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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Nov 12. 2023

괜찮아가 사라졌다

인성아, 어디 있니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그림책 혹은 동화책 혹은... 그냥 책이라도 내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육아휴직 기간을 이용해 동화 쓰기 단기 강좌를 들었다. 갤럭시탭을 이용해 서툴게 표현한 그림과 글로 내가 꼭 쓰고 싶었던 내용인 그림책을 합평받았다. 강좌가 이어지는 동안 2편의 그림책과 몇 편의 시놉시스를 썼는데 그중 한 그림책의 제목은 '괜찮아'였다.


2019년 만 4세 반의 여름에 들어설 무렵, 두 유아의 특별할 것 없는 갈등이 계기가 되었다.  A라는 유아가 다른 친구와 장난을 치며 지나가다가 미술영역에서 열중하던 B라는 유아의 작품을 망가뜨리게 되었다. A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B에게 사과를 했으나 B는 아무 말 없이 하던 일에 열중을 했다. 이에 A는 교사에게 B가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항의하였다. 개정 전 누리과정의 사회관계에는 [자신의 감정을 알고 상황에 맞게 표현한다]가 있고 [친구와의 갈등을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가 있었다. 이에 따르면 A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을 했기에 B에게 '지금 너의 마음에 어울리는 말을 찾아보라'라고 말했고 B는 잠시 고민을 하다 "안 괜찮아"라고 말했다. '안 괜찮아'라는 말은 자신의 감정을 알고 상황에 맞게 표현한 단어일 수는 있지만 친구와의 갈등을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너의 작품이 망가져서 속상하다면 다음에는 조심해 달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건 어떠냐'는 나의 말에 B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음부터는 조심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 여름방학 전까지 우리 반에는 "괜찮아"가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너도 나도 상한 내 마음이 회복되기 전까진 보란 듯이, 일부러 "괜찮아"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교사의 칭찬을 바라거나 좋은 게 좋은 거라 여기는 소수의 유아들만 "미안해"라는 말에 "괜찮아"를 덧붙이곤 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나도 혼란스러워졌다. 

예전(예전이라고 해봐야 10년도 안 지난 때지만) 과는 다르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고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요즘이라서 그런지, '미안해', '고마워', "괜찮아"라는 단어가 사람사이의 배려나 예의를 표현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상황에 대한 끝없는 물음표 덕에 이 에피소드는 내 기억 언저리에 생생히 살아남아 그림책으로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괜찮아]라는 제목으로 나만의 동화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합평을 기다렸다.

나를 포함한 두 명의 사람이 동화를 썼고 합평을 들었는데, 내 그림책에 대한 합평만 거의 40분이 이어졌다.

그 당시 비난에 가까운 합평에 동화에 대한 열정이 얼어버렸기에 제대로 기록해두지 않았으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자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미안해"와 "괜찮아"를 말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반응과  자신은 본인 자녀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한다는 사람이라 B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A는 괜찮아를 강요할 수 없다는 반응 그리고 선생님의 행동이나 대처가 너무 싫어 읽기 싫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감정이 상해 가는 와중에도 '합평'시간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요즘 사회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건지.

입으로는 배려를 외치지만 왜 배려가 행동으로 나오지 않는 건지.

2014년 12월 세계 최초의 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2015년부터 시행이 되었다. 

무려 [인성교육진흥법]이다.

우리의 인성교육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괜찮아가 사라진 교실은, 정말 괜찮은 걸까?

더 나아가 괜찮아가 사라진 사회는,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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