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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Jun 09. 2024

아내의 눈이 반짝일 때

아직도 자식들을 향한 정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혼자 떨어져 직장 생활하는 작은 아들에게 다녀왔다. 그동안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주었던 음식과 과일을 담았던 그릇을 모두 가지고 나오라고 했더니, 조그만 그릇들이 쇼핑백으로 가득하였다. 빈 그릇들을 보면서 아내가 자식들에게 쏟은 정성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나이 들면서 감동할 것이 줄어드는 아내가 눈빛을 반짝이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들이 TV에 나와서 공연할 때, 요즘 배우고 있는 보드게임에서 이겨보겠다고 이리저리 생각을 정리할 때 등이다. 특히, 기대에 찬 눈빛이 될 때는 자식들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구상하거나 음식을 마련할 때와 찾아갈 때이다.     

아들 근무지 부근에 볼 일이 생겨서 가는 길에 동석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토요일에 가능하다고 했다. 약속 날이 잡힌 순간부터 아내는 바쁘다. 어디에서 볼 것인가부터 무엇을 준비하여 갈 것인가를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갑자기 한 주간의 우선순위가 그 작은 만남으로 집중되고, 며칠간 약간 들뜬 듯한 아내의 모습을 대할 수 있었다. 

    

주중에는 맑기만 하던 날씨였는데, 모처럼 나서는 길에는 비가 왔다. 운전하면서 옆을 보니, 아내에게 비는 전혀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아니 평소에 비 올 때 운전을 조심하라던 당부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아들을 위해 마련한 과일 몇 가지를 어떻게 주고, 곧 만날 기대감에 눈빛만 반짝이고 있을 뿐이다.

     

일을 마치고 근처의 맛집에서 아들과 합류하여 점심을 함께 먹었다.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주말에 사람들이 몰려서 서울의 여느 음식점보다 붐비는 것 같았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좋기도 하고, 제대로 끼니나 챙기고 있나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아내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면서 좋아한다는 사실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정을 이루고 있다면 이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도, 결혼을 채근하거나 묻기도 쉽지 않다. 아들이 싫어하는 주제로 좋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만남의 기회나 만들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자유로를 통하여 복귀하는 길은 모처럼 교통체증 없이 정상의 흐름을 유지하였다. 마음으로는 더 머물고 싶었던 아내에게 다소 야속한 교통상황이다. 만남이 끝난 뒤에는 기대가 해소되고 긴장이 풀렸는지, 짧은 운행임에도 불구하고 피로를 호소한다. 운전은 내가 했는데, 아무런 대구도 할 수 없다. 

    

뒷좌석에서 빈 그릇들이 달그락 소리를 낸다. 또 무엇으로 저들을 채우려나 궁금하다. 아직은 아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늘 함께하는 나는 약간 뒷전이어도 좋다. 아내를 감동하게 만들고,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로 눈을 반짝이게 만들지 못하니 이렇게 운전하면서 동행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같이 가면서 행복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가까운 일상에 모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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