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쓰는 아이와 쩔쩔매는 부모에 대한 관찰
귀갓길에 집 근처 미용실에 들렀다. 앞선 손님이 있어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쪽이 시끌시끌했다. 좌석이라고 해봐야 네 개가 전부인 작은 미용실이어서 모른 체하려 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세 살 정도 된 사내아이를 안고 미용실의자에 앉아 있었고, 엄마 품에 안긴 아이는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딱 봐도 머리를 깎기 싫은 게 분명했다. 아이가 악을 쓰며 울기만 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아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고개를 연신 사방으로 흔들어 재꼈다. 아이의 머리를 깎으려고 하는 미용사는 연신 바리캉으로 아이의 머리를 쫓기만 할 뿐 머리털 끝 하나 건드리기 어려웠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빠까지 달라붙었지만 아이는 울음도 고갯짓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부모는 어르고 달래고 소리를 높여도 보고 했지만 진도는 나가지도 못하고 진만 뺄 뿐이었다. 결국 미용사는 아이가 좀 진정하면 하자며 기권을 선언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오라 했고, 그 사이 아이를 달랬다. ‘안 그러던 애가 왜 그러냐.’, ‘아이스크림 줄 테니 그거 먹고 빨리 하고 가자.’, ‘네가 안 울고 가만히 있어야 빨리 끝난다.’ 등 아이를 달랬다.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돌아왔고, 엄마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였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엄마는 미용사에게 눈빛을 보냈다. 옆에서 대기하던 미용사는 미용 가운을 아이에게 걸치려 했고, 미용 가운을 본 아이는 역시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악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의 일은 1차전의 반복이었고, 결국 미용사는 오늘은 안 되겠다며 애가 좀 컨디션이 좋을 때 다시 오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부모는 큰 한 숨을 내쉬며 어떠한 반항도 없이 알겠다며 아이를 달래고 옷을 입혀 미용실을 나섰다. 장내 정리를 한 후 미용사는 나에게 미용의자에 앉으라 했고, 소란스러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없었다. 악을 쓰며 우는 아이도, 그것을 어떻게든 달래보려 애쓴 부모도, 결국 포기를 외친 미용사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오늘 따라 악을 쓴 아이에겐 분명 이유가 있다. 다만 그것을 조리 있게 울지 않고 의사 전달을 할 수 없는 어휘력이 문제였다면 문제다. 세 살 정도뿐이 되지 않은 아이의 입장에선 확실한 표현은 누가 뭐래도 악을 쓰며 우는 것이다. 아이는 분명 싫다는 의사를 끊임없이 지치지 않고 해냈다. 그리고 결국 관철시켰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떤가. 토요일 저녁시간 눈까지 오는 상황에서 방문한 미용실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어떻게든 아이의 머리를 깎여야 한다. 일단 어르고 다음은 달래고 안 되니 화를 냈다. 아이스크림으로 유혹도 해봤다. 하지만 진전이 없었다. 분명 저 둘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상이 되어간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이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이렇게 된 바에야 꼭 승리해야 했다. 물론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미용사야 돈을 벌어야 한다. 아이 손님이니 쉽지 않을 것이란 것은 알았을 것이다. 문제는 아이의 완고함이 철옹성이었다는 것. 지치지 않고 우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어떻게든 달래 머리를 깎이려는 부모 사이에서 일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미용사 한 사람이다. 머리를 깎아 끝내든 포기를 선언해 끝내든. 미용사는 백기를 내걸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다. 우는 애를 잡아 패가며 키우는 시대도 아니다. 개념 없는 부모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개념이 없는 게 당연하고 그런 아이를 상대하는 부모가 개념적으로 접근해 아이를 달랠 수 없다. 우는 애도, 쩔쩔매는 부모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야 불편하고 그만 애를 데리고 나갔으면 싶다. 그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눈치를 주고, 불편하게 하지는 말자. 수조원의 돈을 써도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다. ‘노키즈존’이니 ‘맘충’이니 하는 말들. 우리 모두 다 그렇게 떼쓰고 악쓰며 주변에 피해 줘가며 이렇게 큰 것이다. 다 한 때이다. 아이 낳아 키우는 엄마 아빠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다들 결혼도 안하고, 결혼을 해도 애 안 낳겠다는데 저렇게 낳아 기르니 얼마나 대단한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