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버스킹

한결 에세이

by 한결

[에세이] 벚꽃 버스킹

한결


일요일 오전 운동을 마치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아파트 앞 보행로를 걷자니 날이 너무 포근하고 따뜻하다. 지난 며칠 봄비가 통통 차가움을 튀기더니 늦가을 기온처럼 쌀쌀해했는데 언제 그랬냐는듯 오늘은 따스한 봄이 화사한 얼굴로 나를 맞이하고 바람이 몸에 닿을 마다 뽀송뽀송 온 몸이 아늑해지는 기분이다. 게다가 벚꽃잎이 떨어지며 팔랑팔랑 얼굴을 쓰다듬어주니 이 보다 더 좋은 봄날이 없다. 벚꽃의 흩날림은 매 년 보는 광경이지만 볼 때마다 경이롭고 찬란하다. 볕을 즐기기 위해 편의점 앞에 비치되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사람도 지나가고 차도 지나가지만 왠지 오늘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스 커피 한잔을 사서 운동에 지친 목을 축이고 볕을 쬐며 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도시의 상춘(賞春)에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벚꽃이 활짝 피었다. 사람 들이 지나가다 너도 나도 한마디씩 예쁘다고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잡으려는 동작을 찍고 꽃을 배경으로 갖가지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정지시켜 간직하기 위함이다. 꽃의 아름다움으로 주위가 밝아지고 앞을 사람들의 얼굴에도 덩달아 웃음꽃이 핀다. 벚꽃은 잎이 나기 전에 핀다 기둥하나에 가지를 모두 가리운 채 하얀색과 옅은 분홍의 아름다움으로 하늘을 채우니 그 화려함이 마치 화장을 하고 면사포를 쓰고 웨딩스레스를 입은 신부의 얼굴처럼 화사하다.


벚꽃의 생애는 기껏해야 일주일에서 열흘이다. 비가오거나 바람이 불면 바로 떨어진다. 화사함 뒤에 감추어진 연약함이다. 꽂잎이 떨어져 바람에 날리면 공중에서 흩날리는 낙화의 미는 바닥에 떨어져서도 융단을 깔아주어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벚꽃잎 날리는 봄날이 선물하는 아름다운 광경은 일년 내내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을 뿐더러 꽃은 땅에 떨어져서도 꽃이라는 말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삶도 벚꽃의 피고짐과 같지 않을까. 금방 피었다가 사라지는 벚꽃의 며칠과 지나고 보면 한 순간처럼 느껴지는 인생의 몇십 년이 같은 삶과 죽음의 궤적을 가졌다. 화무십일홍, 아무리 붉은 꽃도 열흘을 가지 않는다는 말처럼 우리의 인생사도 어느새 소리없이 쇠잔해짐이 벚꽃의 피고짐과 무엇이 다르냐. 아파트 단지를 걷는다. 벚꽃의 날림이 이끄는대로 꽂비를 맞으며 멈추어서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즐긴다. 어디선가 해마다 이 맘때가 되면 자주 흘러나오는 익숙한 노래가 들린다. 바람이 화음을 넣고 꽃잎이 춤을 춘다.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오예"


시간은 시나브로 오후를 향해 흐르고 볕은 더욱 따뜻해지고 있다. 하릴없이 걷다가 나무의자가 보이길래 다가가 앉았다. 오랜만이다. 평일은 회사 일에, 주말은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외출에 정신이 없었지만 이 시간 만큼은 바쁨을 내려놓고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벚꽃 한 번 바라보고 자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마음의 여유를 찾아본다. 마음의 번잡스러움과 걱정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 계속 노래는 흘러나오고 나도 따라서 흥얼거린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벚꽃이 버스킹을 하는 날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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