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에세이
[에세이] 옥수수, 그 옛날의 영광에 대하여
한결
머리가 수북하니 영 지저분해보여 머리를 좀 다듬을까 해서 번화가에 있는 단골 미용실을 갔다. 버스에서 내려 신호등 파란불을 기다리던 중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나길래 돌아봤더니 옥수수 찌는 냄새다. 그러고 보니 그 옥수수 리어커는 일년 내내 그 자리에 있었다. 늘 냄새는 났던 것 같은데 내가 관심이 없었던 것이겠다. 맛있을 것 같아 사려다가 우선 머리부터 자르고 다시 그곳을 찾아 옥수수를 몇 개 사서 집으로 가져온다. 단정하게 긴 수염을 면도 하고 하얗게 이를 드러낸 따끈따끈한 옥수수, 집에 돌아와 맛을 보니 예전의 맛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어릴 적 고향의 옥수수는 참 달고 만났었는데 하긴 여름도 아닌 이 계절에 파는 옥수수는 필시 국산은 아닐 것이다. 고향마을의 옥수수 밭이 떠오른다.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밭으로 옥수수를 따러가면 키다리 아저씨처럼 부쩍 큰 옥수수대에는 연두색, 초록색 옷을 입고. 빨갛고 노란 수염을 축 늘어뜨린 옥수수가 영글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와 동생은 옥수수수염을 뜯어 코 밑에 붙이고는 '에헴' 헛기침을 하고 양반 놀이를 하기도 하고 한 광주리 가득 따오면 어머니는 솥에 넣고 삶아주셨는데 꼭 나물이나 김치만 손 맛이 아닌 것이 옥수수를 삶을 때도 여지없이 어머니의 손맛이 흠뻑 배는지 달고 맛난 옥수수가 탄생하였다. 옥수수는 뜨거우면 뜨거운대로 식으면 식은 대로 달달하면서도 고소했다. 한알 한알 따먹기도 하고 손으로 몇개 씩 옥수가 서로 붙은 채로 따서 먹기도 했는데 특히 난 옥수수가 살짝 들 여물 었을 때 찐 것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부드럽고 연한 식감과 더불어 한 알갱이를 씹으면 톡톡 터지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전체가 버릴 것이 없다. 옥수수는 쪄먹고 구워먹고 장날에 가져가 강냉이로 튀겨 먹었는데 지금은 영화관에서 팝콘으로 만들어져 옛 영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옥수수 수염은 이뇨작용이 있고 항산화 성분이 있다고 하여 차로 끓여먹고 옥수수 잎은 치주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고향에 살 때 어른 들이 옥수수 잎을 삶은 물로 입을 헹구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잘 여물지 않은 옥수수나 옥수수의 심은 돼지의 사료로 삶아주었다. 고향의 우리집 돼지들은 양치를 하루에 한 번도 하지않는데 아마 옥수수를 먹고 혈관질환도 없어지고 치아에 염증이 생기지 않아 건강하지 않았을까.
옥수수를 말려두었다가. 옥수수 빵을 해먹기도 했는데 구멍이 숭숭 뚫린 옥수수 빵은 목구멍으로 넘기는 부드러움이 일품이어서 지금의 고급 빵은 비교도 안되게 맛있었다.지금도 어머니는 가끔 옥수수 빵을 찾으시는데 재래시장에서 하나 사다 드리면 맛나게 다 드신다. 옥수수는 겨울철 중요한 양식겸, 간식이었기에 우리집 처마에는 말리기 위한 옥수수가 늘 매달려 있었다. 또, 음식으로만 대접받은 것은 아니었다. 옥수수 심을 잘말려 곧게 뻗은 나무가지를 꼽으면 대나무 등긁개는 저리가라, 돈 한푼 들지않고 간지러움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천연 등긁개가 탄생되었다.
식탁에 앉아 다시 옥수수를 집어든다. 한입 베어 물자 서늘한 바람과 함께 시원함이 내려 앉는 고향집의 평상에 가족이 모여 앉아 옥수수를 먹던 어린 시절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옥수수를 한 알갱이씩 씹어먹을 때마다 지금은 남의 땅이 된 고향집, 형체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진 평상, 그 시절의 추억이 하나씩 입 안 에서 톡톡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