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속 지구과학 이야기
10년 전에 유치한 APEC 2025 (10.31~11.1)의 개막이 20일도 안 남았다. 이에 따라 경주박물관에 새로운 건물이 생겼다. 이 건물은 당초 정상 만찬이 열리는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신라 경주의 유물을 각국 정상에게 소개할 자연스러운 기회로 보고 이런저런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 건물은 어느 모로 보나 박물관용 건물은 아니다.
위 사진처럼 1층 단층 구조의 한옥으로 건축비만 41억 원이 들어갔다. 위치는 본관인 신라역사관과 신라미술관 사이의 공간으로 여기에는 예전부터 석가탑과 다보탑 모조품이 세워져 있다. 안 그래도 좁은 경주박물관에 임시목적의 시설물 설치 공사로 박물관은 내내 어수선했다.
경주박물관은 이미 낡고 오래돼서 찾아오는 관람객에게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주말이나 방학 때에는 수용인원을 초과한 관람객이 방문한다. 당연히 주차는 쉽지 않고 화장실도 부족하고 낡아서 언제나 불만 사항이 되고 있었다(이제야 개선공사를 하고 있다). 평지에 만들어진 본관 건물의 출입구도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구조다. 게다가 하나 있는 카페와 편의점도 각각 대척점을 이루는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박물관은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서 화기의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불을 사용한 조리시설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만찬장에는 조리시설이 없었다. 그건 이미 다 알던 사실이다. 정부가 바뀌어 새 정부는 APEC 한 달여를 남긴 상황에서 만찬장을 보문단지 내의 호텔로 옮기는 결정을 했다. 이리하여 비좁은 경주 박물관에는 생뚱맞은 건물이 생겨버렸다. 다행히 다른 건물은 예정돼 있던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헐지 말고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
신라의 금관이 이번에 국립경주박물관에 모인다. APEC 정상회담이 경주에서 열리는 만큼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로 사상처음으로 기획된 것이 '금관 특별전'이다. 당초에는 10.31~11.1에는 APEC 회의와 연관하여 외빈에게만 보여주고 이후에 일반에게 공개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연회장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 버렸고 외빈들이 일부러 들르지 않을테니, 일정은 바뀌어 10월 28일부터 일반인에게 전시된다. 그것도 멀쩡한 특별관은 문을 닫아 놓고 본관인 신라역사관 3a실에 다 모아 놓는다고 한다.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인파관리를 잘해야겠다.
지금까지 알려진 신라의 금관은 모두 6개이다. 각각의 발굴에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모든 금관은 마립간 시절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에서 발굴된 것이다. 구조상 일상생활에는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고, 발굴당시의 모습으로도 부장품으로 넣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히 누구의 왕릉인지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주인은 모른다.
발견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금관총 금관(1921), 금령총 금관(1924), 서봉총 금관(1926), 교동 금관(1969), 천마총 금관(1973), 황남대총 북분 금관(1974)의 순이다. 학계에서 파악하는 금관이 출토된 무덤의 선후 관계는 대체로 황남대총 북분 -> 금관총 -> 서봉총 -> 천마총 -> 금령총 순서로 추정된다.
금관의 구조는 이마에 두르는 머리띠인 관테(대륜, 臺輪)와 관테 위쪽으로 세워진 장식인 입식(立飾) ( 뿔, 나무 모양의 장식), 관테 밑으로 늘어뜨리는 수식(垂飾, 장식 줄, 곱은옥, 영락 등)으로 되어 있다. 입식은 5개의 가지로 되어 있다.
금관은 입식 중 나무모양(出자 모양)의 단수를 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3단은 황남대총(드리개 3개), 금관총(드리개 2개), 서봉총(드리개 1개, 봉황이 3마리 있다)이며, 4단은 천마총, 금령총(작다)이다. 교동 금관은 이 형식에서 벗어난다.
일찍이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에서는 신라를 "라일본의 진(津)을 향하고 있는 나라(신라)가 있으니 눈부신 금은채색이 그 나라에 많다고 묘사한 구절(일본서기 권 8)이 나온다. 12세기 아랍의 알 이드리시가 쓴 '천애횡단갈망자(天涯橫斷渴望者)의 산책'에는 "신라에는 금이 너무 흔해 개의 목걸이도 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한때 회자되던 개포동에서는 개도 포니 탄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각 금관의 무게는 교동 50.4g, 금령총 356.4g, 금관총 692g, 서봉총 803.3g, 황남대총 북분 1062g, 천마총 1262.6g 등이다. 곡옥도 포함되어 있어 전체가 금의 무게는 아니다. 하지만 꾸미게, 귀걸이 등 금 장식품도 많아 더 많은 양의 금이 사용됐을 것이다.
여기에서 잘 알려진 고고미술학적인 측면, 고고학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필자에게는 이렇게 많던 금 그리고 금관을 만든 금은 어디서 왔는지가 궁금하다. 각 금관의 금의 출처를 알아내려면 일단 금관에 사용된 금을 분석해 봐야 한다.
신용비 등(2015)에 따르면 신라 금관은 대부분 금(Au)과 은(Ag)의 합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X-선 형광분석기(XRF)로 분석된 6점의 금관 모두에서 금 함량은 80~90%대였다. 특히 교동 금관이 가장 높은 순도(89.2wt%)를 보였고, 제조 추정 시기가 후기로 갈수록 금관의 순도가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신라 금관 6점의 입식 금판의 금 함량 순도별로 나타내면 교동 금관은 89.2wt%, 황남대총 북분 금관 86.2wt%, 금관총 금관 85.4wt%, 천마총 금관 83.5wt%, 금령총 금관 82.8wt% 그리고 서봉총 금관 80.3wt% 순이다.
신용비 등(2015)은 순금이 연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은을 인위적으로 합금했다고 보았는데, 자연계에서 100% 순수한 금은 나오기 힘들고 보통 은과 함께 결합되어 나오기 때문에 넣었다고 보기는 증거가 불분명하다. 만일 그 정도의 기술이 있었다면 더 경성을 제공하는 금속과 합금을 시도했을 것이다.
사금은 종종 퇴적 환경에서 무거워서 남은 금가루들이 뭉쳐서 만들어진다. 크기가 커지면 Gold Nurget이라고 부른다. 보통 금의 함량은 83~92%(20K~22K)이다(위키피디어). 따라서 신라 금관이 제련을 통해서 일부러 은을 넣었다는 증거는 없다. 순수한 은이 따로 나오는 경우도 드물다. 필자의 생각에는 금의 함량은 금관의 시기별로 모은 사금의 평균값일 것이고, 보통 채취가 쉬운 곳에서 어려운 곳으로 채취가 되기 때문에 금 함량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금은 퇴적환경에서 쌓이는데, 일반적으로 현재의 하도(강길)보다는 예전의 하도가 사금을 찾는데 더 중요하다. 금이 포함된 기원암의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의 하도에서는 사금이 이미 많이 발견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라시대인 5~6세기의 상황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사금은 금맥이 풍화작용과 유수의 작용을 받으면서 하천으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하천의 유속이 느려지는 곳에 주로 퇴적된다. 우리나라의 금맥은 화성활동과 관계되어 잔류마그마의 유체에서 맥상으로 관입하는 석영맥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된다. 따라서 이러한 화성활동이 있는 상류의 지질환경이 사금의 채취 탐사에 중요하다.
박홍국(2011)은 신라 유물에 쓰인 금이 경주 인근에서 채취한 사금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경주시 내남면, 안강읍(3처), 영천시 고경면(2처), 자영면, 포항시 죽장면, 울주군 삼동면 조일리, 범서면 등 10곳에서 사금 채취를 하여 결과를 발표했다. 채취된 사금의 금 함량은 65~80% 정도였다고 한다. 가능성은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쌓여 무슨 결과가 나올지는 누구도 모른다.
12월 14일로 이번 전시가 끝나면 금관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황남대총 북분, 금령총 금관이, 국립청주박물관에는 서봉총 금관이 그리고 경주박물관에는 천마총, 금관총, 교동금관이 소장되어 있었다. 분명 앞으로도 6개의 금관을 한 곳에서 보기는 좀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 APEC으로 경주를 찾은 각국 지배자(?)들에게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1. 박홍국, 2014, 신라 황금에 대한 소고-경주 및 인근지역에서 채취한 사금을 중심으로- 위덕대학교 박물관 총서 5편, 위덕대학교 박물관
2. 신용비, 2015, 유혜선, 윤은영, 신라 금관의 성분 조성 분석, 박물관보존과학 제16집
https://doi.org/10.22790/conservation.2015.16.0046
3. 신용비, 2021, 신라 금제품의 화학조성과 누금기술, 공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4. 옥재원, 2023, 박물관에서 신라를 생각하다, 푸른역사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