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에세이
[에세이] 숨 : 쉼
한결
우리 집 큰 아이는 잠이 많다. 휴일에 외출이 없는 날이면 방에서 하도 나오지 않아 어디가 아픈가하고 걱정할 때쯤되면 호랑이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온다.
"그렇게 자면 허리 안아프니?"
"괜찮아. 난 세상에서 잠자는게 제일 좋아."
잠이 보약이라는 말처럼 아마도 큰 아이에게는 잠이 최고의 휴식인 듯 하다. 그렇다.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휴식은 필요하다. 휴식은 꼭 움직이지 않고 쉬는 것만 휴식이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르기에 쉼도 수십, 수백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 시간이 있다면 평일에는 퇴근 후 운동을 마치고 식사를 한 후 내 방에서 가볍게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드는데 눈을 뜨면 바로 새벽이다. 그럴 때면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고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앞으로 일어날 좋아하는 것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못 다 읽은 책을 읽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가만히 누워 멍을 때리기도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고 누구도 건드리질 않는다. 한 낮의 시끄러움을 재우는 새벽, 난 고요 속에 우주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시간은 오로지 나 만을 위해 정적을 선사한다. 몇 시간 후 겪을 세상의 혼잡함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아주 고요하고 적막함의 평안이 나를 지배하니 이 또한 내가 누릴 수있는 특권인 쉼의 시간이다.
휴일엔 커피를 마시며 양지바른 아파트 단지 안 의자를 찾아 따스한 볕을 쬐며 앉아있는 것을 좋아한다. 때론 아파트 단지 안을 아주 천천히 걷기도 하는데 나무를 보고 꽃을 보며 점점 짙어지는 초록을 감상한다. 때론 주인의 손에 이끌려 나온 강아지가 산책하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파란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봄의 따스함에 살짝 졸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내겐 쉼이다.
꼭 조용히 있는 것만이 휴식이라는 뜻은 아니다. 번잡한 일상을 뒤로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 특히 비행기에 몸을 싣고 어떤 관련성도 없는 외국으로 떠나 그 나라의 문화와 모습에 흠뻑빠져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마주하고 평소에 부대꼈던 마음의 짐들을 잠시 미루어 놓고 나도 모르게 쌓인 내 안의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치유받는다. 이 것 또한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다. 많이 걸어서 힘들고 말이 통하지 않아 불편해도 잠시나마 일상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힘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쉴 틈이 있었나 싶게 앞만 보고 달린다. 어쩌면 쉬면 멈춰진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라서 쉬는 법을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잡다한 소음을 모두 모아놓은 듯한 시끄러운 세상이 삶의 전부인 듯 그저 순응의 미덕으로 모든 존재 들의 찌꺼기를 받아들일 때 그 중 미쳐 소화시키지 못한 것들은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소멸되지 않은 채로 내 몸 어딘가에 쌓일 것이다. 쉼은 어렵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다. 그런데 왜 우리는 쉬지 못할까. 하늘을 바라보다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을 보며 무엇을 닮았나 찾아보는 시간, 빗방울이 창문에 부딪혀 흐를 때 잠시 귀를 열어 비오는 소리를 듣는 시간, 쉼은 멀리있지 않음에도 위를 쳐다보지 않았고 우산을 찾기에 바빴다.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취미와 휴식은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다. 즉, 취미 생활은 휴식이 되는 것도 있으나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운동을 예로 들면 운동 매니아인 사람은 운동을 취미로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하는데 그에겐 운동이 휴식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억지로 하는 것이지 결코 휴식이 아니다. 헬스클럽에 가기 전 갈까 말까를 수도 없이 갈등하면서 가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야한다. 건강하기 위해서 마음을 다잡고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럴 땐 쉼이 아니다.
쉬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어떻게 쉬어야 잘 쉬는 것일까가 매우 중요한데 쉼은 모두에게 같지 않다. 방향도 다르고 속도도 다르며 방법도 다르다.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는게 진정한 휴식의 출발점이며 방향키이다. 쉼은 멀리 있지 않다. 쉬지 못하면 숨쉬는 것이 어려워진다. 숨을 쉬면 된다.
새로운 하루의 새벽을 맞았다. 이 시간은 지겨운 회의도 없고 은퇴 후의 걱정도 없다. 초원으로 생각하면 말들이 보이고 베트남 다낭의 미케비치라고 생각하면 바다가 보인다. 난 여전히 숨을 쉬면서 쉼을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