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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Sep 20. 2024

성장기(性長期)

공감 에세이

[에세이] 성장기(性長期)

한결


보름달이 떴다. 해마다 9월이 되면 계절은 요람으로 돌아가는 듯 가을 향기 가득  가슴을 채운다. 마당에서 하늘을 보면 멀리 앞 산이 우뚝 솟아 있고, 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던 곳,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맑은 냇가, 마당에서 펌프질을 하며 빨래를 하시던 젊었을 때 어머니의 모습과 나팔꽃 찬란한 앞 뜰이며, 채송화 가득했던 꽃밭에서 노래를 부르던 나의 옛 모습,  가을이면 아버지와 함께 길다란 장대로 밤송이를 따던 추억들에 겨울철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던 장독대에 오르면 그런 나를 보고 뭐하냐는 듯 '멍멍'하고 짖던 검둥이의 모습까지 고향은 내게 자연이 무엇인가를 알게해준 놀이터였으며 늘 내가 돌아가고 싶어하던 '바이오 필리아'의 생명이었다.



내 고향은 경기도 북부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휴전선에서 가깝다보니 군부대가 많은 지역이었고 특히, 동두천이라는 지역과 가까웠는데 그곳에는 미8군과 헬리콥터가 있는 비행장이 있었다. 밤낮으로 군인들이 행군하는 모습과  탱크 지나가는 행렬을 보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군사 훈련 때면 미군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동네에는 군인 손님을  위한 다방과 술집도 꽤 있었는데 다방  옆에는 빠짐없이 여관이 붙어 있었다.  여관에는  진하게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누나 들이 유독 많았고 왜 그리 많았는지 그 이유를 몰랐는데 일련의 사건 들을 겪고 난 후에야 왜 그런지를 알게 되었다.


성(性)에 점점 호기심을 갖던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경부터였던 것같고 세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어린 나이지만 남학생 들의 성적 호기심은 왕성하기만 했는데  지금처럼 성교육도 없던 시절이어서 어렴풋이 남녀가 한 방에서 잠을 자면 아이가 생긴다고 인지만 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것은 모르고 있던 때였다. 집에서 친구들이 모이는 장소로 가려면 반드시 집 앞 작을 골목길을 지나  S다방 앞 큰  길을 지나야 했는데 어느 날 다방 앞 길에  만화책 한 권이  떨어져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것이다. 이게 웬 떡인가하고 얼른 달려가 주웠는데 그 안에는 지금까지 몰랐던 신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음화도 아니고 사진도 아닌 그냥 흑백만화, 회사 사장님과 여직원 사이였던 그들만의 로맨스, 난 그것을 동무 들과 킬킬거리며 함께 몇 번을 정독했고 그 만화책은 나와 동무들에게 성적 호기심의 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두번 째 사건은 미군 병사와의 일화이다. 우리는 수시로 마을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냇가로 물고기를 잡으러 가곤 했는데 드넓은 풀밭과 자갈밭, 강 줄기로 이루어진 큰 냇가였다. 그날은 수많은 군인 들이 냇가 양 둑 사이로 행군을 하고 그곳에는 미군 탱크까지 여러대가 나와 있었다. '끄르릉 끄르릉' 우리는 탱크를  구경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갔는데 미군병사하나가 해치를 열고 나왔다. 우린 초콜릿 하나 얻어겠다고 유일하게 알고 있는 영어로  '헬로 기브미 초컬릿!" 을 수차례 외쳐댔지만 그 병사는 잠깐 얼굴을 내밀저니 들은 척도 안하고 도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에 다시 나온 병사는 뭔가를 '휙'  던져준다. '아! 그때의 충격이란' 다방 앞에서 주은 잉크로 그린 만화책이 아닌 실제 백인 남녀의 적나라한 알몸은 신비감을 넘어선 경이로움이 었고 우린 신세계를 보았다. 한편, 엄청난 충격에 빠지기도 했는데 사진 속 백인 남성의 중요 부분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람의 대상이었다.


세번 째 사건은 실로 놀라운 대 사건이었다. 마을의 중심에는 시장이 있었는데 오일장이 열렸다 평상시에는 생선가게, 그릇가게, 옷가게, 부식가게 등이 있는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도 커다란 술집이 있었는데 문제의 사건은 그곳에서 일어났다. 시장통 생선가게 아줌마의 딸이 우리의 과외 선생님이었고 우리는 과외 수업을 마치고 시장통에서 사방치기나 구슬치기를 하고 놀았다. 그런데 저녁 어스름 무렵, 갑자기 학교 선생님 들이 몰려오신다. 그것도 여자 선생님 들은 하나없고 모두 남자 선생님 들 뿐이다. 무섭다고 소문난 지금까지도 이름을 까먹지 않은 P모 선생님을 필두로 그러고 보니 소문으로만 듣던 월급날이다. 저녁을 드시러 가시나 보다 했던, 단순히 식당인줄만 알았던 그곳에도 함정은 있었다. 동무 한 녀석이 헐레벌떡 발려온다.


"얘들아, 선생님 들이 여자 들이랑 춤춰!"  


우리는 누가 뭐라 할것도 없이 그리로 달려가 몰래 엿보기 작했다.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는가 싶더니 어느새 젓가락 장단에 노랫소리가 울려퍼지고 그 근엄하던 P선생님은  파리끈끈이처럼 끈적거리는 전축의 음악에 몸을 맡긴채 화장 진한 누나와 한몸이 되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이 황당하면서도 당황스러운  관음 행각은 동네 어른에게 발각된 후에야 끝났다.  다음날 학교에가서도 나는 선생님을 바로 쳐다 보지 못했다. 그 선생님만보면 쥐 잡아먹은 고양이처럼 새빨갛게 입술을 칠한 술집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뒷바라지하느라 함께 서울에서 사시다가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를 하셨는데 아버지는 계속 고향을 지키시다가 건강이 좋지 않으시고부터 우리가 사는 서울 계신곳으로 오셨다. 고향 집은 빈 집으로 남아 있었고 일년에 두번 정도 가서 둘러보곤 하였는데 어느날 청천병력같은 소식이 들린다.


''고향 집 팔았다. 사람이 안사니 흉가가 되어 가고 매년 가서 관리하기도 이젠 힘드니 그렇게 알아라''


갑자기 마음에 서운함이 밀려왔온다. 언젠가는 내게 물려주시기로 한 집을 파시다니, 갑자기 멍해져 쇼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사실, 고향집은 내 것이 아니고 부모님 재산이기에 나에겐 권한이 없다. 물론, 부모님께서 물려주실 재산이 욕심이 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고향의 집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고, 나의 어린시절의 추억과 소중한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보물상자 였기에 그 충격은 실로 컸다.


마치 어린 시절과 과거를 송두리째 잃어버린듯한 허전한 마음으로 혼자 중얼거리다보니 상실감이 떠나질 않는다. 지금 쯤 고향역 녹슨 철길 옆에는 이름없는 꽃들이 잔치를 열고 돌돌돌 흐르는 시냇물에선 송사리 떼가 뛰놀고 있겠지. 5일장에서 풀무질을 하며 망치로 씨뻘건 쇳덩이를 두드리던 대장장이 아저씨의 땀방울과 시장 한구석  녹두전을 부치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뻥튀기 할아버지의 '뻥이요' 외침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한데, 유람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곳 없는 나그네의 마음이 이럴까.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다.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은 있겠으나 댐에 수몰된 자기 근본을 찾는 이주민의 마음이 이럴까.  잃어버림에 대한 상실감을 어디서 위로받아야할지 아파트의 높은 시멘트 벽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답답함에 갇혀 사는 내게 유년시절의 추억과 부모님의 사랑과 포근하고 따뜻했던 고향의 산과 들은 늘 돌아가고 싶은 퀘렌시아 였건만 지금은 남의 것이된 고향집을 이제 회상과 상상으로만 느껴야한다고 생각하니 영 마음이 어질어질하다.


고향 집은 이제 볼 수없다. 채송화, 나팔꽃이 만발했던 정원은 잡초가 숲처럼 우거졌고 아버지의 함자가 적혀있던 대문도 허물어졌다. 어릴적 심었던 향나무 세  그루만 남아 그 옛날을 회상하는 듯  한데 사진으로나마 볼 수 밖에 없는 고향 집에서의 추억들은 앨범 속에서 잠들어 있고 부모님의 젊은 시절도 고향의 세월따라  따라 흘러 퇴색되어 흐려만 간다. 성에 호기심 가득했던 소년이 었던 내가 얼마 안있으면 노년이 되는 시기에 와 있으니 세월은 달리는 말보다 빠르고 활에서 날아가 순식간에 과녁에 꽃히는 화살보다  빠른 듯하다. 변하지 않은 것은 내 안에 살아남아 꿈틀거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 생로병사의 인생은 지금도 어김없이 초침을 바삐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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