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해석을 곁들이면, 우연은 운명이 된다.
삶은 종종 한없이 가벼워진다. 내가 삶이라 이름 붙였던 사건들이, 알쏭달쏭한 낯선 표정을 하고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우두커니 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처럼 나는 종종 그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에요."라고 얘기할 수 없듯, 좀 더 의미 있는 무언가로 내 삶이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조각들을 다시금 한 땀 한 땀 꿰매어 운명이라 이름 짓게 된다. 적어도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게 하는 일말의 무게감을 획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운명의 무게에 짓눌려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 앞에 서면, "누구나 그런 일을 겪어"라는 말이 목 끝에서 간질거린다. 열에 일곱 번은 겨우 참아내지만, 세 번은 내뱉고 만다.
운명이 우리에게 던지는 고민은, 기본적으로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말처럼,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타인의 고통을 상상해 낼 수 있다면 적어도 그 외로움은 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연이 보편이라면, 운명은 개별이다. 우연이 무의미라면 운명은 의미다. 별다른 인과 없이 우리 삶에 산재한 우연에 약간의 해석을 곁들이면, 우연은 운명이 된다. 그 굴레 안에서 평생을 허우적대야 하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적어도 그 해석이 능동적인 행위라는 사실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