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닭 Apr 30. 2023

사랑 1 - 사랑이란

앞으로도 모를.

사랑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La Rochefoucauld



  혼자인 게 가장 편할 때가 있었다. 나 이외의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공부와 놀이와 휴식으로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웠다. 단세포 생물처럼 기본적인 의식주만 충족되어도 만족했다.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겼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에 입학하고, 사회생활을 위해 주변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기말고사가 끝날 때쯤, 고백을 받았다. 한창 사회생활 적응을 위해 도전정신이 샘솟던 시기였기 때문에,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 알아보자는 마음이 컸고, 나는 고백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상대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 중, 격하게 느껴지는 긍정적인 감정을 '사랑'이라고 이름 붙였다. 만약 '사랑'이란 단어가 없었다면 나는 사랑에 관심을 가졌을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감정 중 최상 위에 속한 것처럼 대하고, 노래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본능적으로 '사랑' 관심을 가졌을까? 태어나서 한 번도 여자를 본 적 없다는 그리스의 수도사 미하일로 톨로토스는, 사랑을 느꼈을까? 사랑이 필요하지 않았을 때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불쑥 책임져야 할 사랑은 당황스러웠다.



사랑꾼



  당시의 나는 스스로 뱉은 말에 굉장한 책임감을 느꼈고, 한다고 표현한 것은 꼭 해야 했다.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인 나는, 상당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끼게 되었다. '연애'와 '사랑'을 구분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의 첫 연애는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랑'을 실현하고자 한 노력의 시간이었다.

  이전까지 사랑에 대해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던 나는, 많은 매체, 문학, 예술이 떠들어대는 사랑을 진짜 사랑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찬란하고, 완전하며, 낭만적이면서도 절절했다. 나는 책, 노래 등에서 소개된 여러 사례 중, 상대방이 좋아하고 감동하는 부분들 만을 따로 학습하며 체득했다. 나보다 상대를 위하는 것이 사랑이라 잠정 결론짓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상대에게 맞춰주었다. 상대가 말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감정까지 고려하고, 함께 보냈던 시간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두 기억하며,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주변 사들은 나를 사랑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노력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나의 사랑이 안정궤도에 진입했다고 느꼈다. 이러한 안주하는 마음 때문에, 그동안 해 왔던 사랑에 대한 고민은 더 나아가지 않고 멈춰버렸다. 마치 안정 궤도에서 인공위성이 빙빙 도는 것처럼, 사랑을 위해 관성적인 노력만 계속했다.

  시간이 더 흘렀고, 나와 상대는 서로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갔지만, 결국 마주한 우리는, 서로의 이상형에서 묘하게 멀어져 있었다.



사랑의 속성



  그렇게 2년 반 동안의 첫 번째 연애가 끝났고, 이어서 1년 반의 두 번째 연애도 끝이 났다. 이후로 긴 공백기를 가지며 사랑에 대해 많은 것들을 고민했다. 내가 해온 것은 '사랑'인가? 사랑은 뭐지? 



주관성


  사랑은 주관적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르고,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관계이기 때문에 사랑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감정을 '사랑'이라고 정의할지 암묵적인 공감대는 있으나, 세세하게 따져보면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사랑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신봉한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사랑을 잘못한 건지, 상대가 문제인 건지, 위로했다 욕했다 하며 흔들리게 된다. 중요한 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지 정의 내리는 것이다. 나만의 사랑을 정해야만, 흔들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견주어 볼 수 있다.


불완전성


  사랑은 불완전하다. 사람들은 감정의 한 부분을 '사랑'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감정에서 비롯한 사랑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도, 완전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나의 성장과 변해가는 관계에 맞춰 유동적으로 사랑을 정의 내려야 한다. 불완전한 감정이 완전하길 바라며 종교적으로 의지해버린다면, 흔들리는 마음에 따라 혼란도 찾아오게 된다. 


노력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노래는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라고 했지만, 나는 이에 반대한다. '사랑'은 잘 준비한 프로젝트처럼 튼튼한 기반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사랑은 격렬한 감정의 불씨로 급격히 부풀려진 열기구 같은 것이다. 어느 정도 열기구가 상승한 후,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점화가 필요하한 것처럼,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의 과정에서 고통이 필연적이라면, 차라리 언젠가 맞이할 고통을 위해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하는 것이 낫다. 고통 자체를 피하고 싶어 하늘로 떠오르기 조차 싫어 열기구를 타지 않을 것인지, 고통을 겪더라도 더 넓어진 세상을 보기 위해 열기구를 어떻게 유지하려 노력할지 말이다.


낭만


  그럼에도 사랑은 낭만적이다. 하늘로 떠오른 열기구에 올라탄 사람은, 땅에서는 보지 못했던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은 오히려 낭만에 힘을 더한다. 사랑을 하며 나를 온전히 상대에게 보여주고, 이해받는 경험은 매혹적이고 강렬하다. 특히 우리가 '선택'한 사랑의 상대는, 주변 인간관계에서 흔히 보기 힘든 사람인 경우가 많다. 만약 가족이나 친구 관계로만 나의 결핍이 해소된다면 우리는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나와 통할 수 있는 그 한 사람과 '사랑'으로 이어지기에 사랑은 낭만적이고 황홀하다.


거울


  사랑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이 익숙지 않은 사람조차, 사랑을 하고 나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거울 앞에 비춘 나를 보듯 말이다. 그래서 대중에게 꾸준히 '사랑'이란 소재가 인기 있는 이유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혹은 알기 위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들도 사랑을 통해 깨닫게 된다. 나는 사랑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숨어 있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깊게 마주했다. 사랑이란 거울에 비친 내 불안감과 두려움은, 막연하게 겁내왔던 모습과는 달랐다. 후에 다른 파트에서 자세히 기술하겠다. 



이전과 지금의 사랑



  이별의 두려웠던 나는 사랑의 완전성을 추구하였으나, 이런 집착은 외면하고 있었던 고통을 오히려 부각했다. 결국 사랑은 주관적인 것이었고, 나는 사랑을 통해 내 마음속 숨어 있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늘로 떠올랐던 열기구가 추락하며 지하로 처박혔을 때, 나는 내가 몰랐던 무의식적인 나약함을 마주한 것이다. 

  열기구의 잔해와 나약함만 존재하는 지하에서, 나는 벽을 보고 쭈그려 앉았다. 지상으로 기어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남은 사랑의 잔해와 나약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괴로웠던 것이다. 떨어진 직후는 그저 힘들고 쉬고 싶어 외면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점차 나는 다른 것들을 느끼게 된다. 먼저 열기구의 잔해는 어떤 모습인지, 나의 나약함은 무엇인지 관심을 조금씩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꼭 나만의 힘으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걸 느꼈다. 얼마든지 지하로 동아줄을 내려줄 가족과 친구들이 있던 것이다. 든든한 동아줄을 옆에 두고, 나의 나약함을 관조하며 많은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든든한 동아줄을, 내 힘으로 타고 올라왔다.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으나 남은 아쉬움들이 있다. 첫 번째는 지하의 어두움에 익숙해져서, 필요 이상으로 지하에 머물렀던 점이다. 두 번째는 내가 지하에서 쉬던 시간에, 열기구를 같이 타고 싶은 좋은 사람들은 이미 남의 열기구에 타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상에 다시 올라온 나는 전에 없던 적극성으로 노력하고 있다. 선택에 대한 고통은 감수할 준비를 마친 채로, 두려움을 누르고 상대의 문을 두드린다.


  앞으로도 사랑에 대한 정의는 바뀌어갈 것이고, 설렘과 두려움은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을 고민하며 변해온 나와, 사랑을 하며 변해갈 나, 사랑하며 포근해질 우리가 기대되어 설레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어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