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iden Aug 06. 2024

#07. 제발 왜 이러는 거야, 제발

온전한 가장의 노릇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죄책감

연예인들이 갑자기 TV에 나오지 않다가 복귀했을 때 공황장애를 앓아 잠시 쉬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종종 접하면서 공황장애를 단순한 스트레스성 발작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다.


나는 이전 회사에서 전정신경염이라는 병을 앓고 근 한 달을 누워만 지낸 적이 있었다.

이 병은 몸에 균형을 유지하는 신경에 염증이 발생하여 눈이 돌듯한 어지러움과 구토를 느껴 서있기조차 힘든 병이다. 병의 원인은 스트레스나 면역력 저하로 몸이 약해졌을 때 바이러스 감염이 일어난다는 게 학계의 정설.


당시 신사업 팀장으로 재직하며, 조직 세팅부터 바닥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서비스 프로토타입을 만들며 탄탄한 외부 기업과의 MOU 체결, 협업 계약까지 모두 완료한 뒤였고, 나날이 정신없는 하루였는데 이 뒤가 문제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인력  충원을 결정했고 채용을 진행했다.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에 지원자가 적었던 탓일까 아니면 비즈니스는 타이밍이라는 강력한 호소에 떠밀리듯 마음에 안 차는 사람을 뽑아서였을까? 새로 들어온 이의 트롤링은 끝이 없었고, 위에서는 실적 압박에 돌아보면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때가 아닐까 싶었다.


결국 활자의 나열로는 전달하기가 충분치 않은 고통의 연속으로 회사에서 쓰러졌다.

화장실로 기어가 구토를 하면서 119가 올 때까지 그렇게 무너져 있을 수밖에 없던 무력함. 눈만 뜨면 어지럼에 구토감이 올라와 걷는 건 고사하고 눈을 뜨는 것조차 불가능했기에 병원 치료를 받으며 온전히 누워만 지냈다. 물론 여기에 산재 처리가 두려운 회사는 서둘러 내게 퇴사를 종용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렇게 지내며 몸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내게 남겨진 약간(?)의 트러블. 

스트레스가 없이도 간혹 시야가 빙 돌면서 중심을 잡기 어려운 어지러움이 찾아오는 것. 다른 때는 그래도 참을만했지만 운전을 할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혼자일 땐 그나마 덜했지만 가족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고 갈 때 증상이 나타났을 땐 속으로 빌곤 했다.


'제발 왜 이러는 거야, 제발'


가족들에게 온전한 가장의 노릇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죄책감, 그리고 '언제일지도 모르는 회복이 찾아오긴 하는 걸까'하는 두려움.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감정들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증상은 더 자주 나타나곤 했다.


분명 전정신경염은 1년도 더 지나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 이 지독한 어지러움은 뭐란 말일까?

내 손에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를 들기까지 나는 운전대를 잡으면서,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맡기면서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두려움으로 먹칠하며 미련하게 버텨왔다. 모든 걸 망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 온전한 삶을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은 극심한 불안.


그렇게 2년여간의 시간을 더 매달린 끝에야 우연한 기회로 이 병이 공황장애와 우울증임을 깨닫게 되었다. 미련하게도.

매거진의 이전글 #06. 나오니까 기분 풀리고 좋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