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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Dec 04. 2023

바닥에서 출렁이는 내 밑천

체스는 너무 어려워

유아들은 끊임없이, 의문을 표시한다. 

그게 학급 규칙일 수도 있고, 일반 상식 혹은 지식일 수도 있다. 

도덕적인 면에 의문이 생길 경우에는 이제 제법 크게 느껴지는 유아들이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정리를 하곤 하는데, 상식이나 지식을 물어볼 때는 일단 당황한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최근 바닥에서 얕게 출렁이는 내 밑천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가뜩이나 똑 부러지는 5세 유아들인데 졸업할 때가 가까워져 가니 15명이 가진 지식수준을 내가 다 따라갈 수가 없다.

특히나 '체스'같은 경우는 더.

<내 마음대로의 날>을 진행하던 중, 한 유아가 체스를 친구들과 같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9월 개학한 이후로 자유놀이 시간마다 틈틈이 하고 있었으니 차라리 그럼 '체스대회'를 열자고 제안을 했고, 대진표를 함께 만들어 놓으니 그럴싸한 대회처럼 보였다. 

문제는 '심판'이었다. 

체스대회가 열렸으나 나는 심판을 할 수가 없었고, 체스 학원에 다니는 유아가 있어 만장일치로 그 유아가 심판이 되었다. 체스는 내 생각보다 세세한 규칙이 많았고 난 그걸 단기간에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체스였을 뿐, 하나에 꽂힌 유아들의 지식 세계는 어른들의 상상보다 방대하다.


더 어린 유아들은 지금은 사라져 버린, 왜 기억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공룡을 특성까지 함께 나열하고,

'자동차'라고 분류하는 바퀴 4개 달린 교통수단에서 각 자동차 브랜드와 그 문양, 차종까지 알며,

지하철 노선도를 외우는 유아들을 보면 마냥 신기하고 기특해하기 마련이나 그게 좀 더 커지면 수준이 달라진다. (마치 내 상식을 시험하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아직은 유아라 대부분의 분야에서는 커버가 가능하다. (체스 제외)


최근 내 마음대로의 날을 놀이로 이어가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시간과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나의 교육적 의도, 철학, 효과 등을 일단 스스로 점검해 봤다.

음, 그런데 딱 맞는 문장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발현적으로 나타나는 놀이를 계획적으로 진행했을 때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유아들이 가진 놀이에 대한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곧 졸업을 앞두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사실 직장 다닐 때는 j로 살아야 하기에...


수많은 변명을 빙자한 의도와 효과를 구구절절이 늘어놓다가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밑천이 없구나.


그 옛날 뿌리가 없는 나무를 그렸던 그 시절처럼

나는 아직도 내가 하는 유아교육에 대한 뿌리가 없구나,를 느껴버린 것이다.

그때의 자괴감이란...


그리고 유아의 놀이에 대해 이야기나 하고 있자니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뒤이어 슬그머니 올라오는 대학원에 대한 욕망.

바로 떠오르는 내 아이에 대한 걱정.


아니, 지금도 이렇게 바쁜데 대학원을 어찌 간단 말인가. 

개인적인 욕심에 앞서 영어, 글쓰기 공부한다고 여기저기 집적대고 다녔는데 정리가 필요한 시기이다. 

마침, 12월이기도 하니

딱, 계획하기 좋을 시기이다. 


내가 가진 것을 알고, 배워야 하는 것에 순서를 다시 두어야겠다. 

진짜 내 밑천이 드러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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