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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어 하루를 되돌아 보면 날씨가 먼저 떠오른다. 포근하고 따뜻하고 잔잔했다. 맑고 강렬한 햇빛 덕에 오랫동안 내 몸에 달라 붙어있던 추위가 살짝 녹았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샅샅이 냄새 맡는 고양이처럼 익숙한 장소를 찾아 걸었다. 그들은 나를 모르지만 내가 그 장소들을 기억한다. 장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파랗게 빛나던 바다와도 하늘과도 눈맞추며 안부를 나눴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만 같았는데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를 제외한 제주의 것들은 모두 그대로다. 아 아니구나 공사장들이 많아졌다. 생각지 못한 자리에.
육지에 있는 동안 계속 생각났던 가게에 들렸다. 왜 내 마음이 그곳에 오래 머무를까. 꽤나 외롭고 낙담했던 겨울 기분 좋게 이야기 나누었던 순간이 오랜 기간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곳은 밝아짐의 세상이기도 하니까. 갈 때 마다 네팔에서 밀크티를 마시던 산장이 생각난다. 따뜻한 난로가 켜져있고 나무 벤치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 그 곳에서만은 대화라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형태로 언어를 나눈다. 그런 느낌이 그곳에는 있다. 적어도 그랬던 것 같다. 오늘만은 아니었지만.
잘 알지 못하는 타인과 대화 나누는 것이 더 어려워진것만 같았다. 눈을 마주치기 힘들고 침묵이 흐르는 시간이 긴장된다. 어색하다고 느끼는 순간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것이 조금 더 고통스러웠던 것도 같다. 분명 맛있는 커피를 마셨고 맛있는 간식을 먹고 꽤나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는데 자꾸만 굴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만 싶었다. 이런 패턴이 자주 반복되는 것 같아 불안하다. 내가 진짜 로봇이 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라는 존재가 은근하게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다. 내가 별로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간다. 혼자있는게 더 어울리고 그게 더 편해지는 기분이 혼란스럽다.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지자. 타인과의 연결고리보다 나와의 연결고리를 더 단단히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진다. 굳이 행복해지지 않아도 나 자신과 더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