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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군 Sep 21. 2022

나의 첫 펫로스 증후군

16년을 함께 했던 동생이자 자식이자 친구를 잃고,



언제부터 이 생명체의 귀여움을 느꼈을까





정말 어렸을 적부터 유독 강아지를 너무나 좋아했다. 큰 대형견도 서슴지 않게 만졌고 한번 보고 온 후에는 그리워하기도 했다.

어렴풋이 나는 기억 첫 번째는 유치원 다닐 적 주택인 외삼촌 댁 대문을 열면 마당에 10마리 남짓 되는 강아지들이 풀려있었고 나를 반겨줬다.

그중에서도 하얀 백구는 어린 나에게도 애교를 부리며 사랑을 뿜어댔고 나는 무서워하지 않은 채 얼굴을 마구 주무르고 만져댔다. 많은 강아지들이 달려오면서 반겨주는 것도, 그런 귀여운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것이 그저 좋았던 것 같다.

 번째 기억은 초등학생 저학년  이웃과 밀양 얼음골을 놀러 가서 가게에 있는 온몸이 검은색인 대형견  마리를  것이다. 강아지를 유독 좋아했던 나는  강아지와 놀았고 내가 찍은 건지 부모님이 찍어준 건지 모를  검은 강아지 사진을 인화하여 책상 유리 밑에 넣어놓고  때마다 내심 그리워했던 기억이 있다.

세 번째 기억은 아빠가 잠깐 데려온 치와와 삐삐였던가, 베란다에서 기르며 한 번은 아빠가 된장국에 밥을 말아준 기억이 나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기게도 왜 그런 음식을 줬는지 싶다. 그렇게 잠깐 지내다가 어딘지 모를 곳으로 다시 가버린 삐삐. 더 같이 지내면 안 되냐고 졸라 댔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접할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스스럼없이 다가갔고, 위협적인 반응을 느낀 적 없이 너무나 예뻐했던 기억만 남아 초등학생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자고 무척 애원했지만 반대로 인해 그저 마음 한편에 품고만 있었다.




중2 15살, 처음 만난 내 동생 '용이'





엄마는 내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것에 미안해서였는지 먼저 강아지를 키우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하교 후 곧장 집으로 뛰어가서 만나게 된 용이는 첫 만남에 나를 실망시켰다. 그 시절 나는 발바리 같이 생긴 정석적인 강아지를 좋아했고 용이를 처음 본 순간 '뭐야 못생겼잖아'라고 생각하며 곧장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의 반응도 웃긴 것이 조금 못생겼다고 인정을 한 듯했다. 아무래도 종 특성의 살짝 눌린 코와 큰 눈 때문에 당시 낯설었던 것 같다. 원하던 외형의 강아지는 아니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애정은 커져만 갔다.

산책을 시키고 집에서 같이 놀 수 있는 것에 행복했다. 이갈이 하던 시절 내 뿔테 안경과 기타 다른 물건들을 다 씹어서 부숴놓은 그런 미운 때도 있었다. 그리고 양말을 너무나 좋아해서 항상 묶은 양말을 공처럼 하고 발로 차줄 때면 곧바로 물어오곤 했다. 인형 꾸미기 마냥 목도리를 해주고 비니를 씌우며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영화 나 홀로 집에의 도둑들이 무장한 장면 같아서 가족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낄낄거렸던 것 같다. 또 어떤 날에는 방문 뒤에 숨어서 이름을 부르면 목소리를 듣고 갸우뚱 거리며 나를 찾으러 다니는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숨바꼭질이 얼마나 재밌던지.. 그런 재밌는 반응들이 궁금해서 부모님 방에서 다른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변장을 해서 나타나면 뒷걸음질 치며 꼬리를 마구 흔들어 대는 게 지금 생각하면 무서워하기보다 내가 장난치는 것을 알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사랑을 주는 법을, 행복을 알려준 내 사랑스러운 친동생이었다.





용이는 데리고 올 적, 20대 젊은 여성분이 키우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시 친구 집으로 옮겨 갔고, 그 집을 통해 우리 집으로 온 나름의 사연과 우여곡절이 있는 강아지였다. 이전 집에서도 구박을 받아 이불에 오줌을 쌌다는 소리를 듣고 미움을 받았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나름 친구처럼 지내며 애지중지 예뻐한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용이를 보낼 때 울고 불고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강제로 떼어낸 느낌 같아 한편으로는 미안함이 들었다.

결국 그 아이는 용이를 보고 싶을 때마다 보러 오기로 하였고, 우리 집에 몇 번 와서 보고 가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보다 더 어린아이가 그동안 쌓인 정이 있는데 얼마나 헤어지기 싫었을 것이며, 그리웠을까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주인이 된 만큼 잘해주고 싶었다. 다시는 버림받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콩깍지가 씌었을까 날이 갈수록 다른 강아지보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가 제일 귀여워 보였다. 사람이나 강아지나 기를 땐 역시 다 똑같은 마음인가 싶었다.

요즘에서야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고 키우는 추세가 늘었지만, 당시 내 주변에는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없었고 딱히 이러한 감정이나 강아지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내 정보는 인터넷과 병원뿐이었다. 예방접종은 빠짐없이 엄마가 병원에 데려갔고 스케일링이나 이상 증세가 있을 때, 병원에 데리고 가고 항상 건강에 무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놓였다.

용이는 그렇게 건강하게 잘 지내주었다. 잘 먹고 잘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다른 강아지들보다 건강한 편이라고 내심 자부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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