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비 Nov 14. 2022

커피 세계

핸드드립 일상

눈을 뜨면 세수를 하기도 전에 포트에 물을 담아 버튼을 올리는 날이 많아졌다.

졸린 눈을 비비며 고양이 세수를 하고 물양치를 마치고 나오면 물이 끓기 시작한다. 조금은 깨끗해진 정신으로 원두를 분쇄한다. 핸드밀을 사용하다 자동 그라인더의 맛을 보고는 버튼 하나로 원두들이 잘게 쪼개지는 마법에 감탄도 한다. 


물이 팔팔 끓으면 종이필터를 드리퍼에 올려놓고 린싱과 커피서버 예열을 함께 진행한다. 90~95도가 될 때까지 식힌 후 분쇄된 원두를 드리퍼에 평평히 담고 물을 2배수로 부어 뜸을 들인다. 이산화탄소 가스가 빠지면서 부푸는 모습이 마치 꽃이 피는 모습 같아 블루밍이라고도 부르는 이 과정은 원두 로스팅에 따라 다르지만 겨우 20초에서(다크) 아주 길어봤자 60초(라이트)를 넘기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부풀어가는 원두의 모습을 바라보자면 어쩔 수 없이 마음도 몽글몽글해진다. 하지만 이 때 몽글몽글해진 마음에 취해 일정 시간을 넘기게 되면 원두의 향미가 날라갈 수 있기에 정신을 다잡아야한다. 


1차 추출은 드리퍼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20ml의 물을 붓는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너무 소심하지는 않게 회오리모양을 그리면서 넓어지면 된다. 신선한 원두일수록 물을 부을 때 비눗방울처럼 무지개색이 올라온다. 이 무지개색과 함께 원두의 성분 중 산미가 추출되기 시작하는데 이 때 추출되어 서버로 떨어지는 커피의 속도는 포트에서 붓는 물줄기의 속도와 비슷할수록 좋다. 한마디로 템포를 맞춰야 맛있는 산미가 추출된다는 말이다. 

2차 추출은 단 맛을 뽑아내는 단계이다. 다크 로스팅일수록 2차 추출 과정에서 과다추출되어 쓴맛이 빠져나올 수 있으므로 신속함이 중요하다. 라이트로스팅 원두라 하더라도 2차 과정에서 단맛이 최대한 추출될 수 있도록 빠른 물줄기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2차 추출까지 마치고 원하는 커피 농도에 맞추어 물을 추가하면 한 잔의 드립커피가 완성된다. 

이 과정은 겨우 2분~3분 사이에 끝이 나지만 수 많은 변수(분쇄도, 물온도, 드리퍼종류, 필터 종류, 유량 등)가 존재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지 원두의 좋은 맛을 끌어낼 수 있기에 절대 만만한 시간이 아니다. 커피문화에 대해 알아갈수록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얼마나 큰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3분 짜리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커피 추출이라는 예술이 있기까지의 과정, 그 이후의 과정도 정말 다사다난하다. 5년 이상 된 커피나무에서 농부들은 손으로 혹은 기계로 체리를 수확하고, 그 체리의 가공방식을 선택해 진행하고, 건조 및 발효가 완료 된 생두는 로스터 혹은 기업의 가치관에 따라 단계별로 로스팅된다. 그 원두를 머신, 핸드드립, 프렌치프레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출하고 다양한 종류의 음료가 탄생한다. 그리고 그 커피를 시음하는 센서리 과정까지. 탄생에서 죽음까지 무수히 많은 손을 거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절망을 선사하는 커피인 것이다. 

한번 눈을 뜨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처럼 (마치 페미니즘처럼) 커피도 한번 그 세계에 발을 딛는 순간 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앞에 놓인 커피 한잔이 그냥 커피 한잔으로 끝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은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과도 같은 이유다. 


물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모두 커피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커피를 마시는 목적도 개개인마다 다르고 그 커피를 마실 용도로 주문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주문한, 혹은 내가 추출한 커피가 내 앞에 존재하기까지 거쳐온 수 많은 과정과 사람들을 잠시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한 사람이 내게 오는 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것’ 이란 말이 사람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울한 사람의 일기 훔쳐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