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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Sep 08. 2024

마트에서 생긴 일

당신과 나의 다른 문화

남편은 자취를 오래 했다. 

군대, 집과 먼 대학 등의 이유로 스무 살 무렵부터 독립적으로 생활을 했다. 심지어 경제적으로도. 

자취를 오래 한 남편은 참 편리했다. 

인터넷으로 보면 주방 일은 손도 대지 않는 남편, "밥 줘"라고 이야기하는 남편이 참으로도 많은데 내 남편은 그런 과가 아니었다. 

(덧붙이자면, 본인 취향이 강하다는 것도 있다. 내가 한 김치볶음밥은 본인 취향이 아니기에 직접 해 먹는다고 했다)


 일요일이 되면, 평일에 먹을 음식을 준비해 놨다. 간편한 찌개류(김치, 된장)와 카레 등의 한 그릇 음식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중 제일 특이했던 건 '김밥'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 시절(그런 때가 있었지...) 남편은 일요일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밥을 하고, 당근을 볶았으며, 계란을 부쳐댔다. 뚝딱뚝딱 쌓이는 김밥 열 줄에 감탄을 하다 곧 당황하며 물어봤더랬다. 


"이걸 우리 둘이 어떻게 다 먹어??"

"냉동실에 넣으면 되지"

"김밥을????"


문화충격에 말을 잃은 나와 달리 척척 김밥을 랩에 싸 냉동실에 두곤, 며칠 뒤에 계란물을 입혀 김밥전을 해 먹었다. 최근 나오는 k-푸드 냉동김밥을 보면서 이 사람은 참으로 앞서갔구나를 느끼며 사업을 했어야 했...

암튼, 이 김밥 루틴은 십몇 년째 (결혼 전부터니까) 이어지는 남편만의 문화이다. 


남편은 나랑 장을 보는 걸 귀찮아했다. 

[살 것: 00, 00, 00....]을 정해 스스로에게 카톡을 보내 뙇뙇 필요한 것만 사는 남편과 달리, 나는 마트를 구경하며 장을 보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비건'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는 더욱 귀찮아했는데 어느 날, 일은 터져버렸다. 


오늘은 어디 갈래? 뭐 할까?를 외치며 주말을 시작한 나와 아이를 이끌고 남편은 장을 보러 갔다. 평일동안 일용할 양식을 만들고자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주로 가까운 마트를 이용하려 하지만, 주변에서는 김밥재료 세트를 팔지 않기에 자동차를 끌고 제법 거리가 있는 마트로 향했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마트 나들이'다. (참고로 나는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 마트 나들이를 즐길 뿐이다)


김밥재료를 담던 남편은 빠른 속도로 계란 코너로 갔다.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남편을 놓친 나는 서둘러 남편 옆으로 다가가 남편의 손에 있는 30구짜리 계란 한 판을 제자리에 놓게 했다. 


"나 요즘 동물 복지 계란만 먹는 거 알잖아, 동물 복지 계란으로 사줘"

"이게 더 싸. 그리고 동물 복지가 복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건 뉴스 봐서 알잖아"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이건 내가 먹을 계란에 대한 나만의 예의야"

"무슨 소리야"


라며 실랑이를 반복하다 나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럼 사, 나 그냥 김밥 안 먹어. 오빠가 해서 먹어"

 

아무 말 없이 나를 보던 남편은, 결국 김밥 재료를 사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어색한 침묵 속에 며칠이 지났고, 주말에 우리는 오랜만에 친정으로 갔다. 

진수성찬..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취향에 맞는 음식을 가득 차린 밥상에서 나는 우걱우걱 참 맛있게도 밥을 먹었다. 엄마는 남편을 생각해 고기반찬도 해두었다며 남편 쪽으로 스윽 고기반찬 접시를 밀었다. 

고기가 싫어도 가끔씩 챙겨 먹으라던 엄마는 문득 갑자기 혼자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긴, 너 초등학생 때인가? 그때부터 계란후라이도 안 먹었지"

 

엄마의 말에 옛 기억이 떠오른 나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남편이 물었다 


"계란후라이를 왜 안 먹어?"


엄마가 내 대신 말을 해주었다. 

"그때 얘가, 키우던 병아리가 죽었는데 그 이후로 계란만 보면 삐약삐약 소리다 들린다고 하면서, 계란도 안 먹지 고기도 안 먹지, 아우 그때 내가 너 먹을 반찬 신경 쓰느라 아주~"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남편은 나를 다른 차원에서 온 생물처럼 쳐다봤고, 난 멋쩍게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조곤조곤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김밥 안 먹는다고 투정 부린 거 아니야, 진짜 냉장고를 딱 열었는데 30구짜리 계란 한 판이 보이면 먹을 마음이 사라져 나는. 삐약삐약 소리가 아직 가끔 들리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군대 얘기를 꺼내던 남편이었으나, 그 이후로 남편이 사 둔 계란에는 [동물 복지]가 쓰여 있다. 


우리가 아직 같이 살고 있는 건, 우리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온 생명체임을 인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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