도 바람(환승 본능)을 피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너무 사랑했으며 다시는 없을 것 같은 사랑에 초조하며 불안해했고, 그만큼 행복에 취해있었다. 나는 결혼 전 동거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간 여러 여자들에게 같이 살자는 제안을 수없이 받았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그런데 이 사람과는 만난 지 두세 달 만에 함께 살게 되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이상 성욕자였으며 성적 성향, 취향까지 상성이 잘 맞았다. 나는 가학을 일삼는 것을 통해 쾌락을 얻는 사디스트였고 그녀는 가학을 당하는 것을 통해 쾌락을 얻는 마조히스트였다.


그녀는 칠삭둥이로 몸이 매우 허약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몸이 허한 그녀를 걱정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나는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비로소 사랑받을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우리는 가학과 피가학을 통해 서로에게 쾌락을 선사하고 본인들의 비정상적인 욕구를 채웠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내가 가지고 있는 가학 성향과 본능적인 욕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면서 나의 타고난 성향에 경멸과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을 정도로 그녀를 많이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가 되어 그녀를 심하게 다룬 날이면 나는 자괴감에 빠져 우울해하곤 했다. 막 다루는 것과 거칠게 다루는 것에 차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던 나라도, 그녀와의 행위 후 쾌락과 함께 오묘히 밀려오는 공허함에 소름이 돋았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그녀에 대한 가학 성향이 줄어들었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나를 끔찍하게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남자가, 이렇게까지 나를 망가뜨려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 이건 너밖에 해줄 수 없는 거야."


나는 이런 말이, 지금 생각해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로 씁쓸하지만 당시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로가 닮았던 부분들은 우리가 운명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해 주었고 조금 달랐던 부분들은 숙명이라고 기면서 그렇게 우리는 열렬하게 사랑했고 끝없이 서로를 탐했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행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 번도 싸움으로 번지지 않은 단단한 관계를 유지했던 우리였지만, 결국 사람인지라 연인 간에 서운함과 섭섭함 정도는 남들과 다르지 않을 만큼 존재했다. 날도 그랬었던  같다.


우리는 별 것도 아닌 걸로 서로에게 약간의 서운함을 느낀 상태였고 마침 내가 본가에 잠시 다녀오려고 한 날이었다. 나는 집을 나설 때 그녀의 얼굴도 보지 않고 말로만 인사를 나누며, 우린 그렇게 잠시 떨어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집을 나서며 전화도 걸지 않았다. 내가 집에서 나올 때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표정이 어땠는지, 잘 다녀오라고 한 것 같은데 목소리가 어땠는지, 말투는 어땠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 그녀는 우리가 영원히 행복하리라고 믿었던  집에서 홀로 쓸쓸하게 숨을 거뒀다.


나는 그녀의 언니에게서 부고 연락을 받았다. 너무나 황당하고 억장이 무너졌지만 침착했다.


멍하니 있다가 핸드폰을 들고 '아내가 죽으면'이라고 검색했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를 제외하고 장례식에 참석해보지 않았던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본가에서 곧장 그녀가 잠들어있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이 너무 초조하고 두려웠으며 도착했을 때는 병원에 너무 빨리 도착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받았었다.


병원에서 마주한 그녀의 부모님은, 나를 그녀가 잠들어 있는 영안실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결혼을 한 사이도 아닌데, 구태여 이런 모습을 뭐 하러 보냐는 식의 말씀을 하셨다. 두 분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충격받을 나를 걱정해 주셨던 것이리라. 그도 그럴게, 어느새 나의 손을 꽉 움켜쥐신 그녀의 어머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어머님의 손을 살짝 힘을 주어 마주 잡고, 다시 살며시 놓으며 그녀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님 호통치시듯 절대 그녀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며 소리치셨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버님 쪽으로 고개를 푹 숙여 보인 뒤 다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에서나 본 듯한 기분 나쁜 조명 아래 누워있는 그녀는 이미 염을 마친 상태였다. 그 어여쁜 얼굴이 창백해서 놀라웠다. 발 끝엔 촌스러운 꽃신이 놓여있었다. 나는 시체를 처음 봤기 때문에 살짝 쫄았던 것도 같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녀의 드러난 어깨에 손을 올려보았다. 그렇게나 말랑하던 살결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슬퍼할 수도,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다. 나를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그녀가 더 억울하고 더 슬펐을 테니까, 나는 어떤 감정도 호소할 수 없었고 그 누구에게도 슬픔을 보여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상주 완장을 차려는 나를 보며 그녀의 부모님이 또다시 호통을 치셨다. 장가도 안 간 총각한테 어떻게 그걸 채우냐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의리가 있지, 어떻게 그래요’라며 그녀의 부모님께 정중하게 부탁드리고선 3 내내 그녀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혼자 멍하니, 예쁘게 나온 그녀의 영정 사진을 빤히 바라보고 있어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조문을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울어댔다. 나는 그녀를 위해 울어주던 그 많은 사람들을 보고 ‘너희들이 나보다 슬퍼?’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피곤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그 시간들도 결국, 전부 지나가고 그녀를 화장터에 데려갔다. 그녀가 화장터 화구로 들어갈 때 한 번, 나올 때 한 번, 주변에서 또다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역시나 그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가루로 변해버린 그녀를 작은 상자 안에 담는 사람의 표정이 떠오른다.  사람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을 수없이 많이 겪었을 테니 그들에겐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나도 이 상황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들이라며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려 애썼다.


나는 그녀의 가족 가루로 변해버린 그녀가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 납골당에 안치하는 모습까지는 굳이 함께 보지 않았다. 그저 밖에서 줄곧 담배만 태웠는데 피곤해서 졸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났다. 그녀의 어머님은 나에게 사례를 하고 싶어 했고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녀는 검색 사이트에 치면 바로 위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고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이었다.


나는 그저 평범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일 뿐이었고 직업도 평범했다내가 그녀로 인해 얻을  있었던 것들은 엄청난 것들이었으리라. 때문에 그 사례를 거절하면서도, 그녀로 인해 가지고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이 나, 쉽다는 생각도 했던  같다정말 나는 천상 쓰레기인 걸까?


아니, 나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나를 그런 이유로 불쌍히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기분이 매우 불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입장에선 나보다 나를 두고 간 그녀가 더 불쌍했다. 어쨌든 나는 살아있으니까.


그렇게 모든 게 끝나고 나는 그녀와 영원히 함께 하자고 약속했던 곳으로 담담하게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그날 전후, 느껴보지도 못했고 다시는 느낄  없었던, 얼굴 근육이 파르르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주섬주섬 나의 짐을 챙기고 우리가 함께 사용했던 침대에 걸터앉았다.


별생각 없이 서 있던 때와 다르게 침대에 앉아보니 너무 익숙한 그녀의 냄새가 났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 익숙한 냄새가 사라질까 안절부절못하며 그 자리에 그렇게 앉은 채, 그녀의 체취가 가득한 이불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근데 그렇게 질질 짜서 젖은 이불이 꼴 보기 싫어가지고 세탁기에 넣어 건조기까지 돌리느라, 빨리 나가고 싶었던 그 공간에 덩그러니 있었던 게 상당히 짜증 났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그녀가 떠난  내가 어떤 느낌이었는지여태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녀는 끝내  길이 없다. 상당히 분하겠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서로를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내가 본가로 떠나기 전 그날 저녁 집을 나설 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어땠고 목소리가 어땠는지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 봐도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녀의 얼굴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녀를 비워내고 잊었다. 하지만 만약 과거를 돌아갈  있다면 그렇게 나를 떠나기  그날의 그녀 얼굴을   번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언제나 감정 절제에 탁월한 능력을 보유했지만 욕심도 많고, 심술도 많은 사람이라 지금도 나를 두고 홀로 먼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분명히 심통이 잔뜩 나 있을, 누구보다 사랑스러웠던 그녀에게 이 글을 바친다.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라도 적어둬야지 했던 이 이야기를 벌써 10년 이상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적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에 들러보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역시 나의 치졸한 심술일까?


사실, 나는 영안실에 잠들어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악수라도 나누고 싶었었다. 하지만 당시 그럴 용기를 내지 못하고 겨우, 퍼렇게 변해버린 그녀 살갖에 손이나 살짝 대 본 것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쪽팔린다. 그래서 이것이 그녀를 당당하게 보러갈 수 없는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꾸며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믿어준다면 모든 것은 진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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