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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베르 Jan 07. 2024

공정하지 않은 '무기 계약직'

존중 받아야 하는 공채의 시간과 노력

  친구의 제안으로 친구의 친구와 셋이 술을 마시게 됐다. 두 사람은 학창 시절 친구로 같은 지자체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아무래도 대화의 주제는 두 친구의 공통사항이 될 수밖에 없었고, 나는 대체로 듣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공무직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내 친구는 자신의 친구에게 “쟤 공무직 편든다.”며 얘기를 했다. 그러자 친구의 친구는 나를 보며 “왜?”하며 물었다.


  나도 공무직이라는 직무를 친구를 통해 알게 됐는데 쉽게 말해 무기 계약직과 비슷한 직무였다. 친구는 대게 술자리에서 공무직에 대한 불만 사항을 얘기할 때가 많았다. ‘공무직은 일을 안 한다.’, ‘공무직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없다.’ 등의 것들이었다. 특히 계약직 직원을 공무직으로 전환해 주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들에게 비슷한 복지를 주는 것에 대해 불만을 얘기했다.


  친구가 그런 불만을 얘기할 때 나는 보통 반론을 펴는 편이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계약직 직원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 주고 직원들의 복지와 같은 혜택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로 얘기하면 친구는 계약직 직원들이 소위 말하는 공채가 아니라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공채를 통해 입사한 직원들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입사를 했고, 계약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계약직 직원을 2년이라는 시간을 일했으니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 주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계약직 직원을 2년 이상 고용할 수 없고 그 이상 고용해야 한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법에서 정한 절차다. 법에서 2년이라는 제한기간을 둔 것은 2년 넘게 계약직 직원을 써야 한다면, 그것은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고 그럴 경우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IMF 이전에는 거의 대다수의 직장인이 정규직이었다. IMF 이후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고용의 유연화를 내세우며 일반화된 것이 계약직이다.


  계약직이 많아지면 회사 입장에서는 해고가 자유롭고 기존의 업무를 낮은 임금의 노동자를 통해 처리할 수 있으니 좋지만, 반대로 노동자 입장에서는 정규직으로 했던 업무를 불안정한 계약직이라는 신분과 낮은 임금을 받으며 해야 하니 좋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제한기간을 두고 그 이상 고용을 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한다고 한 것이다. 물론 많은 기업이 2년 이하의 계약기간을 통해 계속적으로 계약직을 갈아치우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여기서 공채 출신 직원들이 말하는 공채가 아닌 절차에 대한 불만에 대해 의문이 든다. 나 역시 공채를 통해 입사를 해 일하고 있지만 공채라는 과정은 뭐 대단한 과정이 아니다. 그냥 민주주의와 비슷한 수준 정도의 제도다. 대다수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뭐 엄청 대단한 제도이기 때문에 정착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다수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 다른 정치 제도에 비해 논란의 여지가 적기 때문에 선택되고 정착된 것이다. 공채 역시 마찬가지로 본다. 서류전형, 필기시험, 면접이라는 과정이 다른 인사제도에 비해 회사 입장에서도 응시자 입장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적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지, 이 제도가 뭐 특별히 대단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채라는 제도 역시 문제가 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문제는 검증이 어렵다는 것이다. ‘공부머리’는 있어서 공채를 통과했으나 직장에서 필요한 ‘일머리’가 없어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경우는 의외로 흔하다. 반면 계약직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2년 동안 검증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니 공채라는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다.


  공채는 공정하고 그 시간과 노력에 대해 인정해 줘야 한다고 하지만 공정은 공채냐 아니냐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공채임에도 공정하지 못할 수 있고, 계약직의 전환에도 공정했느냐 아니냐를 따질 수 있다. 시간과 노력 역시 공채 준비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모두가 앉아서 공채를 준비하는 공간에는 경쟁뿐만이 아닌 동질감이 있지만, 한 공간 안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는 회사 안에서는 상대적 박탈감과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 그리고 계약해지의 불안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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