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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Aug 01. 2024

잠자리

공감 에세이

[에세이] 잠자리

한결


장마가 끝나고 맑은 하늘이 떠오르니 무더위가 함께 찾아왔다. 점심을 마치고 오랜 만의 맑은 날씨를 즐기고 싶어 산책을 나갔더니 온 세상이 뜨거운 태양아래 절절 끓는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씨,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에어컨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지경인데 이제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시작된듯 하다. 점심 식사 후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산책 중에 조용한 길모퉁이 나무에 잠자리 한마리가 살짝 내려 앉았다. 사진을 찍으려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저만치 날아가더니 다시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더니 날아가 버린다.


잠자리하면 어린 시절 친구 들과 잠자리가 지천이었던 들판과 내 키보다 더 높이 솟은 옥수수밭을 지나 냇가로가던 광경을 추억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잠자리가 손등이나 발에난 사마귀를 먹는다고 하여 잠자리를 잡아 뜯어먹게 하기도 하였고 꽁지를 실에 매달아 마치 애완견처럼 데리고 놀기도 했던   개구쟁이 시절이었다. 시골 아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그 때는 마땅한 장난감도 없었고 자연에서 구할 수있는 모든 생물들, 개구리, 방아깨비, 잠자리 등 이 장난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하도 잠자리를 괴롭혀서 그벌로 다음생이 있다면 고통받은 곤충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고 잠자리나 개구리로 태어나지 않을까할 정도로 그 시절의 나는 악동이었다.  요즘 도시에서는 개구리나 사마귀가 거의 없기에 말벌이나 거미가 잠자리의 천적이지만 지금도 시골 지역은  잠자리, 개구리, 뱀으로 이어지는 생태계 먹이사슬이 존재한다. 그러나 잠자리 진정한 천적은 개구리나 사마귀가 보다 더 많이 잡아들이는  동네 꼬마 들과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어른 들, 즉 인간임은 부인할 수 없다.


잠자리는  종류가 너무 많아서 셀수도 없는데 몸통이 가늘고 긴 실 잠자리, 주로 물가에 사는 물잠자리, 개체수가 많고 어디에 앉아있는 시간이 비교적 길다는 푸른 빛의 밀잠자리, 초록빛을 띠는 왕잠자리 등 수많은 종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고추잠자리나 실 잠자리를 빼고는 명확히 구분하지는 못한다. 때론 두 마리의 잠자리가 붙어서 함께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둘은 사랑을 나누는 중이다. 사실 잠자리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때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기에 하늘에서 사랑을 나눈다고 한다. 잠자리는 파리, 모기, 하루살이 등을 잡아먹기 때문에 우리에겐 유익한 곤충이지만 참새나  천적의 위협에 항시 시달려 1초에 수십 번의 날개짓을 하여 공중을 쉴 새 없이 날아다닌다.


문득, 우리의 인생이 날아다니는 잠자리같이 쉴 틈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이 들은 바쁜 부모님들을 대신에 학교가 끝나도 학원에, 방과 후 학습에 맡겨지고 청소년들도 좋은 대학에 진학한다는 명목에 편히 쉴 틈도없다. 대학을 졸업하면 어떤가. 엄청난 취업시장에 내 던저져 먹고 살기 위한 전쟁을 해야한다. 이 어려운 세상에서 잠자리만큼 죽어라 날개짓을 해도 집 한칸 마련하기 어렵고 아이 한 명 키우는 것도 버거우니 결혼도 집 마련도 포기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나는 어떤가를 돌이켜보면 죽어라 일만하다 보니 어느 새 노년을 앞둔 중년이 되었고 노후를 질병과 싸우며 살아가시는 부모님의 막대한 병원비며 그에 따른 부대비용 등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생각할 때 앞으로 초고령화 시대를 어찌 살아갈까 걱정부터 앞선다.


어제의 일을 뒤로하고 부산 출장을 다녀 오던 중 휴게소에 들러 쉼터에서 잠시 쉬자니 잠자리 한 마리가 앉을 듯 앉을 듯 계속 주변을 날아다닌다.  잠자리의 커다란 눈과 마주쳤다.


' 이 무더위에 잠시 날개라도 식히고 가렴. 난 너의 적이 아니니 앉아도 돼'


마치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기둥위에 살짝 내려 앉는다. 그리고 가만히 숨을 죽이고 조금의 미동도 없다. 비행기 프로펠러 돌아가듯 바쁜 세상에서 잠자리와 내가 함께 잠시의 휴식을 갖고 있다.  세상을 살면서 지금까지 난 얼마나 많은 횟수의 비행을 했을까. 아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네 개의 날개를 쉴 새없이 움직인 잠자리보다 더 많이 몸부림치고 날개 짓을 했을 것이다. 마치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 태어났으니 살아야한다는 목적의식을 전도한 채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불편함과 거추장스러움, 어울리지 않는 복장으로 살아남기 위해 버티고 또 버티었을 것이다. 굳이 스스로 묻지 않아도 이미 마음은 답을 알고 있다.  


잠자리 들이 이리도 많은 것을 보니 조금 있으면 가을이 오겠다. 세상사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없었듯 그러려니하고 살아온 지금,  어찌보면 잠자리의 짧은 삶이나 지나고보면 한 점밖에 되지 않는 나의 삶이나 순식 간인 것은 똑같다. 남은 삶은 고단한 날개짓을 잠시 멈추고 물도 마시고 그늘아래서 더위도 식혀가며 조금은 쉬어가는 스스로에게 여유롭고  너그러운 삶이고  싶다.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구름이 자유롭게 유영하고 지금, 그 누군가와 함께 하늘을 손짓하며 함께 산책하고 싶은 시간, 마음도 덩달아 구름처럼 두둥실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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