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竹篦) 소리

휴먼 에세이 18

by 한결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강인한 정신과 어떤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는 유연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늘 흔들리는 갈대이기에 스스로의 마음의 불안함과 부족함을 메꾸고 평정심과 깨끗한 기운 유지를 위해 성찰, 명상 등에서 도움을 얻곤 한다. 바로 마음의 다스림이다. 평상 시 여유로울 때는 세상 둘도 없는 군자같이 굴다가 상황이 뒤틀리면 옹색해지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고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변하는 것이 페르소나의 간사한 얼굴이다. 늘 심지가 곧고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큰소리 칠 사람은 없을 터 우리에게는 예쁘게 마음 쓰는 훈련할 시간이 필요하겠다. 마음의 훈련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명상도 될 수 있고 기도도 될 수 있다. 그래서 굳이 시간을 쪼개어 사찰에서 주관하는 템플스테이에 가고 교회에서 주최하는 기도회도 참석하고 유명강사의 강의도 일부러 찾아다니며 듣는 것이다.


예전에 회사에서 일에 지친 직원들을 위해 마음 쉼을 하고 오라는 취지로 이박 삼일 간 휴식이라는 형식을 빌려 외부 단체에서 주관하는 휴양 겸 재충전의 프로그램에 보내준 적이 있었다. 나도 참석을 했었는데 그때 비록 학문적인 공부를 하진 않았지만 공부보다 더 힘든 경험을 했다. 낮에는 레크리에이션에, 심리치료 프로그램 배우기에 저녁을 먹고 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쉴 시간인 밤 아홉시 후에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숙속 방문 밖으로 못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괜찮겠는데 한 평 남짓한 좁은 1인실에 들어가 혼자 있게 된다. 휴대폰도 책도 반입 금지다. 원래 잠도 많이 없는데다가 잠자리가 바뀌니 멀뚱멀뚱 잠은 오지 않고 무조건 소등도 해야 하고 사방의 벽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듯 옥죄이는데 내 의지가 아닌 강제이다 보니 과거의 일이지만 그때는 무척 힘들고 당황스럽고 진짜 불편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내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필요 없는 것이고 그 빛을 잃는다는 것이다.


빛이 없으면 암흑의 세상이 되듯이 마음이 어두우면 내 삶 전체가 어두워진다. 어둠의 원인은 외부의 압력일 수도 있고 개인의 민감성 등 개인차와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에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마음에 빛이 있으면 어둠은 밝음으로, 불만은 감사로 바뀐다. 마음에 밝은 빛을 들이는 것이 과연 쉬울까. 하늘 아래 한 점,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자신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제어하고 빛과 어둠을 적절히 이용가능한 사람은 없다. 마치 물 메기의 비늘 같은 끈적끈적한 오욕칠정으로 덥힌 것이 삶일진대 빛으로 채우는 삶은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겐 어둠을 깨우는 죽비(竹篦)가 늘 필요하다.


죽비(竹篦)는 수행의 상징이다. 수행자가 참선시간에 꾸벅꾸벅 졸 때 스님이 장군 죽비라는 긴 대나무로 수행자의 어깨를 내리치고 수행자는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잡는다. 우리가 수시로 접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 들이 템플스테이에서도 경험해본 바가 있을 것이다. 죽비는 아랫부분의 대나무가 양쪽으로 갈라져 있어서 내리 쳐도 아프진 않은데 소리가 제법 크게 난다. 늘 깨어있으라는 울림이며, 정신 차리고 마음을 다잡으라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 승리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지나가던 ‘칼립디스의 해협’과도 같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군이 승리를 거머쥐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로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도망가면서 신의 저주를 받게 되었는데 10년 동안 고생스러운 귀향길이 바로 그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 도착한 ‘아이아이에라섬’에서 마녀 ‘키르케’를 만나 1년을 함께 보낸 후 선원들과 배를 타고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칼립디스 해협’을 지나게 되는데 그곳에는 세이렌의 마녀들이 살고 있었다. 그녀들은 천상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그 노래 소리에 홀려 넋을 잃고 듣다가 배가 바위에 부딪혀 난파되고 선원 들은 모두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때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게 하고 자신은 부하로 하여금 자신이 몸을 배의 기둥에 묶게 하여 절대 풀어주지 말도록 함으로써 세이렌을 보면서도 안전하게 해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위의 이야기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옳음의 방향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조선시대의 유학자 남명 조식선생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남명 조식 선생은 늘 ‘경의검(敬義劍)’이라는 칼과 ‘성성자(惺惺子)’방울을 차고 다녔는데 경의검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불의를 칼로 자르듯 정의를 실천하려는 다짐이었고 성성자라는 방울은 소리가 울릴 때마다 나태해지거나 교만해지는 자신을 깨우치게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설령 우리가 그분만큼은 못되더라도 닮으려고 배우려고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동물인 인간인 이상 유혹에 약해질 때마다 스스로 깨어날 죽비를 준비하고 필요할 때 사용해야 한다는 거다.


죽비는 내 마음 안에 있고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다. 그러나 때론 스스로 꺼내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꺼내지 못할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 세상을 살면서 원망과 분노, 미움과 시기를 모두 없애고 구도자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인간은 못될지언정 반성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워지려고 하는 비움과 채움이 균형을 이루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의무이다. 특히, 점점 힘들어지고 메말라가는 ‘코비드’ 세상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시대정신은 따뜻하고 포근한 세상을 만드는 선순환의 출발일 것이다. 세상은 우리 모두 공동의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나부터 내 안에 숨어 잠자고 있는 사랑의 마음을 깨워야겠다. 어지러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있음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나 살기 바쁘다고 모른 체 하고 살았다면 세파에 흔들려 엇나갈 때 마다 마음이 내리치는 죽비 소리에 제자리를 잡겠노라고 다짐해보는 시간이다.

사진 네이버 발췌(위 배경 사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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