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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Dec 16. 2023

인류애의 상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홀로 눈뜬 사람이 되어 있다는 걸 느꼈을 때

그럴 때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구나가 느껴질 때.

어딘가에 나와 같이 '무언가'를 보고 있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며 보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서 애쓰는 내가 가여워질 때.

'무언가'는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다. 

요즘 내가 느끼는 건 인류애의 상실이다. 


"여러분, 저는 인류애를 상실한 거 같아요."

라는 나의 말에 원감님이 한 마디 하셨다. 

"인류애가 아직 남아 있었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 아이가 아파트 내에 설치된 30cm 높이의 난간에 매달려 놀았을 때 다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파트에 배상책임을 묻는다. 

길을 가며 핸드폰을 보다가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진다면, 그 부근을 관할하는 지역주민센터(예-구청)에 배상책임을 묻는다. 

어린이집, 유치원이라 학교에서 아이가 다쳤다면 cctv를 확인하고 기관에 배상책임을 묻는다.


주변 이웃이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에요."

나는, 너무 바보처럼 살고 있나 보다. 


난간에 매달려 노는 걸 제지하는 게 먼저가 아니라, 핸드폰을 보며 걷는 걸 탓할 게 아니라, 아직 어린 아이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게 당연한 것이니 주변 아이들이 받는 피해에 미안해함을 가지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인류애가 가정했을 때, 나도 내가 가진 인류애를 지워내기로 했다.

그럼, 그러면 나도 눈먼 자들 사이에서 좀 편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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