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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Jul 24. 2023

그러는 와중에도 병은 심해졌다

먹는 약의 양이 늘어났으니까, 그리고 달렸다.

하루는 출근 중에 지하철에서 쓰러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병원까지 실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 인사도 못했지만 도와주셨던 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병원에 잠시 누워 링거를 맞고는 곧바로 출근을 했었더랬죠. 중요한 미팅이 있었단 이유로..


그 일이 있은 이후부터 약이 바뀌었어요. 저녁에만 먹던 약을 아침에도 먹기 시작했다. 한층 더 독해진 처방과 함께 의사 선생님의 숙제도 독해졌습니다. 완벽한 No Caffeine. 커피고 홍차고 초콜릿, 심지어는 콜라도 마시지 말라고 하더군요.


문제는 아침 약이 생기면서 출근길이 나른(?)하고 텐션이 떨어지게 되었다는 점일까? 카페인도 섭취를 못하니 출근 지하철은 손잡이에 매달려 조는 일이 부지기수. 친한 옆자리 차장형님은 이게 사람 사는 거냐고 오히려 저를 타박하듯 걱정했지만, 도리가 있겠는가. 저도 한 사람의 가장이고 가족을 책임지는 입장인걸요.


버텨야지 다른 수가 없었어요. 물론 이직이라는 선택지도 있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온전히 쉬는 게 아닌 이상에야 어딜 가든 같은 상황일 것만 같았습니다. 거기에 도망치듯 선택하는 이직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이직 오퍼가 있음에도 그 옵션은 애써 모른 척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는 일.

의사 선생님의 권고대로 뭔가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뒷동산을 올라가기 위해 엄홍길 세트를 맞춰 입는 민족의 아들. 그래서 캐멀백을 주문했죠. 예전에 물통을 손에 들고 천천히 뛰던 때가 있었는데 손이 엄청 번거로웠습니다........ 정말로.


등에 메는 물통으로 생각해 주세요

이번엔 주문을 할 때부터 묘하게 마음이 설레면서 스스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어두울 때 달릴 테니 조그만 야광 밴드도 하나 사고, 핸드폰 넣을 파우치도 주문하면서 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막상 달리려니 뭔가 심심한 기분도 들어, NIKE RUN이라는 앱을 깔았어요. 이 앱은 내가 원하는 달리기 수준을 선택하면 거기에 맞춰 일종의 내레이션을 넣어주고 동기부여를 해주는 그런 기능이 있거든요. 그리고 주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집 문을 나섰습니다. 비는 약간 내렸지만, '약간의 비는 호흡을 더 편하게 해 주겠지'라는 마음으로요.


처음엔 숨도 차고 왜 나왔나 싶은 생각도 들고, 어서 들어가서 눕고 싶다는 후회도 가득했지만 내레이션으로 저를 응원해 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여러분의 워치나 스마트폰에 많은 수치들이 나올 거예요,
하지만 그건 지금은 중요치 않아요. 뭐 언젠가는 필요할 때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저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달리면서 우는 모습은 정말이지 못볼 꼴이었겠지만 다행이었습니다. 시간이 늦어 인적은 드물었고 비도 오기에 눈물인지는 누구도 몰랐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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