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청소기(化粧室 淸掃記)

한결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화장실 청소기(化粧室 淸掃記)

한결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부터가는데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하는 것이 문명의 발달 중 가장 고마운 것이 화장실이 아닌 생각한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외출시켜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 댁이나 내 집으로 모실 때면 어머니는 걷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화장실을 사용하려하신다. 물론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일은 우리의 일이지만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고싶은 인간 존엄을 지키고 싶은 강렬한 요구이겠다. 요즘에야 수세식 좌변기에 비데가 있지 옛날에는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을 뿐더러 바지를 까고 쭈그리고 앉아서 볼 일을 봐야했는데 그 옛날의 노인들은 다리가 아프거나 걷지못할 때는 어찌하셨을까. 혹시 방 안에서 볼 일을 해결해야 했다면 기저귀는 면기저귀를 썼을까. 방에서 뒤처리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별의별 상상을 해본다.


옛날에는 이름조차 화장실이 아니라 변소였다.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조그만 판자집 형태로 만들었고 안에 들어가 밑을 바라보면 변 덩어리가 그대로 보이고 냄새가 코를 찌르는 볼 일을 보고 나오면 옷에 냄새가 암모니아 냄새가 배어 한동안 가시질 않는 사찰에서 말하는 근심을 덜어내는 해우소가 아닌 화장실 갈 때마다 병균 들이 형님하고 반기는 비위생적인 장소였다. 게다가 변변한 화장지조차 없어서 뒷처리는 그나마 얇은 습자지로 만든 하루에 한장씩 넘기는 달력종이는 고급이고 대부분 신문지를 오려 걸어놓았다. 어린 마음에 난 이런생각을 했었다.


'신문지에 인쇄된 글자의 검은잉크때문에 내 엉덩이가 시커매지면 어떻하지?,'


학교도 재래식 변소였는데 한 번은 친구가 볼일을 보다가 썪은 나무 발판이 하필이면 그때 부러지면서 똥통에 빠졌다. 친구들이 발견해 학교 소사아저씨가 꺼내주었는데 그 친구는 일주일 동안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창피해서였을까. 냄새 때문이었을까. 소문에는 똥독이 올라서 아프다던데 어느새인가 멀쩡히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그 친구 별명은 '똥'과 이름의 끝자를 따서 '똥식이'가 되었다.


밤에는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깜깜하고 무서워 나와 동생은 화장실 갈 때마다 서로를 대동하였으며 볼 일을 다 마칠 때까지 대화를 이어나가야했고 가끔 동생이 용변을 보다가 밖에 서있는 나를 부르면 귀신 소리를 내며 장난을 치다가 동생을 울리기도 했고 혹시 혼자 가야하는 밤이면 볼 일을 보여 크게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게다가 재래식 화장실을 써본 사람들이면 모두 알법한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라는 귀신의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는 멀리 떨어진 화장실가기가 얼마나 무서윘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그랬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자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우리의 주거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되는데 초가집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는 슬레이트나 기와집으로 개선되었으나 화장실은 여전히 밖에 있었고 냄새와 환경은 그대로인 재래식이었다. 좀 나아진게 있다면 나무 변소보다 외관이 좀 나아졌다는 것 뿐 변소의 영광은 계속 되었다. 비단, 시골뿐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와 지내던 청량리 친척할아버지의 집은 한옥 마을이었는데 대문과 기둥은 나무를 깎아 세웠고 니스를 칠해 번쩍번쩍한 처음 보는 집이었지만 그곳에도 화장실은 마당 건너편에 있었고 재래식이었으며 신문지가 걸려있었다.


어쩌면 인체에서 동등하게 대우받아야할 우리의 엉덩이가 그동안 한낱 신문지 조각에 묻히는 더러움을 상징하는 부분으로 치부되어 학대당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며칠동안 변을 못보아도 일상생활이 괴롭고 음식을 잘못먹어 배탈이 나도 제일 많이 고통받고 희생하는 소중한 신체 부위를 우린 너무 하대한것은 아니었을까. 드러내고 자랑은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소중하게 조심히 다루어야함은 당연지사다.

지금은 추운 겨울에도 벌벌 떨 필요도 없고 바지를 까 내려도 엉덩이가 시렵지 않다. 뜨끈한 변기위에 앉아 느긋하게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감상하며 볼일을 보고 따뜻한 물로 청소를 하고 부드러운 휴지로 마무리를 하니 이건 말그대로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괄목상대할만한 변화다.


우리 집 거실의 화장실 청소당번은 나다. 난 청소를 할 때 변기부터 닦는다. 내게 편히 앉아서 용변을 볼 수있는 안락함, 배변의 쾌락을 줄뿐만 아니라 깨끗이 씻겨주고 뽀송뽀송히 마무리까지 해주는 변기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그 다음은 욕실 바닥,욕조 세면대, 거울 순이다. "룰루랄라 룰루랄라" 노래를 흥얼거리 오늘도 난 변기를 포함한 화장실의 친구 들을 구석구석 씻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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