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라고 굳게 말하지만, 실은 그 말이 마치 주문처럼 들릴 때가 있다. 내 마음이 흔들리지만, 믿어보려 노력할 테니, 내 기대를 부디 져버리지 말라는 주문.
믿음을 정의하려면, 그 믿음의 대상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믿음은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런 모습이겠거니' 하고 더 이상의 상상은 이만 접겠다는 다짐과 비슷하다. 두 눈으로 낱낱이 확인하고 나서야 믿을 수 있다는 건 불신과 다름 아니다.
그러나 맘처럼 그 다짐이란 게 쉽지만은 않다. 어떤 관계에서도 상대의 말과 행동을, 딱 보이는 그대로만 더 이상의 상상을 배제하고 받아들이기엔 내 속은 꼬일 대로 꼬여 있다.
더구나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아무개에 대한 것보다 더 믿어보려 애쓰겠지만, 그만큼 더 많은 걸 기대하게 된다. 때로 현실은 믿음이라는 다짐을 배신하기도 한다.
다만 탓할 사람은 상대가 아니다. 애초에 확인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는 내 몫이 아니다. 단지 어떻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관여할 수 있는 거라곤, 자기 암시적으로 "믿는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기대'이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나는 그 기대치를 조정하고, 내가 조정한 기대와 비교하여 기뻐하기도 슬퍼하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타인이 지옥이랬다. 타인은 알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는 존재이면서, 심지어는 때로 나를 제 멋대로 판단하기까지 한다. 그런 지옥 같은 타인을 믿는다는 건, 당신에게 기대가 있으나 내가 다쳐도 별 수 없다는 의지에서 나오는 행위다. 그러니 믿는 만큼 이후에 벌어질 일들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