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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언제나 그렇듯 마음을 비껴간다

by May

솔직한 사람이고 싶었으나,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마음속으로 들어가 가장 솔직한 생각들을 골라내고, 적확한 단어를 찾아내어, 문장으로 엮어 말로 뱉고 나면, 이건 내 마음이 아니라는 걸 그 순간에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이를 깨달은 후로 난 '단어가 없어서'라고 변명하며 입을 닫아버리거나, 반대로는 복잡한 얘기를 가장 간단하고 거친 단어로 뭉뚱그려 내뱉는 버릇이 생겼다.


말은 언제나 부족하다. 심지어 중요한 순간엔 더욱이 그렇다. 고통받고 있는 이를 위로할 때, 나를 위해주는 이에게 감사를 표할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때, 화가 치밀어 올라 논리적으로 상대를 이겨먹고 싶을 때. 마음에 있지도 않은 말로 그 부족함을 메우고, 그 업보를 청산하기 위해 며칠 밤을 이불속에서 뒤척이며 스스로를 다그치곤 한다


라캉은 인간의 마음속엔 언어화할 수 없는 영역, 즉 무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그곳에는 설명할 수 없는 욕망과 결핍이 남아 있으며, 말로 완전히 담을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마음에 있지도 않은 말을 내뱉게 되는 게 꼭 무의식 때문은 아니다. 배려심과 조바심, 관계 속 긴장감이 얽히며 솔직한 말을 내뱉지 못하거나, 마음에도 없는 말들이 쏟아지는 순간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혼란도 존재한다.


결국 우리 안에 언어로 담을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 또 하나는 사회적 관계와 배려심, 순간의 감정 때문에 그때그때 솔직한 말을 내뱉기 어렵다는 것. 이 두 가지가 겹쳐지며, 마음과 말 사이에는 언제나 틈이 생긴다.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할 수 없으나 솔직해야만 하는 일종의 부조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회사 동료가 대화를 요청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게 그렇듯, 그는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의도와는 달리 내게 큰 부담을 주게 되었다. 그는 그 선택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들을 가져다 댔지만 사실 내게 그리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납득할 수 있었던 건 그렁그렁 맺혀있던 눈물, 흔들리는 동공, 주뼛거리던 손가락 정도다. 별다른 말을 고민하다 그냥 괜찮다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우린 그리 비슷한 처지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기에.


인간적인 연결은 뜻밖의 방식으로 싹튼다. 말이 마음을 온전히 담지 못하고, 어색하고 불편하며 불완전한 순간에도, 우리는 자연히 상대를 살핀다. 우리는 결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연민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말은 언제나 부족하다. 그러나 그 부족함 덕에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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