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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25. 2023

결국 다 지나갈 일이지.

언제나 그랬듯



조건 없이 옹호하고 편애하는 말들이 있다. 옆구리에 끼고 있다가 필요할 때 짠하고 꺼내볼 수 있도록 메모앱의 메모장 맨 앞에 주황색 압정으로 고정해 둔다. 지금 처한 상황에 따라 가지각색의 맛으로 쏙쏙 골라먹기 쉽게 만들기 위함이다. 반갑지 않은 일이 닥쳐온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침대맡에서 메모장을 열어봤다.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창 밖을 보며 달리는 버스에서, 잠이 막 들려던 찰나에 스치는 한 줄을 적은 메모들이 그 안에 집 짓고 살고 있다. 뭉그러진 형체의 마음을 구원하기 위한 말들이 지독히 나만 바라보며 대기 중이다. 이곳 한정으로 나는 인기쟁이다. 내 구미에 맞게 선택해 집어가거나 더 쉬게 두거나 할 수 있다. 엉킨 생각의 실타래 중간을 툭 끊어내는 힘의 문장 하나를 골라 집는다.


알고 있지? 결국 다 지나갈 일이란 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번주 내 옆에 꼭 붙어있는 문장이었다. 눈 뜨고 감을 때까지 마음속에 문장 하나만 끌어안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 오늘이 됐다. 한 손에 바닥에서 끌리는 기분을 끌고 오면서 다른 한 손엔 문장을 놓지 않고 왔다. 덕분에 그 기분이라도 끌고 여기까지 왔다. 꺼져가는 순간을 붙잡았던 과거의 내가 나에게 베푼 은혜였다.



 한 줄을 내 앞에 가져다 놓고 붙잡고 만지다 보면 생기가 느껴진다. 손에 닿는 감촉은 솜이불처럼 올록볼록 통통 말랑하고 따듯한 기운이 전해온다. 뽑기처럼 납작하게 눌려 온기가 다한 지금 마음과는 반대 방향에서 껴안아준다. 그래 맞다. 다 지날 일이다. 지금까지 그랬듯,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흐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거다. 내년 이맘때쯤엔 생각도 잘 나지 않을 걸. 분명 아 참! 그랬었지, 하며 귀여워할 일이 될 거다. 모든 일이 그렇다. 좋음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커서 이 모양의 형편이 영원하길 바라는 순간도, 마르지 않는 웅덩이에 빠져 다시 바깥의 빛을 볼 수 있긴 한 걸까 물음 하는 순간도 결국엔 다 끝이 있었다. 지금 고되게 느껴지는 과정의 무게를 곧 덜 수 있다는 학습된 사실이 위안과 안도를 물려준다. 그래서 거울 앞에서 네모 모양 입으로 다시 씩 웃어 보일 수 있다. 조금은 아무것도 아니게 여길 수 있다. 끝이 있으니 안심하고 지나치는 이 순간에 더 충실하자며 흩어지는 마음을 모아 올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지나가니까. 감당하기 힘들다고 시름했던 오늘의 나란 존재조차 결국은 사라질 테니까. 그 허무가 오늘은 힘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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