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링 Sep 06. 2022

교사는 이런 것도 해야 하나요?

네. 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했던 유치원 교사, 어린이집 교사, 보육교사 등등등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의 모습은 흔히 TV나 여러 영상 매체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


1. 샤랄랄라한 시폰 원피스

2. 차분하게 정리된 머리 or 반 묶음 머리

3. 피아노를 치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기


▲ 물론, 위 모습이 모두 가능하나 쉽지 않다.

왜냐고?


샤랄랄라한 시폰 원피스는 바깥놀이에서 흙이 튀거나, 미술영역에서 물감이나 사인펜이 묻거나, 점심&간식시간에 음식물이 묻을 확률 80%

 

차분하게 정리된 머리 or 반 묶음 머리는 출근 당시 내가 확인했던 모습과 1시쯤, 그리고 퇴근쯤 모습을 확인하면 추노가 따로 없을 확률 85%


피아노를 치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를 수는 있으나 교사가 치는 피아노가 완곡될 가능성 60%,

차라리 컴퓨터를 활용해서 MR이나 AR을 트는 게 속이 편하다.





2018년 7-8월, 내가 재직하던 원에서는 대공사가 있었다. 아주아주 대공사였다.

해당 원은 총 4층 건물(지하 1층 포함), 원내외 주차장 보유, 교실만 20개가 넘었으며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급식실과 강당 포함 10개 이상이었다. 이 모든 공간의 페인트를 다시 칠하는 공사가 여름방학기간에 예정되어 있었다.


다른 원도 동일한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원은 아이들의 작품 게시를 위해 벽의 3분의 2 높이까지는 테이프를 붙여도 페인트가 떨어지지 않도록 특수마감 처리가 되어 있었다. 때문에 원내 모든 공간(교실 포함)에 벽에 붙은 가구나 게시물들이 없어야 했는데 문제는.... 직장어린이집이었기에 아이들이 여름방학 직전까지 나왔다는 거다. 다행히 여름방학은 일주일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 바로 다음날부터 아이들이 등원했기에 공사는 2-3일 만에 끝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환기를 한다고 했다.


여름방학 전 날, 오후 5시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한 공간으로 몰아넣고는 교실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모든 교구장과 책상과 의자를 교실 가운데로 옮기고 벽에 붙어 있던 선풍기를 해체하고.. TV를 해체하고, 전선정리를 하며 환경판과 게시물들을 뜯어냈다.


나는 이때 태어나서 못질과 전동드라이버 사용을 처음 해봤다.

흔히 보쉬라고 부른 전동드라이버를 이때 알게 되었다. 이후 얼마 안 가 나도 개인적으로 구매를 했다.


교구장 정리와 게시자료 정리까지는 수월했다. 원목이기에 무게는 있었으나 교구장은 뭐.. 감당 가능한 무게였고 바퀴도 있었으니까. 책상도... 무겁지만 가능. 의자도... 처음에는 양손에 하나씩이었지만 나중에는 한 손에 4개씩 드는 것도 정말 가능했다.



문제는 선풍기와 TV, 그리고 전선작업이었다.


이걸 왜 내가 해야 하는가?


선풍기도 어찌어찌 옆반 선생님과 함께 해체가 가능했다. 그런데 선풍기에 딸린 관과 벽에 고정되어 있는 TV는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연결된 전선이 많았으며 벽걸이기에 꽤나 무거웠다. 결국 다른 연령에서 해체하다 사고가 났다. 그때서야 관리자들은 해체작업을 위해 사람을 불렀다.

시간은 오후 9시였다.

다음날 해당 기사님들이 3명이나 와서 (모두 남자분) 반나절 이상 원내에 있는 수십여 대의 TV 해체작업을 했다. 작업이 시작되자 담임교사들은 자신의 반의 TV해체작업을 지켜보며 다시 연결할 수 있도록 잘 익혀두라는 연락을 받았다.


또다시 의문이 들었다. "왜 내가 이걸 해야 하지?"  


해체작업을 지켜보던 기사님들이 "다른 일 보셔도 됩니다."라고 했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는 담임교사는 없었다. 다시 설치할 때 기사님들이 안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기사님들께서 관리자들에게 "다시 연결할 때도 저희가 와서 작업해야 합니다. 선생님들이 하시다가 고장 나면 수리 안됩니다."라고 말해주셔서 우리가 다시 설치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해체작업 시 떨어뜨린 TV는 액정이 파손되어 그 반은 남은 학기 동안 TV 없이 살아야 했다.




유치원/어린이집에서 드라이버, 케이블 타이 같은 도구들을 한 번도 사용 안 해본 교사는 없을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유아교육개론이 아니라 기계 수리나 전선작업 같은 건 학교에서 왜 안 가르쳐줄까요?

라고 말하며 떠들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오죽하면 새 학기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전선작업이라고 했을 정도니까.



담임교사는 교실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어디까지인지 의문일 때가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이름은 선생님, 아내, 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