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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유일 석회암 절벽 위 누각, 삼척 죽서루

7번 국도 지질 답사기

by 전영식

삼척은 서울 남부와 경기 남부에서 위도상으로 정확히 동쪽에 있는 도시이다. 2025년 8월 기준 인구수는 6만 964명인데, 1년 전보다 1,246명 줄어든 수치이다. 지난 6월 30일 대한석탄공사의 마지막 탄광이었던 도계광업소가 89년 만에 폐광했다. 아마도 이에 따른 인구 감소가 있었던 듯하다.


동해안 도시인 삼척은 서쪽으로는 태백시, 북과 남으로는 동해시, 울진군과 경계를 하고 있다. 올해 개통된 동해선의 효과로 관광객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석회석을 많이 갖고 있어 시멘트 산업이 발달하였고, 대형 발전소들이 들어서는 가운데 한국가스공사의 삼척생산기지가 있다. 해군 제1함대사령부가 위치하고 있다. 이 정도면 대충 분위기가 그려진다.


삼척 죽서루 ⓒ 전영식

죽서루


삼척의 여러 문화유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죽서루(竹西樓)일 것이다. 2023년 국보로 승격됐다. 삼척 유일의 국보다. 또 관동팔경 중에 유일한 국보인데, 다른 관동팔경의 누각은 바다를 접하고 있지만 죽서루만은 강가에 세워져서 더욱 눈에 띈다. 누각은 요즘의 전망 좋은 카페처럼 특별한 곳에만 세워지기 때문에 찾아볼 만하다.


죽서루는 건립연대는 미상인데, 이승휴의 <동안거사집>에서 고려 원종 7년(1266)에 누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름의 유래는 누의 동쪽에 대나무숲이 있었고, 그 안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이 있어서 유래됐다고 한다.


오십천


죽서루와 오십천, 출처: 강원도


죽서루는 오십천(五十川) 강가의 석회암 바위 위에 지어진 누각이다(오십천은 영덕에도 있음). 태백시와 삼척시의 경계인 백병산에서 시작되어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총길이 46.06㎞, 유역면적은 350.16㎢ 로 좁은 천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동고서저의 지형으로 동해안에 있는 오십천도 발원지와 하구까지의 기울기의 변화를 보여주는 종단 프로파일(Longitudinal Profile) 이 큰 하천이다. 오십천은 대표적인 감입곡류하천(嵌入 曲流 河川) 하천이다. 동쪽의 상승이 주요 원인이다.


오십천변을 따라 태백지역의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철도가 놓여 있다. 그리고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의 부부묘인 준경묘, 영경묘(濬慶墓·永慶墓)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물 근원이 우보현(牛甫峴)에서 나오며, 죽서루(竹西樓) 밑에 와서는 휘돌면서 못이 된다. 또 동쪽으로 흘러 삼척포(三陟浦)가 되어 바다에 들어간다. 부(府)에서 물의 근원까지 마흔일곱 번을 건너야 하므로 대충 헤아려서 ‘오십천’이라 일컫는다.”라고 오십천 이름의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어지간히 구불구불한 하천이다.


삼척의 지질, 대석회암통


삼척은 옥천습곡대와 영남지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매우 다양한 지질을 보여준다. 시대별로는 선캄브리아기부터 고생대, 중생대까지의 지층이 나타난다.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오죽헌이 있는 주변의 지질인데, 이곳은 고생대의 가장 이른 시기인 캄브리아기에 퇴적된 석회암이다. 학계에서는 이 암석을 조선계 대석회암층군(통) 풍촌석회암이라고 부른다. 감홍색, 백색, 회색의 석회암과 돌로마이트가 나타난다.


삼척 해안에서 미인폭포 쪽으로 오십천을 따라 올라가면 나타나는 암층은 복잡하다. 선캄브리아기 태백산층군 흑운모편마암, 편암 -> 고생대 캄브리아기 조선계 양덕층군 장산규암층 -> 캄브리아기 조선계 양덕층군 묘봉층 슬레이트, 셰일, 석회암 -> 대석회암층군 풍촌석회암층 석회암, 돌로마이트 ->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조선계 대석회암층군 동점규암층 -> 대석회암층군 두무동층 충식석회암 -> 대석회암층군 화절층 충식석회암, 이암, 셰일 -> 대석회암층군 막동석회암층 -> 대석회암층군 풍촌석회암층 -> 조선계 양덕층군 장산규암층 -> 고생대 페름기 평안계 사동층 (도계역, 석탄이 나옴) -> 평안계 녹암층군 사암, 셰일 -> 평안계 고방산층 사암, 셰일 ->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신라층군 적각리층 사암, 역암 셰일(모두 적색)이다. 고생대에서는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만 없다.


이 정도로 복잡한데 간단하게는 오래된 지층과 고생대의 대표적인 퇴적암이 다 있고, 중생대의 퇴적암도 있다고 보면 된다. 암층이 이렇게 달라지면 물이 직선으로 흐를 수 없다. 암층이 달라질 때마다 꽈배기처럼 방향이 달라진다. 오십천이 오십천인 이유는 복잡한 지질구조 탓이다. 사람도 인생에 굴곡이 많으면 삶의 방향이 자주 바뀐다. 사람이나 땅이나 똑같다.


용문 바위 쪽에서 바라본 죽서루 ⓒ 전영식
삼척시 지질도, 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시간층서단위로 보면 대석회암통은 초기 고생대 지층인 조선계(朝鮮系)에 속하는 한 통(統, series)이다. 조선계는 캄브리아기(紀) 초기에서 오르도비스기 중엽에 걸쳐 바다환경에서 퇴적됐는데, 일반적으로 두꺼운 석회암과 이에 수반된 얇은 사암 · 점판암 · 셰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슷한 고생대 퇴적층은 평안누층군이 있는데 육성층이다. 조선계와 평안계는 비교되는 좋은 지질학적 소재이다. 조선계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같은 시대에 퇴적 됐더라도, 구성 암석이 서로 달라 지역에 따라 층서(層序)의 이름이 다르다.


강원도 중동부 지역인 삼척 퇴적분지 주변은 삼척군 일대의 대석회암통은 대기층(大基層)을 비롯해 여러 층으로 구분되는데, 양덕통(陽德統)의 묘봉층 위에 정합으로 놓인 대석회암통의 최하부 지층인 대기층은 주로 괴상 석회암으로 구성되었으며 셰일층이 얇게 협재(狹在)한다. 여기까지가 복잡한 지질학 이야기다.


죽서루 동편의 용문 바위 ⓒ 전영식
죽서루 내부, 우측의 <제일계정 第一溪亭> 현판은 허목의 글씨이다 ⓒ 전영시
죽서루에서 바라본 삼척문회전당 방면 전경 ⓒ 전영식


통리협곡 & 미인폭포


복잡다단한 지질 환경을 거슬러 태백시 쪽으로 올라가면 더 볼만한 장소가 나타난다.

미인폭포, ⓒ 전영식

하천의 발원지 쪽으로 올라가면 도계읍 심포리에서 높이 50m의 미인폭포를 만나게 된다. 폭포로 이르는 협곡을 통리협곡이라고 하는데, 미인폭포는 백악기 경상누층군인 적각리층을 침식시키며 지금도 후퇴하고 있다.


한국판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미인폭포 주변의 협곡은 중생대 백악기(약 6500만 년 전~1억 4500만 년 전)에 퇴적된 경상누층군 적각리층 역암으로 되어 있는데, 신생대 초의 심한 단층 작용으로 강물에 침식돼 270m 깊이로 파여 내려갔다.


협곡의 전체적인 색조가 붉은색을 띠는데, 이것은 퇴적암들이 강물 속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건조한 기후조건으로 공기 중에서 노출된 채 산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폭포수는 석회암이 침식되어 내려오며 비췻빛의 특이한 색상을 보여 준다. 붉은색 절벽과 비취색 폭포물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다.


폭포 주변에 떨어진 암석은 주로 굵은 자갈로 된 역암이 눈에 띄고, 모래로 이루어진 사암, 진흙으로 굳은 이암 등도 흩어져 있다. 해발 700m 안팎의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안개나 구름이 끼는 날이 많으며 이때 경치가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다만 주차장에서 내려가기, 폭포 주변 다가서기에는 조금 공을 들여야 한다.


백악기 적각리층 전석 ⓒ 전영식


미인폭포 동북 편 고원지대 및 폭포 위의 계곡은 옛날부터 미인 출생지역으로 전해오고 있단다. 이 근처에는 미인묘가 있단다. 옛날 한 미인이 출가하였으나 남편이 일찍 사망하여 재가했는데, 또다시 사망하니 그 미인은 이 폭포에서 투신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사별한 남편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여 이 폭포에서 투신자살했다고 한다. 그대로 믿기는 쉽지 않다.


여래사 주차장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15분 정도의 트레킹으로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여래사를 지키고 있는 성질머리 고약한 개를 조심해야 한다. 보통 절에 있는 개들은 순하디 순한데, 이놈은 좀 특별하다. 전생에 뭐였는지 원...


하천쟁탈


통리협곡과 미인폭포가 발달하는 통리 일대는 과거에 하천 유역이 바뀐 하천쟁탈(河川爭奪, Stream capture, Stream Piracy) 현상이 일어난 곳이다. 처음에 백병산(1260.6 m) 북측 구사리에서 발원한 물은 삼척시의 오십천으로 가지 않고, 태백시의 통리역과 철암천을 거쳐 구문소에서 낙동강 수계인 황지천으로 흘러가는 하천이었다. 이때는 미인폭포도 없었다.


미인폭포 위치, 출처: 네이버 지도
오십천의 하천 쟁탈, 위키미디어: Dittwjfsdgkvkdjg


안정된 철암천과 달리 동해로 흘러가는 삼척의 오십천은 하상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하천 상류가 지속적으로 침식(공격)되고 결국 철암천(지도에서 남색)과 만나 삼척의 오십천(지도에서 하늘색)이 철암천의 유역을 빼앗는 하천 쟁탈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철암천의 발원지는 백병산에서 통동 예랑골로 변경되었고 과거 물이 흐르던 통리 지역은 풍극(Wing gap, 구하도)이 되어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현재도 삼척 오십천에는 계속해서 침식 작용이 발생하고 있으며 침식 활동의 선두에 위치한 것이 바로 미인폭포이다. 통리 지역 계곡바닥에 하천퇴적물이 발견되어 옛날에는 이쪽으로 강이 흘렀다는 것이 밝혀졌고 결국 풍극임이 확실해졌다.


오십천단층


오십천 단층(五十川 斷層, Oshipcheon Fault)은 옥천 습곡대 내 태백시 통리에서 도계읍을 지나 삼척시까지 오십천 계곡을 따라 발달하는 연장 45 km, 북동 15~20° 주향의 단층이다. 오십천 단층의 단층 비지(fault gauge)에 대한 ESR 연대측정 결과, 제4기에 해당하는 32~17만 년 전(318±53 ka, 269±64 ka, 224±30 ka, 166±24 ka)에 최소 2회 이상 단층이 재활동한 것으로 드러난 활성단층이다.


오십천 단층은 고생대 조선 누층군과 평안 누층군 분포지역을 가로지르며 중생대 백악기 경상 누층군에 해당하는 적각리층 및 홍전층을 변위 시키고 있으며 우수향 주향이동 운동과 정단층 운동을 모두 겪은 단층이다. 적각리층을 기준으로 한 오십천 단층의 변위량은 최소 125m, 최대 400m이다.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의 죽서루


관동팔경 중의 제1경인 죽서루는 예부터 여러 화가의 그림 소재가 되었다. 진경산수가 자리 잡은 18세기의 그림이다. 위쪽 그림은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1738년)에 실린 그림이고, 아래쪽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금강사군첩 (1788년, 정조 12)에 실린 그림이다.


정선의 관동명승첩 중 죽서루(1788), 출처: 한국데이터진흥원
김홍도 금강사군첩 중 죽서루(1783), 출처: 한국데이터진흥원

두 그림 모두 죽서루를 정면에서 본 형태로 그렸다. 현장에서 죽서루 건너편에는 그만한 높이의 산이 없기 때문에 상상의 위치에서 부감법으로 그렸다. 겸재의 그림이 카메라 1배 배율로 찍었다고 하면, 단원의 그림은 0.5배 광각으로 찍었다고 볼 수 있다.


겸재의 그림은 선이 거칠고 굵으며 배경을 과감히 생략하여 힘이 느껴지는 반면, 단원의 그림은 세밀하고 직선적인 붓터치로 죽서루와 주위의 풍경까지 세세한 부분의 묘사에 힘을 실었다. 두 그림 모두 한가로이 풍광을 즐기는 유람선의 모습을 포인트로 그려 넣었다.


삼척시가 준비하는 국가지질공원에 포함된 지질명소 12곳에 죽서루 하천지형, 미인폭포와 통리협곡이 포함되어 있다. 삼척은 수도권에서 멀고 강원도에서도 험하고 외진 지역이지만 지질학과 역사의 장소가 잘 어우러진 곳이다. 선캄브리아기부터 현대까지 시간의 흔적을 거슬러 다니다 보면 어느덧 삼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멀지 않은 곳에 죽서루 현판을 쓴 미수 허목의 동해척주비가 있다. 주변이 역사적, 지질학적으로 다양한 볼거리로 채워져 있다. 남에겐 알리고 싶지 않은 나만의 장소로 남기고 싶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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