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Aug 02. 2023

내가 틀릴 수 있는 상자

쓰게 하는 경계에서


 

화요일 늦은 오후 중화역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준비하고 밖을 나섰다. 비는 오는 둥 마는 둥 사고 회로 체계까지 잿빛으로 물드는 회색 하늘에, 짙은 끈적임의 농도가 대기를 뚫는 날. 기분과 살갗이 뽀송하게 마른 시간도 잠시, 역에 도착해 네이버지도 앱을 열고 안내하는 대로 출구로 나와 걷는데 지도에 있는 상점도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어딨지? 뭐지?' 나는 손 안의 위치와 다른 골목에 있는 것 같다. 가는 경로를 재검색해 보니 현재 위치는 상봉역 주변이라고 나온다. 몇 번을 다시 해봐도 그랬다. '네이버지도가 진짜 말을 안 듣는구나.' 바로 구글지도를 켰다. 얘는 아예 검색 자체를 안 해준다. 기온과 습도는 열일하며 사람 못 살게 구는데 정작 열일해야 하는 존재는 무응답에 협조를 안 해줄 일이라니. '더워. 짜증 나. 여기 어디야. 어쩌라는 거야 진짜.'



15분째 길 잃은 미아가 되어 삐죽거리는 입으로 골목을 헤맸다. 마음의 심층에 숨어있던 역증이 치민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는 개뿔. 진짜 못해먹겠다. 나랑 안 맞는다. 그냥 살던 대로 살아야지. 아 짜증 나. 얘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대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 사람이 변하는 일이니 고쳐 쓰려 애먹지 말라는 먼 잠언은 가까운 나를 보면 안다. 매사가 꼬불꼬불 꼬여버린 불만투성이 자아 1은 원하는 상황에서 조금만 틀어지면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나타난다. 주위를 뺑뺑 돌면서 한참의 투덜거림을 하다 보니 지도앱을 향한 분노인지, 날씨를 향한 원망인지, 이런 날 밖에 나오길 자처한 스스로를 향한 개탄인지 그 껄끄럽고 날카로운 화살은 어디를 향한 것인지 분간이 어려워진다. '옆에 누군가 있다면 나를 얼마나 한심스럽게 볼까?' 눈치 밥 말아먹은 생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뒤섞인다.



20분 동안 한 골목에서 마음이 삐죽삐죽 조용한 씩씩거림을 하다 문득 등골이 오싹해진다. 지도가 말한 대로 어쩌면 진짜 내가 상봉역에 있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기운다. 큰 대로변으로 나와 고개를 좌우로 한 번씩 젓고 지도의 현재 위치와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비교해 보니 '아차! 말도 안 돼. 지금 내 앞에 코스트코 간판이 보이면 안 되는데.'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믿기 싫었다는 게 더 맞겠다. 현실 부정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상황 인지 후 20분의 비좁음 만큼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 깜빡했다. 「어떤 경우도 내가 틀릴 리 없는」 옹졸한 상자 안에서 눈만 빼꼼 내어 바깥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는 것을. 전과는 다른 세상을 알고 싶고 살고 싶다며 읽고 쓰고 사유하는 주체로, 높은 인격체로 한 꺼풀 벗고 진화했을 거라 여겼던 오만이 맥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보통의 일에서 내면화된 좁음을 알게 해주는 세상이다.



알고 있지만 잊고 있던 것, 아는 것 같지만 모르고 있는 것,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있는 것,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한 것. 그 사이 경계를 편의적 명칭으로 규정짓기 어렵다. 그 경계는 나를 다시 앉아 쓰게 하고 내려앉은 생각을 모아 곱게 세운다. 응시하고 탐구하고 자각하고 느끼고 곱씹고 매일밤 뒤치락거리는 작고 좁은 존재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생활이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니 꽤 괜찮은 것 같다. 알고 싶고 알아갈 게 더 많을 거라서. 전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회의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는 무언가 계속 쓰고 있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 개인 날씨와 무지개가 토닥여주는 것만 같은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되지 않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