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에세이
[에세이] 멍석 위의 시간
한결
요즘 아이들 뿐만 아니라 청년들에게 멍석을 아느냐고 물으면 아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멍석은 짚으로 엮어 네모형으로 만든 큰 자리로 흔히 사람이 앉거나 곡식을 너는 데 쓰는 용도로 쓰인다. 오래 전 시골 농촌에서는 혼인을 하거나 장례식을 치룰 때면 위로는 천막을 치고 마당에 멍석을 여러 개 깔았다. 멍석 위에 밥상을 차려놓고 손님을 맞았고 마을 아낙네들이 음식을 나르며 손님 접대를 하면 손님들은 멍석위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대화를 하였다.
어렸을 때 기억이 난다. 동네에 명란 엄마라는 분이 계셨는데 약방의 감초같은 분이셨다. 마을 아낙네 들이 모여 말을 나누는. 곳에는 꼭 끼어있었고 마을의 대소사는 물론 누구집에 숟가락이 몇개있는지 까지도 안다고하는 마당발이었다. 아무개의 혼인 잔치가 있는 날이었다. 명란 엄마는 당연히 있었고 명란엄마에겐 딸이 두명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와서 잔치 국수를 다 먹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자 집에 갖다 놓으라고 소주와 콜라를 몇 병씩 몰래 안겨 주는 것이다. 난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그냥 모른체했다. 모든 게 귀하던 시절, 명란 엄마는 남편과 자식에게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그랬을 것이고, 일당도 없이 품앗이로 일하던 시절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려는 억척스러움이라고 할까. 그냥 그런 거였다.
멍석은 다재다능하다. 여름엔 가족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저녁엔 쑥을 태우며 모기를 쫒고 멍석 위에 둘러앉아 삶은 옥수수와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기도 하였고 누워서 밤하늘 별을 헤아리다가 깜빡 잠이 들기도 하였다. 여름 밤 멍석 위의 시간은 걱정도 잠시 잊어버리고 욕심을 내려놓는 온전한 쉼을 위한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집에서 옥수수를 먹어도 감자를 쪄 먹어도 냉장고에 넣었다가 막 꺼낸 수박을 쪼개먹어도 그 때만큼 맛이 나지 않는다. 멍석 위에서는 격식이 없다. 농사일에 고되었던 하루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평안과 여유는 그 어느 장소도 흉내낼 수 없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광경이다. 어디 그뿐인가. 가을엔 멍석 위에 고추를 널어 말리고 콩가지를 놓고 도리깨로 타작을 하여 콩을 수확했으며 겨울엔 멍석을 깔고 윶놀이를 했다. 그 시절 멍석 위의 공간은 가족 들 간 대화의 장소였고 이웃 간 교류의 장소가 되었으며 때로는 식탁이었고 때로는 소파였으며 침대였다.
지금의 우리에게 멍석 위의 시간이 있을까. 부모들은생업에 종사하느라 바쁘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다니기 바쁘다. 모처럼의 주말이면 늦잠도 자야하고 여러 행사에 참여해야한다. 세상은 바삐 돌아가고 그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다보니 바쁘고 또 바쁘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멍석 위의 시간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비싼 음식이 아닌 옥수수와 감자만으로도 산해진미 부럽지 않은 즐거움, 달나라에서 절구질을 하는 옥토끼를 상상했던 밤의 상상, 천천히 움직이는 별자리를 바라보며 고요한 느림이 주는 평화로운 시간들을 이젠 누릴 수 없을 것만 같아 안타깝다. 다시 멍석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존의 전쟁터를 벗어나 지푸라기 냄새 깊게 베어나는 부드러운 털실보다 더 편안한 멍석 위에서 다시 한 번 어린시절 느꼈던 포근함을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