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에세이
[에세이] 순환
한결
언제오려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봄이 고무줄처럼 끈질긴 겨울의 붙잡음을 뿌리치면서 기온이 많이 높아졌다. 그러나 뭐하나 쉬운 일이 없듯이 아직 쌀쌀함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봄은 세상의 주인공이 되기 어해 겨울과 모진 싸움을 하고 있나보다. 올 겨울은 너무 추웠다. 작년보다 눈은 적게 왔지만 매서운 한파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힘들었다고! 할까. 추위를 극도로 싫어하고 한 겨울만 되면 부실한 몸뚱이를 간수하느라 애를 쓰는 나로서는 봄이 어서 오기를 고대하고 고대할 수 밖에 없다. 오랜만에 점심시간에 바깥 산책을 나선다. 그래봐야 회사에서 반경 1 킬로미터 남짓 이내지만 그나마 볕 덕택에 한 낮은 따스함을 맛보여주어 그런대로 걸을 만하다. 그러나 아직 잔디밭엔 푸르른 기색이 없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듯 잿빛 머리칼이 헝크러져 똬리를 틀고 언제 완연한 봄소식을 전해줄지 지루한 광경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봄은 알듯 모를듯 저만치서 한 발자국씩 소리없이 오고 있을 것이다.
난 봄기운을 좋아한다. 온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면서 포근함이 스며드는 느낌, 봄은 겨우내 움츠리다못해 벌벌 떨며 잠들었던 동면 상태의 몸을 깨우고 아지랑이가 스물스물 마음 속 생동감을 자극해 소풍 전날 밤처럼 들뜨게 만든다. 봄은 사람의 마음이나 숲, 나무, 세상 모든 것들의 마음에게 모두 똑같이 생명의 힘을 준다. 나무 줄기는점점 푸른 잎을 띄우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땅 속 깊이 흙은 부드럽게 자신의 몸을 녹여 봄기운으로 대지를 적신다. 하늘과 공기는 포근하게 세상을 덮어 볕과 함께 봄 세상을 보여줄 준비를 하고, 꽃샘추위로 엉거주춤하고 있는 난, 빨리 오지 않는 봄을 부르며 보고픈 연인을 애타게 기다리듯 애먼 날씨에게 화풀이를 한다.
봄이 다가오면서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회사 정원에 노란색 산수유 꽃이 피고 정문 옆 커다란 목련 나무가 밤새 잠을 자지 않고 한 송이 두 송이 인고의 꽃을 피워내면 비로소 봄을 만끽할 준비를 마치는 거다. 벌써 목련나무는 봉오리를 틔워냈다. 나는 매일 회사 앞 동산 산책을 하며 봄의 풍경을 보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 속까지 전해지는 대화를 즐길 것이다. 봄은 새로운 시작이기에 겨울에 침잠되어 있던 얼어붙은 모든 생명을 깨우듯 나도 스스로에게 봄의 햇살과 물의 기운을 주입해 생동감 넘치는 시간을 맞고 그 새싹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나무가 되면 푸르른 여름이 오고 그 뜨거운 인고의 시간을 이겨내면 다시 낙엽이 되고 땅에 떨어져 벌거숭이가 되는 겨울이 오는 계절의 순환처럼 어김없는 순환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루가 그렇고 계절이 그렇고 일 년이 그러하다. 봄은 기다니는 계절이지만 돌아 돌아 다시 만나는 순환에 따라 이별했던 시간과의 재회다.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고 이는 마치 삶의 윤회와도 얽혀있다. 역시 봄이 빨리 오기를 고대해도 때가 되어야 마주할 수 있는 아주 당연한 순리를 다시 깨닫는다.
퇴근 시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깜깜했었는데 낮이 길어지고 밤은 짧아져가는지 아직까지 환하다. 시간의 흐름 또한 계절과 마찬가지로 돌고 돌아 지난 날 과거의 언젠가 그 무렵이다. 나의 삶도 수십 번의 봄을 맞고 보냈으며 또 다시 맞고있다. 세상은 늘 이중적이다. 어떤 해의 봄은 사랑을 얻었고 어떤 해의 봄은 이별을 했다. 어떤 해는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시작했으여 어떤 해는 취업을 했다.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나는 봄은 어쩌면 기쁘기도하고 서럽기도 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을 맞고 그토록 싫어하는 겨울을 맞을 것이며 아마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이 순환은 계속 반복될것인 바, 계절의 사이 사이, 시간의 사이 사이를 보내며 마침표를 찍게 될 날이 올터 저절로 오고가는 원형의 흐름을 재촉하고 또 붙잡지 말며 그저 있는 그대로 순응하는 자연스러움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 보는 시간, 삶은 빡빡한 직선이 아닌 지구의 자전같은 원의 순환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