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선생님이 보면 안 되는 글
아주 오랜만에 친구와 제주도를 다녀왔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제주가 2023년 4월이었으니 무려 1년 만이다. 제주도 중독자로서 매우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작년에는 이직과 결혼 등으로 매우 정신이 없어서 하반기에는 제주도를 찾을 수 없었달까?
이번 여행은 친구가 먼저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끊었노라고 메신저에 선언하는 것을 보고 내가 수저를 얹은 여행이었다. 대신 우연히 금요일 연차를 내놓았던 나는 친구보다 하루 먼저 제주도에 가고 함께 토요일을 보내기로 했다. 친구는 대신 친구는 월요일 아침에 돌아오고 나는 출근을 해야 하니 일요일 오후에는 집에서 좀 쉴 생각으로 일요일 오전에 제주도를 떠나는 것으로 결정.
여기서 이 글의 부제가 왜 '한의사 선생님이 보면 안 되는 글'이냐 하면, 지금 만성 소화불량으로 한의원에 다니고 있는 도중에 떠난 제주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2달 가까이 한의원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들었던 가장 기피해야 하는 음식 중 1위가 '떡볶이'였는데 문제는 내가 떡볶이를 사랑한다는 것. 이번 여행을 함께하는 친구와 나는 이전에 명랑스낵에 갔다가 그곳의 팬이 되어 버렸으므로 사실 함께 하는 토요일 점심으로 명랑스낵을 가기로 했다.
그동안 나름 열심히 한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조금 회복을 했던 나였지만 여기는 제주도가 아닌가? 결국 나는 친구와 짜장떡볶이에 당면을 추가하고 새우튀김과 한치튀김까지 야무지게 시켰다.
이렇게 떡볶이를 영접하면서 친구에게 한의사 선생님한테 혼날 것 같다고 말은 하였지만 결국 소화불량 따위 없는 사람처럼 옴뇸뇸 먹어버렸다. 떡볶이도 떡볶이지만 그 와중에 새우튀김은 왜 이렇게 맛있는지? 한치튀김은 예전에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왜 그런지 이 날은 그냥 그랬다. 한치튀김은 좀 아쉬웠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오늘도 명랑스낵은 만족!
그리고 이 날 오후 유람위드북스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수제버거를 포장해 와 숙소에서 친구와 저녁으로 나눠먹었다. 내가 사랑하는 제주도에 있어서 그런지 배가 좀 아파서 화장실을 평소보다 조금 더 가기는 했지만 나름 소화가 잘 되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제주를 떠나야 하는 그다음 날 일어났는데, 숙소에서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자리한 카페인 "호텔샌드"에서 베이글을 먹고 난 후다. 호텔샌드 카페는 협재해변을 바라보고 있는 카페로 매우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마치 중동에 있는 카페 같은 느낌? 그래서 이름도 호텔샌드일까?
들어서자마자 우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친구와 나는 이 카페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오늘 우리의 조식 플레이스! 우리는 바닷가가 보이는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아침으로 베이글과 다른 종류의 빵(이름에 한라봉이 들어갔다) 하나를 주문했다.
그 전날 생각보다 소화가 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별 다른 의심 없이 친구와 베이글 반을 나눠 먹었고, 밀가루인 빵에 크림치즈까지 더해져서일까? 아니다, 그 전날에도 떡볶이에 수제버거까지 조심해야 하는 음식들만 주르륵 먹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베이글을 먹은 이후 나는 오후에 집에 도착할 때까지 속이 턱 막힌 것 같은 증상에 시달렸다.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한의사 선생님의 얼굴. 아... 한의원 가면 여행지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고백하는 시간을 가지겠구먼. 결국 집에 돌아와서 그다음 날에는 머리까지 아픈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찾은 한의원. 선생님께 겪었던 증상을 이야기하니 역시나 무엇을 먹었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먹은 음식들의 리스트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덧붙였다.
"그래도 일반 떡볶이보다 짜장 떡볶이가 좀 낫지 않나요?"
"지금 나름 생각해서 짜장 떡볶이로 먹었다고 어필하시는 겁니까? 먹을 때 제 얼굴 생각 안 났어요?"
"하하하하하하" (웃음으로 넘긴다)
사실 생각은 낫지만 먹고 싶었다고요! 흑흑
다음번에는 부디 이 비루한 위를 다 고치고 제주도에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언제일지 모를 다음 제주를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