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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ul 13. 2023

의미 부여 대마왕이면 좀 어때

나만의 성채 쌓는 법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린 시절부터 애착이 있는 물건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했다. 좋은 기억이 담긴 물건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행복으로 명제하고 싶은 물건에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나의 의도가 들어간 물건과 나 사이, 유일무이한 관계가 형성된다. 소박하고 연한 물성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여전히 머리맡에서 임무를 다하는 도라에몽 인형을 친구에게 소개한다면 대충 이럴 것이다.



어릴 때, 볕이 이파리 옆에서 흔들거리는 오후쯤이면 엄마랑 종종 동네 책방에 걸어갔었어. 엄마는 그때 한창 소설책에 푹 빠져있었던 것 같아.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던 내게 사장님은 도라에몽 만화책을 건네줬어. 눈이 휘둥그레지는 도구들을 갖고 진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도와주는 도라에몽을 보면서 나도 이런 친구가 있다면 좋겠다고 늘 상상했지. 내가 11살이 되던 해에 엄마 아빠가 일본에 갔다가 이 아이를 데려온 거야.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지. 꿈에 그리던 친구가 생기다니 말이야.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우린 꽤 잘 통하는 사이인 것 같아.




관계를 맺고 있는 물건을 소개한다면 팔불출이 되어 수다 보따리를 밤낮으로 풀어놓을 게 자명하다.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는 물건들에는 어김없이 마음이 쏠린다. 나만의 세계관을 짓는 과정은 나를 포옥 감겨준다. 몇 달을 기다려 생일 선물로 받은 분홍색 키티 시계, 미니마우스 일기장, 주황색 작은 수첩, 하트 모양 도장, 색색의 스티커북, 크고 작은 다이어리들, 존재를 뽐내는 동전 지갑들, 열쇠고리, 엽서, 우표, 책갈피 등이 그랬다. 그들은 하나의 존재적 의미로 나와 가시적인 관계 이상으로 중력이 닿을 수 없는 깊은 곳에서 연결되어 있다. 딱 그 크기만큼 공들여 익히고 매만지고 다듬어주곤 했다.



한 번 관계를 맺은 물건들은 커서도 쉬이 연을 끊을 수 없는 동반자가 되었다. 나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물건이 담긴 상자들을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이고 지고 함께했다.(아빠는 이런 나를 고물상이냐며 놀려댔지만) 그들은 주관적인 내 편이었다. 무심코 떠오르는 날, 마음이 흐물흐물해지는 날,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날. 어떤 날에 펼쳐봐도 한 뼘 몸집보다 배로 큰 안위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비록 연식이 있어 흔적이 묻어나고 요즘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지만.(사실 그래서 더 좋다지만)



의미 부여하는 습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시시한 것에도 의미를 더하면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체득했다. 의미 부여하는 일은 물건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사건이나 일에서도 연장선상이었다.


그때 그런 일이 있어서 결국 이렇게 된 거였어.

알고 보니 그게 우리 운명의 시작점이었던 거지.


나는 다소 의뭉스러운 스토리텔러의 자질을 타고난 지도 모르겠다. 보통날도 의미 부여 장치를 심어 놓으면 여러 겹 겹쳐진 기념일이 된다. 보통의 기념일에선 지난 페이지도, 앞으로 펼쳐질 페이지도 한쪽 끄트머리를 접어놓고 싶어 진다. 그 지점에선 마음이 한들한들해지는 바람에 책을 덮어놓고 앞으로도, 뒤로도 잘 넘기지 못했다. 다음 주 수요일은 보고 싶던 영화가 개봉하는 날, 일요일은 학원에 가기 전 근처 소품샵을 들를 수 있어 기대되는 날처럼 간소하고 수수했다.



얼마 전 낡고 새로운 목표가 내게 왔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책 만들기다.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건 꽤 오래전, 좋아하는 사람 앞에 내 작업이야 라고 뽐내며 보여줄 수 있게 되고 난 후부터였다. 내 이름을 앞세운 책을 내는 일은 매년 버킷리스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항목이었다. 너무 막연하고 방법을 알 수 없어 미루는 일이기도 했다.


언젠간 하겠지. 아직 시간 많은데! 지금은 눈앞에 해야 할 일을 하자. 책은 조금만 더 나중에.


피어나는 꿈의 안개는 희미하게 곁을 지켰다. 닿아있지만 스쳐가는 그런.



안개를 걷고 실체를 확인해 보기로 한 건 독서 모임에서 알게 된 인연 덕분이었다. 근사한 제안에 비해 밑천은 드러나고 시간은 촉박했다. 다음을 기약하고 미뤘지만 미룬 것만은 아니었다. 하얀 면에서 살던 활자를 해방시켰다. 운무에 싸여있는 건 여전하지만 고른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일에서도 나는 의미 부여 대마왕의 여력을 보여줬다. 네 달 전 첫 독서 모임이 있던 날, 멤버 17명이 하나씩 자기소개 질문카드를 뽑았다. 급하게 시간에 맞춰 도착한 내 눈에 선명한 필터를 씌운 카드 하나가 있었다.


'나'를 주제로 책을 쓴다면,

어떤 제목을 붙여주고 싶나요?


카드와의 맞닥뜨림이 운명이었음을 감각한다. 처음 모임의 참여 여부를 고민하고 시작해서 마무리되는 지금까지, 나는 꿈의 숨소리를 듣기 위한 궤도에 있었다. 책 만들기는 이미 시작부터 정해져 있던 일이었다. 지금이 미뤄왔던 '그' 일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시간이란 걸 직감했다.



타자는 허무맹랑한 의미부여라고 놀리더라도 분명 의미 있는 서사라서 두근대고 잠이 잘 안 온다. 누구나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지만 그런 멋대로가 어쩔 땐 아주 세고 강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선용되는 힘으로 이 종잡을 수 없는 하루도 무던히 지나가니까.





삶에서, 의미란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의미는 관계를 짓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 존 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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