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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Aug 07. 2024

#08. 죽고 싶다, 그저 죽고 싶다

'이제는 이대로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어두운 생각

병석에서 일어나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한 뒤에 두려움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못 마시던 술잔을 집어 들었다. 지금 이 폭풍이 가만히 스쳐 지나가기를 빌면서 어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달라고 빌면서.

그런 뒤죽박죽인 삶의 가운데 새벽 공기가 차가웠던 어느 날인가 출근길을 나서는 순간 문득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다, 그저 죽고 싶다'


순간의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다 스쳐 지나간 뒤에 딸아이와 와이프를 떠올리며 차마 실천에 옮길 마음은 감히 들지는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하지만 불행은 꼭 잇달아 찾아오듯 나날이 어리석은 생각의 빈도가 높아만 갔다.


이제는 감히 떠올리지 못하는 실천을 아무렇지 않게 '이제는 이대로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어두운 생각으로 말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어지럼은 이따금씩 찾아왔고 나는 더욱 우울해져 갔다.

그러다 인생의 멘토이자 친한 형님으로부터 권유를 받고, 그렇게 첫 정신과 상담을 두드린 뒤에야 진단받은 공황장애, 생각보다 심각한 우울증과 함께라는 사족을 달고 말이다.


정신과에 찾아가면 정신건강을 검진하기 위한 자가진단표를 작성하는데 결과를 받아 든 의사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진단을 받는 사람들은 그래도 병이 의심되어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선생님은 그중에 상위 10% 안에 들어갈 정도로 위험한 수준인 상태입니다."


그렇게 마주한 내 병과의 동거. 약을 먹으면서 이따금씩 찾아오던 바보 같던 생각도, 타는 듯이 가슴이 아파 잠들지 못하는 나날에서도, 느닷없이 내 정신을 흔들어 놓던 어지러움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게는 다시 웃음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직장생활과 가정에도 전력투구를 하기 시작했다.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약의 숫자는 외면한 채. 


지금은 웃을 수 있으니까. 지금 나는 괜찮으니까.

하지만 내 약에는 마약성 항정신성 약물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장기간 약을 복용하는 게 좋을 리도 없었지만 어쩌다 철야 작업을 하다가, 아니면 빠질 수 없는 업체 접대와 같은 회식자리로 인해 제때 약을 복용하는 걸 잊는 날에는 어김없이 증상은 재발했다.

사면초가.


진단을 받기 전과는 나는 다른 의미로 다른 형태로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마치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하는 것처럼 미끄러지기만 해도 추락할 수밖에 없는 삶을 버텨오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는 걸.


내 휴직은 어떻게 보면 충동적인 결정의 발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구멍 나면 기워신는 구멍 난 양말 같은 삶에서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탐했던 부장이여, 고맙다 계기가 되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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