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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Aug 05. 2024

#06. 나오니까 기분 풀리고 좋지?

너무 더워... 집에 있을걸 그랬어...

속초 여행은 한마디로 너무 뜨거워서 쪄죽을 뻔했고, 마음깊이 감사했다. 물론 더워서 감사하단 이야기는 아니다.

이번 여행은 부모님 두분, 누나네 가족(누나, 매형, 내 딸아이보다 한살 적은 조카)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했다. 총 8명이 떠나는 여행. 이동은 매형과 내가 각기 운전사를 자처했다.


여행의 첫 일정은 강릉 아르떼 뮤지엄. 새벽에 출발해 오픈런으로 도착했다. 호텔 체크인까지는 많이 남았지만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누나의 강변에 빼곡하게 채워넣은 일정의 시작이었다.


강릉 아르떼 뮤지엄에서 3대가 함께

내가 결코 오글거리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감사함을 느꼈다.

쏟아지는 빛의 허상속에서 손주들과 함께 허우적대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마지막 모네의 전시에 자리를 깔고 앉아 영상이 끊어질 때까지 눈빛을 불태우신 과거 미술학도를 꿈꾸던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숨겨놓고 먹던 약봉지를 들킨 뒤, 늘 기도 제목이 아들의 쾌유였던 부모님의 얼굴에 미소를 띄우게 될 순간이 이렇게나 빨리 찾아온게 너무나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 여백을 빼곡히 채워가던 두 손주의 악다구니와 웃음소리는 약간의 정신사나운 보너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체크인한 뒤, 장거리 이동에 지친 가족들을 잠시 쉬게한 뒤 나는 저녁거리를 사러 운전을 하고 나왔다. 아이들은 벌써 기운차게도 호텔 수영장을 간단다, 부모님은 잠시 낮잠을 청하는 사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물회,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닭강정,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인절미를 사들고 돌아왔다.


내 공황발작의 증세는 과호흡도 있지만 가장 심한 증세는 시야가 고정되지 않는 지독한 어지럼증이다.

한번은 주말 낮에 자유로를 혼자 달리다가 갑자기 찾아온 발작에 갓길에 차를 대고는 엉엉 운 일도 있었다. 어딘가 망가져버린 스스로를 믿을 수 없다는 눈물, 그리고 다시는 정상으로 돌아가지 못할거라는 절망.

그 이후로 공황장애,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는걸 받아들이기까지 몇년이 걸리긴 했지만 아직도 이따금씩 그 어지럼증은 미약하게나마 찾아온다. 지금은 약을 먹으니까...


하지만 여행 동안에는 단 한번도 어지럼이 없었다.

저녁거리가 부실하다며 오징어순대, 문어숙회를 사야한다시며 같이 속초 시장에 가자는 부모님 말씀에 두분과 아이들을 태우고 떠난 시장 탐방에도 그렇고, 속초 해변과 메밀국수집을 찾아 속초 바닥을 누비고 돌아다니는 여정에도 말이다.


이런 땡볕에 왜 검은옷을 입은걸까

"아들, 나오니까 기분 풀리고 좋지? 회사일은 걱정하지마 어떻게든 될거야"

"너무 더워... 집에 있을걸 그랬어..."


어머니의 걱정 젖은 목소리에 쑥스러움을 감추려 헛소리로 대답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더웠다. 쪄죽을 정도로.

휴직 전에는 주말에도 다음주에 출근하면 풀어나갈 일정 생각에 온전히 쉬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전한 쉼이, 그렇게 맞이한 가족들과의 평온한 시간이 나를 부드럽게 물들게 했다. 물론 그 여백의 사이사이를 딸아이와 조카의 악다구니와 웃음소리가 빈틈없이 메워내었지만 말이다.


'시끄러워 니들 좀 ...'


휴직의 시작 치고는 나쁘지 않은 여정, 아니 오히려 휴직이었기에 더 감사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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