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이미 왔음에도 여름이 떠나질 않고 있다. 요즘은 입맛이 없어서 커피와 물만 들이키고 있는데 이럴 때 물에 말은 찬밥에 오이지가 생각난다. 난 오이를 썰어서 고추장, 양파와 무치는 생무침도 좋아하고 오이지를 잘게 썰어서 무친 오이지 무침도 좋아만 좋지만 시원하게 들이키는 국물이 있는 오이지 냉국을 특히 좋아한다. 오이지 냉국은 가지 냉국과 함께 더위에 시달린 때나지친 몸에 원기를 불어넣어주는 최고의 음식이자 소화도 잘 되는 채식 식단이다. 거기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간고등어 한 입이면 소박하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감칠맛을 선사하는 최고의 밥상이 된다.
요즘은 집에서 에어프라이를 통해 고등어를 구울 수 있지만 귀찮기도 하고 오이지 냉국을 손수 만들 생각에 고등어는 생선구이집에서 공수하기로 하고 오이지도 시장에서 사기로 했다. 물론 마트에서도 절은 오이 몇 개가 들어있는 것을 비닐팩으로 포장해서 파니 그것도 좋겠다. 오이지 냉국의 최고 장점은 재료를 구하기가 쉽고 꼭 주부가 아니더라도 만들기가 간편하다는데 있다. 요양병원에서 어머니를 외출시키는 김에 시장 옆 마트에 들러 오이지 몇 개를산다.
오이지를 깨끗이 씻은 후 적당한 두께로 썬 후 꼭 짜준다. 이때 너무 얇게 썰면 오이지 특유의 오드득한 식감을 일어버리니 주의할 일이다. 너무 짜면 찬물에 적당한 시간을 담궈둔다. 양녕과 고명차례다. 청량고추를 아주엷게 한 개정도, 홍고추도 마찬가지 썷어넣는다. 쪽파를 송송 썰어 넣어도 좋다. 매실 청이나 오미자청 등을넣고 향미를 가미 한 후 물을 붓는다. 간을 본 후 싱거우면 소금이나 단맛을내고싶으면 양파를 채로 썰어 넣어도 좋다.
찬밥에 물을 말아 한 숟갈 뜬 뒤 그 위에 오이지를 얹고 한 입에 넣고 씹는다. 바로 이어서 고등어 자반 구이의 하얀 속살을 한 조각 잘라내어 입에 넣고 또 밥 한 숟갈, 그 다음 아삭한 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입에 넣는다. 그 다음 시원한 냉국물을 한모금 마신다. 슴슴하면서도 짭조롬한 새콤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면 입맛이 절로 돌면서 세상에서 가장 맛난 성찬이 된다. 어렸을 때 덥디 더운 여름날이면 어머니가 해주시던 오이지 냉국의 맛이 난다. 우리집은 미역과 생 오이를 채썰어 넣은 오이 냉국보다는 오이지 냉국을 더 좋아했다. 피자에 오이피클이 점령하고 있는 이 시대, 갖가지 반찬에 국까지 사서 먹는 세상이지만 이렇게 오이지 냉국을 만들어보는 것도 옛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쏠쏠한 재미다.
한 그릇의 의 오이지 냉국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독 안에서 아삭아삭하고 수분 많은 오이가 소금에 절여지면서 짠맛이 잔뜩 배인 오이지로 탄생하기까지 누름돌밑에서 얼마나의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까. 푹 절여진 오이지는 원래 신선한 모습의 오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되어 밥상에 오른다. 김치도 걷저리가 있고 푹익은 김장김치가 있고 각기 맛이 다르나 모두 식탁에서 사랑받듯 싱싱한 채소로써의 오이는 푸르고 탄력있는 맛으로 절인 음식으로써의 오이지도 짭짤하고 씹는 맛이 일품인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소중한 식재료다.
고추장에 무친 생오이 무침이 파랗고 빨간 정열의 매운 맛으로 밥 한공기를 더 외치게 만드는 밥도둑이라면 오이지 냉국은 본래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쭈글쭈글해져 아무 쓸모가 없는 듯하지만 푹 익은 원숙한 맛으로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 주는 피로 회복제다. 오이지 냉국에서 나의 삶을 반추한다. 하나의 오이가 소금 몇 줌과 시간의 흐름을 더하여 숙성된 오이지가 되듯 삶의 희로애락을 다 겪어내고 지금까지 살아온 중년의 삶도 얼마든지 맛을 낼 수 있다면$ 청춘의 시간은 짧고 지나가면 되돌아오지 않듯 중년에게 주어진 시간도 노년을 맞이하기 전 마지막으로 주어진 가장 젊은 날이기도 하다. 얼마든 내면에서 우러나는 오이지 처럼 숙성된 맛을 뿜어 낼 수 있다. 냉국을 한 모금 들이킨다. 목구멍을 타고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기분, 때늦은 더위를 식혀내고 나니 한층 힘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