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갱년기

한결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한 남자의 갱년기

한결


젊은 시절에는 아무리 예쁜 꽃을 보아도 그러려니 하고 무심코 지나쳤는데 사십 대에 들어서 어느 해 부터 꽃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꽃 집에서 예쁜 꽃화분을 보면 집에 데려가 키워볼까하고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는데 , 그게 비극의 시작이 아니었던가 의심아닌 의심을 해보게 된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외출시켰다가 어머니의 하소연을 다 못들어드리고 고집만 부린다고 책망하면서 집에 돌아와서는 후회감에 자책하다가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고 군대간 막내 아들이 갑자기 보고싶어 콧잔등이 시큰해질 때 내가 나이가 들어가나하고 생각하지만 금방 또 극구 부정하면서 나는 아직 젊다고 손사레를 친다. 여성호르몬이 늘어나고 있는지 남자에게도 갱년기가 있다던데 그렇게 우렁찼던 목소리도 씩씩했던 기상도 기차가 플랫폼에서 멀어지듯 이젠 젊음이 저만치 사라지고 있는듯 하다. 하긴 나이가 있으니 힘이 빠지긴 하겠다. 게다가 요새 들어 계속 피곤하고 새벽잠이 없어지고 아무리 운동을 해도 뱃살은 그대로인 것을 보면 갱년기 증상일 수도 있겠다 싶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가도 마초같은 남자다운 남자이고 싶은데 최근에 점점 변해가는 용모와 예전의 옷을 입으면 맵시가 제대로 나지 않는 조금은 망가진 몸매를 보면서 이젠 예전같지 않다는 걸 스스로 느껴오고 있었다. 지금의 모습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려하지만 꽤 낮설다. 난 언제까지고 젊을 줄 알았는데 막상 중년, 갱년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보니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을 뿐 이미 정해진 시간의 흐름 속으로 서서히 떠밀려 왔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갱년기의 여성은 생리의 변화. 홍조, 식은 땀, 짜증 등 여러가지 분명한 변화의 징조가 있다지만 남성의 경우엔 좀 다르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나도 모르는 사이 테토남에서 에겐남으로 해서해가는 것은 아닌지 당황스럽다.


내 몸의 변화부터 살펴보자는 생각이 든다. 일단, 복부 비만의 증가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전신 거울을 바라보며 나의 복부나 식스팩이 아니라 원 팩임을 확인할 때 진짜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고 짜증스러워 자책감이 들 정도다. 그나마 운동을 하고 야채 위주의 식이 요법을 통해 뱃살을 빼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겨왔지만 체중은 그대로다. 예전과 똑같은 양을 먹으면 배가 나오니 조금 줄여서 먹어야하는데 음식의 유혹은 의지를 꺾는다. 그러나 아직 난 죽지 않았다고 대뇌며 되든 안되든 결기로 한 번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


중요한 명제는 남장의 상징인 테스토스테론이다. 나이가 들면 발음하기조차 힘든 이 녀석은 해마다 줄어가고 그 빈자리를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채운다는데 신체적 쇠퇴도 무섭거니와 더 무서운 것은 중년 남자의 설 자리가 가정이든 회사든 안팎으로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중년의 남성 갱년기는 알아차리기가 쉽지도 않고 설사 안다해도 드러내기 힘들다. 남편으로써, 가장 으로써, 직장 상사로써 남성다움이 떨어졌다고 인정하는 것은 곧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꽁꽁 숨긴다. 피곤해서 그럴꺼야. 스트레스 받아서 그럴꺼야. 난 아니야라고 부인하면서 자신까지 외면한다.


지금의 중년은 끼인 세대다. 어려서부터 충과 효의 윤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받았고 부모의 봉양은 당연한 몫이다. 반면 자식들은 우리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세대이면서 자식으로 부터 부양받지 못하는 주변인, 젊은 후배들 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치이며 어느날 갑자기 AI가 나타나 내 영역을 침범하고 챗-gpt가 뒷통수를 때린다. 당연히 지식과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래도 버틴다. 버팀에서 오는 후유증을 음주와 흡연으로 푼다. 절제해야한다는 걸 알지만 쉽지않다.

"나는 젖은 낙엽이다. 나는 젖은 낙엽이다."

어찌어찌해서 버티고 버틴다. 그러나 영원은 없다. 종국에는 직장을 퇴사하고 나면 이제 효용가치가 떨어질 것이다. 아내에게는 삼식이, 자식들에게는 그냥 꼰대가 될터 어디에도 내 편은 없다.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혈압약을 먹는다. 고지혈증약이 혈압약 곁에 연인처럼 붙어온다.


'회사 생활 20년, 30년 되서 안 아프면 일 열심히 안한거야'


웃으며 큰소리를 치지만 남자의 갱년기는 아프다. 그러나 입밖으로 꺼낼 수 없다. 그냥 끙끙 혼자 앓는다. 서럽다. 남자는 갱년기가 시리도록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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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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