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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프로젝트의 시작, 가설수립

조별과제 무임승차는 누구나 싫잖아?

by Aiden

옛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무언가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나면 끝마치기는 그보다는 훨씬 수월하다는 뜻이다. 일을 하다 보면 이 이야기가 가장 공감이 되는 순간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떠 출근길에 오르는 하루의 시작도 그렇고, 사무실에 앉아 커피 한잔으로 강제로 뇌를 깨우며 업무를 준비하는 시작도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말이 가장 와닿는 순간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순간이다. 보통 프로젝트 시작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보다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단계가 가장 힘들다. 기본적으로 프로젝트의 주제(대상)는 어느 정도 회사가 바라보는 방향성이나 현재 우리의 비즈니스를 감안하면 개괄적인 윤곽이 잡혀있기 때문에 고민이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이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방법론은 한도 끝도 없기에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 업무의 성패가 달라지고 만다.


예를 들어, 앞서 등장했던 주식거래를 실제 업무에서 풀어나간다고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우리가 업무과제를 선정할 때는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기반해서 과제를 세분화해서 잡는데, 이런 식이다.


올해 년간 목표로 달성해야 하는 주식거래 사용자에 대한 개선 지표 중 가장 시급한 게 신규 가입고객의 서비스 활성화도. 그리고 나아가는 한 달 정도의 기간 뒤에 이탈하지 않는 잔여 고객률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1차적으로는 ‘고객 이탈 방지 목적의 활성화 방안'이라는 과제를 내려줄 것이다. 그럼 무턱대고 설계서를 들고 덤벼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뭘 개선해야 좋아질 수 있을지를 검증하는 조사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때 우리의 고객 데이터도 들여다볼 것이며 경쟁사와의 비교 분석 그리고 시장의 트렌드 자료 등을 모조리 긁어놓고 분석을 하게 된다.


아마도 운이 좋다면,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과제를 빠르게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젊은 20대 중후반의 사회 초년생의 증권거래가 상승하는 트렌드가 확인됨에도, 고객의 행동지표가 경쟁사 대비 다른 연령층보다 열위한 모습을 보인다.’ 같은?

집중해야 할 주제 ‘무엇'은 확실해진 셈이다. 여기까지는 객관적인 지표 자료들을 구하기가 쉽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지는데 문제는 이다음. 20대 중후반의 젊은 층의 활성화를 위해 서비스 개선을 한다면 뭘 해야 할까?


내 업무방침이기도 하지만 이때 직원들에게 주문하는 건 가급적이면 ‘무언가가 있으면 어떨까요?’ 같은 가능성은 일단 배제하고 접근하라 일러두곤 한다. 서비스를 더 좋아지게 하는 걸 목적으로 하면서 새로운 걸 고민하지 말라는 게 넌센스로 들린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지만 잔소리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사실 난 ‘무언가가 있으면 어떨까?’라는 상상은 매우 환영하는 편이다. 다만 그 앞에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이걸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가 있으면 어떨까?’라는 식으로 문제(원인)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난 뒤라면 말이다.


이게 무슨 차이인지 헷갈리는 친구들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이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접근이 너무나도 자주 발견 되기에 말이다.(그리고 그 프로젝트의 결과는 대체로 참혹하다)


새로운 대안의 제시는 언제나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일이지만, 투자대비 비용을 고민해야 하는 영리 집단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만은 못하다. 이유인즉슨,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여 그 대안을 현실로 구현해 놓은들 얼마나 많은 사용자가 이를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두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일단 해보는 게 좋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스타트업에서는 분석에 시간을 과하게 투자하기보다는 먼저 실행하고 시장으로부터 빠르게 피드백을 수용하는 애자일 Agile 같은 방법이 우대받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특히 그 기업이 가진 비즈니스가 견고하고 시장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업일수록 더욱더) 효율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 뒤를 격렬히 추격해 오고 있는 후발 주자들이 있기 때문이며, 반대로 우리가 그 후발주자라면 선두를 추월하기 위해 더 높은 효율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우리가 갖는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걸 중요시한다. 그래야만 이를 극복해 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기대 효과 또한 예측이 가능하며, 이 방안을 실제로 실행할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다시 탐색할지 효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으니까.


직접적인 예를 들어보자.

1. 젊은 층은 일반적으로 주식 거래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계층이니 주식거래를 쉽게 해 주면 활성화되지 않을까?

2. 고객 지표 확인결과 젊은 사용자층에서는 그래프와 종목토론방 위주의 행동패턴이 보이는데, 이는 그래프의 움직임과 타인의 이야기를 근거로 한 거래 형태를 갖고 있지 않을까? - 반면 수익률이 높은 사용자의 행동패턴을 보면 기계적 지표 외에도 대상 기업이 갖는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다양한 학습 소스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며 자기 주도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 이 차이는 젊은 층은 주변의 소문이나 호재를 따라다니는 식의 투자를 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저조하기도 하지만(호재가 갖는 영향도를 모르니 매도 타이밍을 놓쳐 상대적으로 손실률도 크다) 호재가 명확하지 않은 시점에는 서비스 활성도가 저하되고 투자 기회가 줄어들다 자연스럽게 서비스에서 이탈하는 형태가 아닐까 예상 - 그렇다면 젊은 층이 고수익자와 같은 행동패턴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이 행동으로 개선되도록 하려면 우리가 가장 먼저 손봐야 할 서비스 모듈은 뭘까?


1번은 모호한 상식을 전제로 가능성만을 뽑아낸 접근이라면, 2번은 철저히 우리가 갖는 문제를 사전에 정의하고 그를 근거로 한 가능성을 이정표로 삼는 방식이다.

아마 실무 경험이 없거나 적은, 지금 이 글의 독자가 보더라도 추상적인 1번은 기적적으로 뭔가를 해냈더라도 얼마나 좋아질 거라는 예상이 어려울 거라 생각이 든다. 반면 2번은 저런 행동 패턴을 가진 사용자의 수치만 안다면 적어도 이 중에 일부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으리란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는 저런 식으로 포커스가 좁혀진 대상에 대해서는 ‘나라면 어떻게 개선하지 않을까?’라는 식의 상상을 하는 친구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 차이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극명한 차이다. 이건 지금도 치열하게 돌아가는 실무 현장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며, 여러분의 포폴 안에도 끊임없이 고민이 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실무 경험이 없는 이제 막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들은 다소 억울할 수도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문제 접근은 쉬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UX는 다소 학술적인 접근이 허용되는 반면에 회사에서 요구되는 능력은 그보다는 훨씬 실전적이기에 확실히 결이 다르다. 그렇기에 이제 막 대학 졸업장을 받아 든 이들에게는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일 수밖에.


하지만 이 또한 오해인 것은, 회사 역시 주니어 레벨의 지원자들에게 날카롭고 뾰족하게 문제를 정의하고, 예측 가능한 방법론을 설계하는 마치 노련한 실무자 같은 수준을 기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애당초 신입 사원을 뽑는다는 말은 어느 정도 역량을 키워(투자해서) 실무에 투입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단지 우리는 사례 속의 ‘양사원’처럼 배울 자세가 되어있지 않는 이들을 꺼릴 뿐이다. 가뜩이나 내 일을 처리하는 것도 힘겨운데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심지어 배울 자세도 안 되어있는데 고집까지 피운다? 생각만 해도 피곤할 지경이다.


간혹 기업을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하고 사회에서 막대한 이윤을 걷어들이는 반면 인재 양성에는 관심 없는 파렴치한으로 취급하는 모습을 보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변명을 하고 싶어진다. 이익 추구 집단인 기업에서 이윤을 창출하고 투자대비 비용 효과가 낮은 신입 육성을 기피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반은 맞다. 하지만 채용을 진행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이기적인 목적보다는 사실상 오늘 하루를 버텨내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라, 여러분도 대학시절 조별과제 할 때 무임승차 하는 친구들을 기피하거나 경멸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겪을 수 있는 일들이지 않은가?


주니어이기에 실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태어날 때부터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게 당연하다. 하지만 배우려는 자세 조차 되어있지 않은 이들이 조직에 있을 경우, 우린 그들을 무임 승차자로 간주하고 기피하게 된다. 회사라 해도 마찬가지. 오히려 학교라는 테두리 보다 더 격렬한 배척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렇기에 스스로의 포트폴리오에 어떤 방식의 논리적 전개를 담을지는 여러분의 자유지만 이걸 조직의 관점에서 걸러낼지 결정하는 것 역시 평가자의 자유라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그럼 적어도 여러분이 이 분야에서 성장할만한, 다시 말해 가르쳐볼 만한 자질이 되는 사람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논리 전개를 택해야 할까? 여기까지 오면 더 이상 이견은 없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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