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 과학 이야기
연일 일본에서 곰의 습격을 받고 사람이 죽고 다치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도 자주 나와서 이전 기사를 재탕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우리 일상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니까. 문제는 이른바 어번 베어(urban bear·도시의 곰)에 의한 인명 살상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 안 사는 심산유곡에 갔다가 곰을 만나 당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번 베어란 서식지 산에서 내려와 주택가 등을 활보하며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시 생활에 적응해 가는 곰을 말한다. 최근에 나온 소식 중에는 지난 10월 20일 이와테현에서 프로레슬링 심판으로 활약했던 60세 남성이 온천에서 일하던 중 실종됐는데, 인근 숲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달 8일에는 2km 떨어진 곳에서 버섯을 채취하던 남성이 곰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2025년(R7) 일본 회계연도 시작월인 4월부터 10월 22일까지 172명이 죽거나 다쳤다. 주민 생활권에서 벌어진 비율이 66%인 114명에 이르렀다. 많아졌다.
* 'H'는 일본연호 헤이세이(平成,1989~2019)를, 'R'은 레이와(令和, 2019~)를 의미(R5는 2023년)
도토리 등을 주식으로 삼는 열매들이 흉작으로 찾기 어렵게 되자 먹이를 찾아 민가로 내려온 곰들이 갈수록 대담해지면서 어번 베어로 변모하고 있다고 일본 지자체들도 걱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곰에 의한 인명 살상 사례가 주기적으로 발생했지만 최근 상황은 이례적이다. 예전엔 주로 겨울잠을 앞둔 곰들이 배를 채우러 민가로 내려왔지만, 최근엔 봄·여름에도 출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4~6월 곰의 습격으로 37명이 죽거나 다쳤다. 일본에서의 곰 피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재 일본 애니나 괴담에 많이 나오는 괴물은 곰에서 온 것이 많다. 예전부터 많았다.
1915년 12월 9일부터 14일까지 홋카이도 산케이쓰 구, 산케이에서 발생한 일본 역사상 단일 개체 맹수가 일으킨 최악의 동물 재해이다. 키 2.7m, 체중 380kg에 달하는 아무르 큰곰(에조불곰)이 개척지마을을 2번 습격해서 여자와 아이들 6명(임산부 희생자의 태아 포함 시 7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11월부터 주변을 염탐하던 곰은 남자들이 없는 틈을 타서 집을 습격하여 6세 아이를 죽이고 34세의 여자를 죽인 후 물고 갔다. 수색대가 뒤쫓았으나 형편없는 총과 사격실력으로 오히려 반격을 당해 쫓겨 온다. 이튿날 수색대는 희생자의 사체를 회수했지만, 자기가 확보한 먹이를 따라온 곰이 다시 방비가 허술한 아이와 여자만 있는 집을 덮쳐 임산부와 3명의 아이들이 추가로 희생됐다. 이때도 토벌대는 변변한 대응을 못한다. 곰은 다음날 다시 나타났지만 도망치고 결국 다음날 사냥꾼 야마모토 헤이치키에 의해 사살됐다.
홋카이도는 1869년 메이지 유신 이후 에조치(蝦夷地, えぞち)에서 일본으로 공식적으로 병합되었다. 일본 정부가 에도 막부 말기인 19세기말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홋카이도 미개발지에 이주-개척 정책을 추진하면서 토착민인 아이누와 이주민의 갈등이 발생했다. 마찬가지로 동물 서식지와 인간 거주지가 겹치면서 곰 등 동물들이 농작물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해치기도 한 사건이 빈발했다.
산케베쓰 사건이 발생한 지 8년 후인 1923년 8월 21일~24일, 홋카이도 우류군 누마타초 지역에서 이시카리누마타 호로신 불곰 사건 (石狩沼田幌新事件, いしかりぬまたほろしんじけん)이 발생했고, 에조 곰이 개척민과 사냥꾼을 습격해서 대부분이 남자인 5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역대 2번째 인명피해였다. 시간이 흘러 1970년 역시 같은 홋카이도의 히다카산맥에서 대학생 3명이 불곰의 습격에 참혹하게 살해당한 후쿠오카 대학 반더포겔부 불곰 습격 사건이 발생했다. 에조곰의 짓이었다.
곰은 잡식성에 사람처럼 2족 보행이 가능하고 환경적응력이 좋다. 또한 몸집이 거대하고 완력이 세서 거의 최상위 포식자의 역할을 하며 사자나 호랑이에 비해 개체수도 많다. '미련 곰탱이', '곰딴지', '곰돌이 푸' 같은 잘못된 이미지 때문에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지능이 매우 높고 민첩하며 스피드에 파워도 세서 오래 걷거나 싸우기도 잘하며 수영도 수준급이다. 냉장고와 차의 문을 열 수도 있고 술도 잘 마신다. 후각도 뛰어나다. 다섯 발가락에 수염은 없다.
분류학상 곰은 식육목 개아목 곰하목 곰상과 공과에 속한다. 곰과에는 판다아과(대왕판다), 안경곰아과(안경곰), 곰아과(느림보곰, 태양곰, 아시아흑곰, 아메리카흑곰, 불곰, 북극곰)의 8종으로 구성된다.
북극곰, 아시아흑곰(반달가슴곰), 갈색 또는 회색을 한 불곰, 거무죽죽한 아메리카 흑곰이 상대적으로 덩치도 크고 사납고, 귀염둥이 판다, 판다와 뒤바뀐 흑백 대비의 안경곰, 부스스하고 삐죽삐죽 털뭉치 같은 느림보곰 그리고 몸집과 털 길이가 작고 짧은 태양곰(말레이곰)은 상대적으로 덩치도 작고 유순하다.
반달가슴곰은 몸길이가 120~190cm 정도에 몸무게는 수컷이 60~200kg, 암컷은 40~125kg가량이며, 최고 기록은 수컷 225kg, 암컷 140kg이다. 체형과 크기, 체색이 아메리카흑곰과 특히 흡사하며 실제로도 이 둘은 매우 가까운 자매종이다. 검은색 몸에다 가슴 부위에 흰색 털이 초승달 모양 반달무늬가 있다. 이 무늬는 아메리카흑곰에서도 등장하나, 아메리카흑곰은 무늬가 없는 개체들이 더 많다.
대한민국에서 자생하는 유일한 곰이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및 러시아 지역에 서식하며, 플라이오세~플라이스토세 시기의 화석들이 이베리아반도, 발칸반도, 우랄산맥 등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주로 숲, 특히나 낙엽수림, 혼합림, 가시덤불림에 서식한다. 보통은 주행성이지만,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 서식하는 개체들은 인간의 활동 시간을 피해 야행성으로 체질을 바꾼다.
일본에는 홋카이도에 불곰(Ursus arctos, Brown Bear)이 약 1만 천 마리와 주로 혼슈 전역에 분포하는 아시아 흑곰(Ursus thibetanus, Asian Black Bear, 반달가슴곰)이 4만 마리가 서식한다. 규슈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보이며, 시코쿠에서는 30마리 미만만이 서식한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 곰 피해는 혼슈 지역의 반달가슴곰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리산과 덕유산, 가야산을 중심으로 90여 마리의 반달가슴곰만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추정된 수치이다.
농촌 인구 감소로 사냥 면허 소지자도 줄어들고, 인간과 곰의 완충 지대인 '사토야마(里山)'이 사라지면서 곰이 인간 서식지로 더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 또 기후 변화로 인한 개화시기의 변화로 도토리, 밤 등 곰의 주식인 열매 작물이 흉작을 겪으면서 먹이를 찾기 위해 이동하는 빈도가 늘었다. 특히 겨울잠을 앞두고 먹이를 비축해야 하는 시기에 도토리가 없으면 민가로 내려온다. 일본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곰의 서식에는 유리한데, 최근 들면서 산림 농지가 방치되면서 곰이 서식하는 숲과 산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의 면적이 남한의 약 3.8배에 이를 정도로 넓고, 산지 비율(산림률)은 66%에 달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70%가 산지이다. 일본에 곰이 많은 이유가 단순히 산지가 많아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생각건대 일본의 국토는 해안가 위주로 개발되어 있고, 최근에 전국을 휩쓴 한국전쟁 같은 전쟁이 없었으며, 오래된 불교의 영향, 일본 정부의 수렵 금지가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11월 무인 카메라에 찍힌 야생 반달가슴곰의 모습이 TV 다큐멘터리에 방영되면서 복원에 대한 논의가 불붙었다. 이듬해 국립환경과학원이 어린 사육곰 4마리를 지리산에 시험 방사했고, 2004년 국립공원공단이 이 프로젝트를 넘겨받아 러시아 연해주에서 우리 토종 반달가슴곰과 유전자가 같은 어린 곰 6마리를 들여와 지리산에 방사하면서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시작됐다. 백두대간에 터줏대감인 최상위 포식자 곰을 복원시켜 정상적인 동물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하지만 국토가 이 지경이 된 지금, 무엇이 정상적인 동물 생태계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바가 없다.
주관기관은 복원 사업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당초 지리산을 기준으로 최적 개체 수는 60마리, 최대 78마리로 보았다. 환경부는 최소 존속 개체군(특정 생물 종이 최소 단위로 존속할 수 있는 개체 숫자)으로 2020년까지 50마리를 설정했다. 하지만 이미 2018년에 56마리로 최소 개체군을 초과했다. 목표를 초과하여 과밀해졌다는 이야기다.
2025년 2월 16일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현재 반달가슴곰은 지리산과 덕유산에 각각 90마리, 3마리 등 총 93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위치가 추적되는 39마리(42%)의 동면 위치를 보니 탐방로 반경 500m 이내에서 신호가 잡힌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 있는 1마리밖에 없었다. '안전거리'는 보통 탐방로에서 곰 서식지까지 500m 이상을 말한다고 한다. 참고로 곰은 48km/h로 달릴 수 있다는데, 분당 800m를 뛰는 셈이니 500m가 안전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위치 파악이 안 되는 곰이 54마리로 더 많고, 반달가슴곰의 행동 권역이 105~130㎢ 정도로 넓기 때문에 이 안전거리가 의미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복원작업을 한 지리산의 면적이 483㎢로 곰의 개체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좁아, 처음부터 과밀화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지리산의 탐방로를 다 출입금지 시키면 해결되겠지만, 이 상태로는 추적이 되지 않는 개체가 많아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고, 향후 개체 간의 경쟁, 타 지역으로의 탈출 등 다양한 부작용이 불 보듯 뻔하다. 시간문제다.
2023년 6월 14일 반달가슴곰 오삼이(KM-53, Korea Male, 수컷, 8세)가 상주시 민가 경작지 인근에서 주민 피해를 우려한 국립공원공단 측의 수의사가 쏜 마취총에 맞은 뒤, 계곡으로 굴러 떨어져 폐사됐다. 오삼이는 2015년 1월에 중국에서 들여온 곰인 CM-33과 CF-37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해 10월 지리산에 방사됐다.
오삼이는 수차례 지리산 탈출로 유명하다. 2017년 6월 15일 지리산에서 90km 떨어진 김천시 수도산에서 발견된 후 포획되어 지리산으로 돌려보내졌는데, 2주 만에 다시 수도산으로 탈출했다가 수거되어 지리산 종복원센터에 갇혔다. 방랑벽이 있었는지 센터의 강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2018년 5월 3번째 탈출을 시도한 오삼이는 대전-통영고속도로 생초나들목 인근에서 관광버스에 부딪쳐 큰 부상을 입고 왼쪽 앞다리 골절 수술을 받았다. 3개월의 재활 후에 결국 그토록 바라던 김천 수도산에 방사되었다. 하지만 1년 뒤에는 구미 금오산에서도 등산객에게 발견되었다. 2022년 6월 13일 상주시 화남면 야산에서 발견되어 한 많은 생을 마쳤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동물도 갖둬놓는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2018년 3번째 오삼이 탈출 당시, 그의 동선상인 거창을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반복되는 곰의 탈출에 지역 방송, 관공서 등에서 계속 경고 방송을 하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곰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밤길을 조심하고 함부로 곰에게 다가가지 말고 바로 신고하라고 했다. 그날 밤거리는 왜 그리 무서웠는지...
공주의 옛 이름은 웅진이다. 곰나루다. 그래서 공주의 마스코트는 고마곰과 공주다. 금강변 미르섬에 서있던 그 고마곰이 2023년 7월 15일 집중호우로 떠내려갔다. 다행히 1.5km 떨어진 쌍신공원에서 발견되어 재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곰의 전설은 모두 다행스럽지만은 않다.
단군신화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곰은 위협적인 동물이 아니라 친근한 동물이다. 우리나라의 곰은 산에 있든 동물원에 있든 모두 반달가슴곰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을 무서워하고 공격성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의 특성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친 개체수가 문제가 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시골에는 노인들뿐이고 엽총은커녕 달리기를 잘할만한 사람도 없다.
2025년 지리산 산불로 삶의 터전이 없어진 곰들이 어디로 갔을지는 오리무중이다. 무리한 자연복원은 결국 인명피해를 낳고 다시 회수하여 우리에 가두어 놓는 인간의 여가놀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불분명한 정책 목표에 세금만 들어가고 결국 곰을 이용한 생태계 놀이에 지나지 않을지 우려가 많다.
곰과 인간의 생활터전은 중복되고, 인간은 줄지만 곰은 늘어난다. 우리의 자리를 곰에게 내줄 수 있을까? 곰을 지리산에 가둬 놓는 것이 생태계 복원일까? 다시 예전과 같은 상태로 몰아넣으면 우린 안전하고 마음이 편해질까? 마늘을 먹여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덜 슬플 것 같다.
참고문헌
조선일보, 지리산 반달가슴곰 100마리 넘는다는데… 60%는 위치추적 안 돼, 2025.2.28
조선일보, [수요동물원] 지금 지구촌은 인간과 곰의 전쟁 중, 2025.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