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한결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다리

한결


날씨가 풀린다고 하여 좋아했는데 왠걸 여전히 춥다. 일기예보를 보니 기온이 지난 주보다 이번 주가 기온이 몇도 씩 높다고 했는데 추위를 많이 타는나로서는 체감에 큰 차이가 없다. 벌써 2월 아직 봄 기운을 느낄 시기는 아니지만 동장군이 물러날 기세가 없는듯 갑자기 강추위가 몰려 온다. 이렇게 날이 추우면 고질병인 허리 통증이 생기고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지는데 강추위에 아버지께서 외출하시다가 혹시나 넘어져 골절상을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더불어 아이러니 하게도 아버지의 부상이 내게 가져다주는 병원 수발을 비롯한 복잡하고도 괴로운 제반 사항 들에 대해 더럭 겁이 난다.


날씨가 포근해지는 봄이 그립다. 난 산책을 좋아한다. 특히, 천변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겨울철에는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걷기 운동을 하지만 따스한 봄날이면 천변을 천천히 걸으며 봄내음을 맡고 나무의 움트는 소리에 귀 귀울이며 겨울 외투를 벗고 조금씩 제 색깔을 찾아가는 광경을 찾는다. 특히, 다리가 나오면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흐르는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곤 하는데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물고기 들이 뛰놀고 오리가 헤엄치는 광경은 고요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가져와 평온함을 줄 뿐 아니라 무념무상 정도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낀다.


다리 위에 서 물에 비친 내 얼굴은 노년이 멀지 않은 모습이다. 인생의 다리를 얼마쯤 건너왔을까. 삶은 다리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건너는 것과 같다. 길다란 다리 위를 많은 사람 들이 지나간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 들은 모두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으나 제각기 모습은 다르다. 팔을 세게 흔들거나 걸음거리의 빠르고 느림이 있고 무엇을 들고 가는 사람,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바쁜 일이 있는지 잰 걸음으로 걷는 사람 등 외양과 목적은 천차 만별이다.


다리를 다 건너면 사람 들은 목적지로 향한다.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지고 다리를 건넜을 것이다. 또, 용무를 마치면 다시 지나 왔던 다리를 통해 집에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다리는 다리를 다 건너면 지나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편도다. 그렇다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끝은 결국 죽음이다. 어렸을 때나 젊은 시절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을 갈까. 어떻게 하면 내 맘에 드는 여자를 만나 사랑할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어 물질의 부족에 시달리지 않고 여유롭게 살 수 있을까. 그러나 퇴직을 앞둔 지금 되돌아 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룬 것은 단 한개도 없다. 현실에 합을 맞추느라 포기하면서 살아왔다. 젊은 시절엔 꿈이 많았다. 해외 유학도 가고 싶었고 대학원에도 진학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적성에 맞는 직업을 고른게 아니라 직장에 내 적성을 맞추었고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긴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이렇게 버티어 온 것도 스스로를 칭찬할만한 인ㅅ이다.


버스를 타고 아버지 댁에 가는 길, 딴 생각을 하다가 내릴 정거장을 앞서 두 정거장이나 이전에 내려버렸다. 정류장을 지나쳐 내린 적은 많으나 덜 가서 내린 적은 별로 없는데 하필이면 다리 앞에서 내려 다리를 걸어서 건너야한다. 추위에 바람까지 더해 한기가 외투를 뚫고 들어온다. 그런데 이 날씨에도 다리를 건너며 산책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런거다. 인생이라는 다리는 같으면서도 다르고 추우면서도 활기차다.


인생이라는 다리의 삼분의 이를 건넜다고 생각되는 즈음, 되돌아갈 수 없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다리 위에서 앞으로 더운 날, 추운날, 뽀송뽀송한 날 깜깜한 날을 걸을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병마와 싸우고 있는 부모님 처럼 건너고 싶어도 건너지 못하는 건 아닌지, 인생이 참 별거 없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다리를 다 건넜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토양이 아무리 척박해도 추운 겨울을 뚫고 꽃을 피우듯 내 삶도 지금까지 험한 다리를 건너왔고 지금도 건너고 있으며 나머지를 열심히 걷다보면 다리 건너편에 꽃이 핀 양지가 있겠지. 중요한 것은 지금의 삶이 중요한 것이라고 지금 여전히 걷고 있음이 행복한 것이라고 어느덧 아버지 댁에 다다른다. 밝게 맞아주시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추위를 녹여본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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