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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18. 2023

시한부 선고받는 날

내 전부가 부정당하는 순간에



펜 긋는 소리로 둘러싸인 늦은 오후의 적막을 깨는 메일 알람. 바로 눌러 들어간다. 내용인즉 내 인스타그램에 커뮤니티 기준을 위반한 광고를 게시해 24시간 내 계정이 영구적으로 삭제될 예정이라고 했다.


영구적으로 삭제

영구적으로 삭제

영구적으로 삭제



다른 말은 흐림이고 이 부분만 3D 효과 뿌린 듯 눈에 선명했다.

 

순간 심장이 발아래 쿵하고 내려앉음을 감지했다. 자이로드롭 타고 올라가 꼭대기층에서 빙글빙글 몇 초 돌다 덜컹하고 내려오기 시작하는 찰나의 쿵이었다. 펜을 잡고 있는 오른손을 왼편 가슴에 대보니 그 안의 것이 곧 바깥으로 나올 듯 거칠게 쿵쾅댄다. 별안간 머리 위쪽으로 열감의 쏠림이 느껴진다. 핸드폰을 쥔 손에 눈에 보이는 떨림이 온다. 뭐가 대체 왜 그런 건지 상황 파악이 안 돼 작은 화면 안의 글을 내려 읽고 올라가 다시 읽고 또 올라가기를 여러 번.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 싱크대로 가서 생수를 벌컥벌컥 목뒤로 들이붓는다. 글 아래 게시된 검토하기를 제출하면 괜찮을 거야, 침착하고 생각을 행동에 복사해 붙여 넣기 한다. 정보를 맞게 작성했는지 몇 번씩 확인하고 핸드폰으로 발송될 코드를 기다리는데 몇 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했을 때 핸드폰 문자로 코드가 와서 창에 입력하기까지 성공했는데 다음창으로 넘어가지지 않았다. 세 번째, 네 번째, 후에 계속된 시도에도 코드는 도착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껐다 켜보고 설정에 들어가 언어를 영어로 바꿔보고 지역을 미국으로 바꿔보고 해외로밍을 켰다 껐다 반복했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 끌어모아 해봤지만 화면은 먹통이고 코드는 끝내 오지 않았다.



메타 관리자 홈페이지로 접속해 방법을 강구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그렇게 멘탈이 짐 싸들고 내 곁을 떠났다. 빈자리에 5분에 한 번씩 다른 자아가 찾아왔다. 안 되겠지, 마음 접는 게 낫겠지, 하는 무기력한 생각에 계정 화면 곳곳을 캡처해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나름의 이별 준비를 했다. 5분 뒤 아냐!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하며 나와 같은 사례를 뒤져보며 방법을 갈구했다. 뱀처럼 샤르륵 간사한 모션으로 주위를 빠져나가는 구원의 꼬리를 잡지 않으면 내가 곧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긴박감에 끄트머리라도 어떻게든 붙잡았다. 할 수 있는 건 이제 더는 없는데 시한부 삶도 아니고 없애버릴 거면 그냥 바로 없애버리던가 24시간 사람 피를 말리는구나, 정말 잔인하다, 하며 화면만 노려보던 눈에 맺힌 원망의 물이 아래로 떨궈진다.  

 



작년 여름, 한 달 반을 고민하다 맘 먹고 아이패드를 구입했다. 그림을 연습하다가 9월부터 계정에 올리기 시작했다. 1년 1개월 동안 삶의 에너지 98%쯤을 이 계정에 소비한 것 같다. 누가 시켜서라면 못할 짓이고 시작하더라도 지속하지 못했을 텐데 내 안의 근본적인 공허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 가능했다. 그리고 쓰는 동안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음에도 마음을 쓰다듬는 법을 알아갔다. 내 그림에 위안을 받았다는 감사 인사를 전해 들을 때 구멍 난 마음의 메움이 오른손에 펜을 놓지 않게 했다. 나도 어쩌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일 수도 있을 거란 감각에 안도가 몰려왔다.



내겐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생각하니 좋았던 장면이 스쳐간 자리에 좋지 아니하던 장면들이 묵직하게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는 편해짐이었을까. 팔로워가 더디 늘고 반응이 예전만큼 나오지 않을 때, 아니 도달률이 딱 반토막 나서 6개월간 정체기일 때 지루함이 더해지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저 사람처럼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고 뜨고 싶은데 난 대체 언제쯤이면.., 하는 생각이 찾아올 때 내 자신이 불행하다 느꼈다. 다시 시작한 창작에 활기를 찾고 하나둘 쌓여가는 작업물에 뿌듯함으로 넘치던 시작과 달리 일처럼 의무감으로 해야 한다고 느껴질 때 하기가 싫었다. 인간은 죽음이 문 뒤로 도착했음을 인지할 때 후회의 순간이 세게 온다고 하는데 그 작은 버전의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었다. 헌신하던 여자를 버리고 떠난 남자에게 뒤늦게 후폭풍이 찾아오는 클리셰만큼 흔해빠진 말. 익숙함에 속아 감사함과 소중함을 잃어버린다는 그 말, 딱 그 짝이었다.

 


내 작업으로 통했던 분들과 나눈 잊지 못할 삶의 한 컷이 딱 잘려 도려내지겠구나, 내 모든 복의 부정을 코앞에 두고 있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고된 시름으로 묶인 밤이었다. 다음날 오전 사정을 알리려 글을 썼다. 자기 일처럼 화내주고 걱정해 주고 도와주겠다고 하는 분들의 댓글과 메시지가 쌓일수록 눈가가 마를 줄 몰랐다. 마음을 털고 할 일을 하려는데 해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지금 내게 제일 무섭고 두려운 일은 그림 계정이 없어지는 거구나, 이곳은 내게 그런 의미였구나, 알고 있던 일이 또 다른 몸짓으로 찾아온다.



어떻게 흘러간 줄 모르게 24시간하고 몇 시간이 더 지났건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독자분 중 이와 관련된 업을 하고 계신 분이 피싱일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럴 리 없다고 아니 그러면 좋겠다고 답했는데 정말 피싱이었다. 생애 가장 피 말렸던 24시간이 막을 내렸다.



다시 살아볼 수 있는 시간을 부여받았다. 무엇이든 해볼 수 있고 원하는 대로 마음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어제 바라던 오늘을 얻는 삶을 갖게 됐다. 댓글과 메시지함을 열어보며 우리라는 말에 엮인 마음이 입체적으로 만져져 감당할 수 없는 감사와 위안이 몰려왔다.


내 삶은 이미 보이지 않는 수많은 얼굴들에 빚지고 있구나. 계속 무언가를 그리고 쓸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먹고 자라고 있구나.



왜 매번 극한 상황이 닥쳐야만,

모든 걸 잃고 나서야만 알 수 있는 걸까.


이미 너무도 많은 걸 누리고 가지고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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