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플로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 Mar 03. 2024

너와 나 사이 채택 가능한 이야기

타인에 대한 분노가 일 때면, 속으로 외치는 마법 같은 주문이 있다. "아, 똥 마려운 가 보다." 대놓고 분노하며 지적할 만큼 대범하지도 못하고, 그 분노를 품는 것조차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탓에,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외치는 말이다. 


주문을 통해 나는 분노의 대상을 같은 인간으로서 바라보게 된다. 심히 왜곡됐지만, 인류애의 마음으로 그를 이해할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세상을 심지어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타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연유로 우리에겐 납득 가능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너를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다고들 하지만, 실상 나를 통해 너를 바라보는 것에 익숙한 탓이다. 익숙 보다야 한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지만.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미덕이라고는 하지만, 그 이해의 이면에는 각자의 해석이 숨어 있으며, 결국 이해 또한 판단의 영역이라는 의미이다. 


fact의 어원은 factum.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타인의 존재는 객관적 사실이나, 타인에 대한 이해는 주관적 판단에 의해 형성된다. 요컨대 대상과 나 사이에는 수만 가지의 해석의 가능성들이 놓여 있고, 우리는 그중 납득 가능한 이야기를 채택하는 방식이다.


내 안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나의 인식 안에서 타인의 존재를 대변한다. 그제야 당신을 이해할 수 있노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사이에 채택 가능한 이야기가 놓여있기에.


고로 애써 너를 이해하고 있다는 말보다, 그저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편이 더 낫다. 아마 존중에 가닿기엔 조금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치가 과학 뒤에 숨었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